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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후학들에게 왕창 찍힌 사진가 강운구


  어제 토론토 지하철 속에서 책을 읽다가 포복절도할 뻔했다. 유머집을 본 것도 아니고, 배꼽 빠지게 하는 소설을 본 것도 아니다. 제목만으로도 왠만한 사람은 어렵고 지겹고 답답해서 첫 장을 넘기기 싫을 책이다. 바로 이 책이다.




  사진에 관해 논(論)한 책인데, 이상하게도 사진 한 장 들어 있지 않다. 심지어 책만 냈다 하면 도그나 카우나 다 넣는 필자 얼굴 한 장 들어 있지 않다. 표지는 저렇게 멋대가리 없는 명조체 글씨와 고딕체 한문, 그리고 출판사 로고뿐이다. 저것도 멋이라면 멋이겠으나 별로 멋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내 하고 싶은 대로 말하자면, 멋대가리라고는 더럽게 없는 좀 웃기는 표지이다.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본문에 들어가면 더 웃긴다. 여백도 없이 그저 빽빽한 글뿐이다. 꼭지의 출처도 책 맨 뒤에 붙여서 그걸 찾아보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주석 또한 해당 페이지가 아니라 각 꼭지 뒤에 달려 있어 찾다보면 짜증이 폭발 일보 직전에까지 이른다. 인쇄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본문과 페이지 숫자뿐이다.

   이미지 시대를 넘어 영상이 폭주하는 이 화려한 시대에 오로지 흑백만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상해 보일 법한데, 밥을 퍼먹여주고 소화까지 시켜주는 풀서비스 시대에 독자를 이렇게까지 불편 · 불쾌하게 만드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이 편리한 시대에 독자 '불편 서비스'를 일부러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배가 아파 거의 죽을 뻔했다. 

  하도 웃겨서 "하하하" 웃기 위해, 일부러 책을 덮어야 했다. 책에 침이 튈까 봐. 그리고는 또 한 문장 읽고 이번에는 좀 참아가며 "쿠쿠" 하고 웃다가 또 닫아야 했다. 옆에 앉은 하얗고 검은 외국 사람들이 '미친 놈 아냐?'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건 말건 나는 웃고 싶은 대로, 웃고 싶을 만큼 웃고 또 웃었다.  웃고 싶을 때 웃지도 못하는 인생이라면, 살아서 뭐 하나 싶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긴다.

  사진가 강운구 선생에게 나는 빚을 많이 졌다. 이래 저래 많이 받았다.  책도 그랬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책들 가운데 돈을 내고 산 것은 두어 권밖에 안된다. 전부 받았다.

 

 

  모아놓고 보니 많기도 하다. 받은 건 책뿐만이 아니다. 강 선생은 1994년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보자면 '천하의 강운구'가 개인 전람회를 가진다는 사실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 나는 이게 그렇게 큰 사건인 줄도 모르고, 전시회와 관련해 기자로서는 강운구를 처음 인터뷰했고, 인터뷰하면서 거의 절반쯤 죽여드렸다('놓았다'라고 쓰고 싶지만 예가 아니다).

   강운구가 얼마나 큰 예술가인 줄 모르고 이틀에 걸쳐 7시간씩 총 14시간을 묻고 듣고 적고, 물은 것 또 묻고 듣고 적곤 했다. 강 선생으로서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이게 강 선생의 어법이다) 하고 짜증이 왕창 났을 법도 하지만(속으로),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밥집에서 말하고, 커피 마시며 설명하고….  강 선생은 참 친절했다.
 
