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올랜도에 다녀왔다.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약 5,500km. 워싱턴으로, 앨러바마의 오번으로 돌아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내슈빌과 디트로이트를 거쳐 캐나다의 원저로 국경을 넘었다. 직선 코스로 바로 내려가는 것보다 1,500km 정도 더 돌아다닌 셈.
5,500km를 뛰고도 끄떡없었던, 마지막 하루 타이어에 굵은 못이 박혀 펑크가 났어도 공기만 채우고 시속 140km로 이틀씩이나 달려준 애마에 우선 감사하고...
과연 듣던 대로 압도적이었다. 볼거리가 너무 풍성하여 짧은 시간에 무엇을 보아야 할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디즈니월드가 가장 바쁘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작년 같은 시즌에 다녀온 친구의 말이, 작년에는 줄서는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고 했다. 올해는 볼 만하다 싶은 것을 보려면 1시간30분 정도는 기본으로 줄을 서야 했다. 얼마전 개관했다는 해리포트 성은 성탄 전야의 명동을 방