   다큐와 예술 사진, 사진가와 사진작가의 차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창 열정만 앞세운 나를 강 선생은 가르치셨다. 지금 생각하면 14시간 동안 당신이 가진 것을 얼치기 기자에게 쪽집게 과외 선생처럼 집중 교습시켰으니, 강 선생은 반쯤 죽었고, 나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다른 기자가 인터뷰 하자 했더니 "성우제 기사 봐"라고 딱 한 마디 했다는 말이 들렸다. 말하기가 얼마나 지겨웠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왜 그렇게 캐나다 하고도 토론토의 지하철 속에서 금요일 하고도 밤 9시가 넘어 미친 놈처럼 웃어댔는가부터 빨리 이야기해야겠다. 저 재미 없어 보이는 강운구의 사진론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 지난번 서울 가서, 선생 뵙고 한 권을 사인 받아 얻으라는 백 뭐시기 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염치가 없어서 교보에 가서 샀다. 가격이 겨우 20달러도 하지 않아(2만원) 조금 슬펐다.

  그리고는 캐나다에 돌아와 12월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사진론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술술 넘어간다. 한국의 사진 현실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독설에 가깝다. 그게 독설이라 한들 '맞는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강운구의 글은 바로 독설이어서 재미있다. 이런 대목을 보자.

  회고전 개막식에는, 실력있는 교수로서, 그리고 유명한 작가로서의 홍순태를 축하하기 위해서 더는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울갤러리(지금의 프레스센터)의 큰 전시장으로 몰려왔다. 그 행사의 마지막에서 그이가 인사할 때, 정열 그 자체인 강건하고 씩씩한 사나이가 힘줄 울퉁불퉁한 큰 손등으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집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그 뒤로 열두 번이나 개인전을 더 했다. 앞으로도 열두 번은 더 하길, 그리하여 바닥나지 않는 정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홍순태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

  강운구는 그 전에 "전시회 개막에 부지런히 참석하다가, 어느 날 문득 "홍 선생 전시회 보러 다니다가 내 인생 다 가버리겠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다. 그 뒤부터 못 본 전시회가 많다"는 말을 한 터였다. 아무리 길게 쓰더라도, 그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대목에 다 들어가 있다. 강운구는 비평을 시작하면서 "그런데 나의 영혼은, 무조건 지지하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도, 비판적 지지 쪽으로 나를 몰고간다"라고 한 자락을 깔아놓았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사진과에서 배운 이라면 큰 영향을 받은 또 한 사람의 교수 한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이에 대한 강운구의 비평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1970년대의 어느 가을날 "김포 들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비행기가 막 떠서 떠나더라"란다. "그걸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더라"는 것이다. 그리워할 누군가가 떠나서 그렇겠구나 하는 지레짐작을 하고 있는데, "나는 언제 비행기를 타고 떠나 보나" 하고 사무쳐서 그랬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싶어 사무쳐한 그이는 결국 비행기를 탔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와 교수가 되어 대학 사진 교육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홍순태 한정식의 작품에 대한 강운구의 비평에서 나는 두 가지를 읽는다.

  첫번째는, 강운구는 비정하게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짜 비정한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나 떠올리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나는 이런 류가 정말 싫다. 경멸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정치적인 인간들이 너무 많다). 반대로 강운구는 저렇게 드러내 놓으니 좋다.

  다음은, 강운구의 작품 방법론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강운구는 웃긴다. 내가 위의 글들을 보면서 웃은 것도 강운구가 웃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운구가 유발하는 웃음은 어디 어디에 깊고 멀리 닿아 있다. 고교 국어시간에 배운 전통적 의미의 '해학' '골계' '풍자' 따위에 선을 대고 있는데, 그것은 채만식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전통 민속놀이에 닿아 있다. 최근에는, 농촌에 카섹스족이 등장한 걸 보고 촌부가 남편에게 경운기 위에서 하자고 하는 식의, 이문구 소설에 등장하는 류의 웃음이다.

  내가 읽은 강운구 사진의 매력이자 핵심은 바로 유머이다. 그이가 이런 유머를 왜 굳이 작품에 밀어넣으려 했을까를 생각하면, 유머가 없으면 슬퍼서 더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강운구는 시대를 기록하면서도 가난에 찌들고 찌든 고달픈 인생과 그 인생들이 빚는 참담한 시대상을 표현하면서 유머 감각을 절대 잊지 않는다. 이런 유머를 넉넉하다 또는 인간적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작가의 관점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찍는다고 사진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개성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관점을 확보해야 작품이랄 수 있는데, 강운구가 한국 사진계의 스승이자 어른으로 존중 받고 존중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확보한 바로 이같은 강력한 관점에서 연유한다. 

  그의 사진에는 인물이든 사물이든 주인공이 있다. 어느 사진을 보든, 누가 보든 그것은 쉽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이 있다는 것은 뚜렷한 관점, 서사, 쉽게 말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풍경을 말하고 시대를 이야기하고, 인생과 역사를 증언한다. 나는 강운구를 강운구답게 하는 관점은 바로 위의 사진에 집약되어 있다고 믿는다.

  1970년대 초반이나 60년대 말쯤일 것이다. 서울 종로의 어느 거리에서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를 업은 젊은 어머니가 주저앉아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다. 길 건너 보이는 은행에서 읽을 수 있는 '돈' 때문인가, 아니면 버스로 유추되는 '이별' 때문인가. 아무튼 아무도 없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세 모자는 슬프게 버려져 있다. 아이들의 입성으로 보면 부도난 부잣집 가족이 아닌가 싶다.

  이 가족의 슬픈 사연은, 둘째 아들의 돌아선 등에서도 어렴풋이 보이지만, 특히 장남으로 보이는 소년의 표정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열살 남짓한 소년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하다. 아빠가 없으니 장남이 가장이다.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그는 뒷짐을 지고 있고, 가장답게 그의 슬픔에는 책임감이 서려 있다. 나는 저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슬펐다. 양인자가 쓴 조용필 노래의 가사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가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다.

  강운구의 사진은 매사 이런 식이다. 또 한 장 서비스. 내가 하는 건 아니지만….

 
  1960년대 어느 농촌에서 기록한 장면이다. 부인이 앞에서 소를 끌고, 남편을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한다. 소가 말을 듣지 않아 젊은 색시가 소를 잡아 끌었을 것이다. 소는 개긴다. 개기다가 논바닥에 벌렁 나자빠져 있다. 나자빠진 소를 보는 젊은 각시는 민망하다. 소가 개기는 게 마치 자기 탓인 양…. 그렇다고 내가 소 노릇 대신 할 수도 없고….  혹시 내가 잘못 끌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남편의 몸짓은 각시나 소를 탓하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소에게 '너도 일만 하니 힘들지?' 하고 말하는 듯하다. 네 장으로 되어 있는 사진 가운데 마지막 장의 이 장면이 압권이다. 벌렁 자빠진 소를 보며 치마를 올리고 서 있는 각시의 민망해 하는 마음이 2010년 캐나다에 사는 내 몸에까지 전달된다. 아이구, 민망해라, 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강운구는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이렇듯 한국의 풍경을 보아왔다. 다큐 사진이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큐 사진을 예술이 되게 하는 힘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작가의 주관인데, 강운구의 사진이 그렇다.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새마을 광풍이 몰아쳐서 30년 만에 몽땅 바뀐 한국 마을과 사람의 풍경들은 강운구가 아니었다면 흔적은 물론 그 기억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강운구는 풍경과 사람이 아니라, 풍경과 사람의 이야기를 찍었고 그 이야기로 역사를 썼다. 그의진은 바로 언어로 번역된다. 사진 한 장으로 10매도 쓸 수 있고, 1000매도 쓸 수 있다.  

  그러나 강운구가 쓴 역사는 고루하고 답답하고 지겨운 이야기가 아니라, 소가 개기며 자빠지는 광경 따위가 수시로 등장하여 발랄하고 경쾌하고 재미있다. 하여 그이는 남루해만 보이던 우리의 과거가 가난하지만 풍요로웠다고 말한다. 지금의 풍요롭지만 가난해 보아는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제목에 충실한 본론으로 돌아간다.

  강운구 선생이 '강운구가 없는 사진전'을 연다고 한다. 지난번 서울에 갔을 때, 강운구 사단의 맏형 백승기의 차 옆자리에서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이창수라고 하는 이가 기획하여,  강운구를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강운구 앞에만 서면 '덜덜 떨면서' 사진을 찍은 후학 후배 제자 20명이 모여 작품을 낸다고 했다. 사진가 강운구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왕창 찍힌 사진들로 여는 전시회이다. 후배들이 요청하지 않았으나 내주었으면 더없이 영광이겠다 싶은, 강운구의 절친 동료 주명덕과 황규태가 강운구를 찍은 작품 한 점씩을 출품했다고 한다. 이런 걸 두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말한다.

  http://photobada.com/120119247952에 가면 좋은 작품들이 모여 있다.

  나는 후학과 후배와 제자들이 '덜덜 떨면서' 찍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강 선생처럼 젊고 즐겁고 유쾌한 분 앞에서 덜덜 떨었다고? 그런데 강 선생의 절친인 나의 대학 선생님을 떠올리니 덜덜 떨 수밖에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나의 대학 선생님께 나는 벌벌 떨며 내가 쓴 글을 보여드렸었다. 나의 대학 선생님은 그의 대학 선생님 앞에서 "난 벌벌 기었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덜덜 떨지도 않으면서, 사진가들은 덜덜 떤 분에게서 은혜를 참 많이도 입었다. 기자로서도 복이고, 사진 애호가로서는 더 큰 복이다. 이번 <강운구를 핑계대다> 사진전에 나온 백승기의 작품을 나의 졸저에 일찌감치 실었던 것도 복이다.


 사진을 낸 후학 가운데 유일하게 덜덜 떨지 않은 걸로 짐작되는 백승기여서(유일하게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운구 형'이라 부른다) 그런지 사진이 참하고 예쁘다. 근엄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강 선생 책을 챙기다 보니, 난 참 많이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이 받아, 얼마나 받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러고 보니 강운구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 생각해보니, 지난해인가, 백승기 형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걸 이곳에 기록해 놓자. 또 강 선생이 내게 보낸 엽서의 그 아름다운 문장도….


보낸사람 Wooje Sung <sungwooje@gmail.com>
받는사람 백승기 <igx@hotmail.com>
날짜 2008년 11월 19일 오후 11:05
제목 책 잘 받았습니다
보낸사람 gmail.com




후배가 책을 여러 권 가져 왔던데, 그 중에서
 강선생님 책 <겨울에>를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사진집이라 빨리 볼 수 있어서 그랬지만 어느 책보다 재미있군요.
<저녁에>라는 제목도 그렇구요.
'저녁에'라고 제목을 붙인 뜻이, 저녁 무렵, 시골에서 밥짓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바로 그 무렵의
느긋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는지, 저는 사진을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드네요.

  <저녁에>가 <마을 삼부작> 이후 여는 첫 개인전이라면, 저는 강선생의 전시를 빼놓지 않고 봐온 셈이군요.
이번에는 비록 책으로나마...
  
  깜짝 놀랐습니다. 강선생의 변신이라고나 할까, <마을 삼부작>이 넉넉한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뭔지 모를 긴장감을 생기게 했다면, <저녁에>는 일면 파괴된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서도 긴장감을 풀게 하는 묘한 느낌...

  <마을 삼부작>이, '아, 예전에 이런 게 있었지... 이런 걸 잃어서 원통하도다' 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면,
<저녁에>는, '아, 지금도 이런 게 남아 있구나... 아직도 이런 게 있어서 유쾌하도다'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고나 할까요?
참 묘한 아이러니죠. 저는 이것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염부꾼>의, 저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해 보이는 얼굴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표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네요.
저런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런 사진들이 나오지요.



  


  사진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강선생께서 대단한 실험정신을 발휘하셨네요.
하나의 풍경을 두고 근접해 들어가는 방식... 디지털이 할 수 있는 것을, 아날로그도 얼마든 할 수 있다, 젊은 애들이 컴퓨터 통해서 하는 
바로 그것을, 늙은 나는 경륜을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보마, 하는 자신감 같은 것. 바로 그런 게 보이고요.
  
  장면 하나를 가지고, 근접 촬영을 해나가면서, 장면 하나 하나로 마치 장편 소설을 쓰듯 하셨군요.
사진과 사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게다가, 그 반전은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신식 광배> 연작이 대표적인데...


  제가 강선생 사진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거든요.
  그런데 그 웃음이 실은 슬픈 웃음이라서 더 재미나고 또 깊은데, 바로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유머 방식인데, 이번 사진에서도 그런 것들이 참 많이 보이더군요. 골계와 해학이라는 것. 김유정 소설 같은 거...

  <어떤 무덤>을 보세요. 사람이 죽어 묻힌 무덤이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참 웃기도록 질기지요?
또 <공든 탑이...>나 개와 나란히 앉아 있는 소경의 모습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지...
이번 사진집에는 빙긋이 웃음짓게 하는, 그러나 슬픈 앙금이 남게 하는, 바로 그 강운구스러움이 유난히 많이 올라와 있네요.

  마지막의 그림자 사진은 또 얼마나 기발난 아이디어인지...
화가, 사진가의 가장 큰 고민은 얼마나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인데, 
강선생은 확실한 방법을 하나 만들어내셨네요. 
사진 속에 사진가의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하는 것도 새로워 보입니다. 
강선생은 아직도 젊다는 느낌이 확... 나이 들어도 예술가가 새로운 거 만들어내면 젊은 거죠. 

  하여간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네가 있었더라면 좋은 글 썼겠다"는 백선배의 말을 그냥 하는 말로 들었는데, 
사진을 보니, 진짜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땅위> < 오래된 난초>를 보면서, 그 상반되는 스토리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제가 글을 썼다면 제목이 '중절모와 청바지'였을 겁니다.
이번 작업을 보니, 딱 그거네요. 


  이런 사진전인 줄 알았더라면 뱅기 타고 가볼 걸 그랬다고, 아침에 일 나가면서 마누라에게 말했더니, 능히 그러고도 
남았을 거라네요. 예전에, 백남준 구겐하임 전시 보려고 내 돈 들여 비행기 타고 뉴욕으로 가본 적 있는데, 
3박4일 다녀왔는데,  후회하지 않았거든요.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여하튼, 어제 저녁에 책 받아서, 운전 하는 사이사이 하루 종일 넘겨보고, 또 보고 하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토론토에, 오늘 첫 눈이 소복히 내렸는데, 강선생의 <낙엽>이 눈덮힌 세상과 같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고...

  작품을 사고 싶다는 백선배의 말에 백분 공감합니다.

  제가 작품을 샀다면 <오래된 난초>를 찍었을 겁니다.

  작품 감상 잘했습니다. 강선생님께 보물책 두 권이나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두고 두고 감사해 할 것이라고 전해 주세요.

 이민온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나에게 강 선생께서 책과 함께 엽서를 보내 응원을 해주셨다. 만년필로 쓴 그 내용이 하도 따뜻하여 나는 그것을 액자에 넣었다.

  우제 형께
좋은 곳에서, 즐겁게 좋은 표정으로 사시지요?
암만 좋아도 내 고향보다야 좋을 까닭이 
없겠지만은. 씩씩한 우제 형은 모든
어려움 극복하고 씩씩하게 지내실 걸로 믿습니다.
거기 경치는 거대해서 사람들에게 겁 주지요?
그렇더라도 겁 먹지 마시고
빨리 빨리 친해져서 여기서와 다름없는
안정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난 번의 글들이 어떻게 묶여서 다른 모양으로 나왔습니다.
우제 형 덕분입니다. 고마워요.

20004년 정월 강운구 올림


  이런 예술가를 보유한 것만으로도 한국은 엄청난 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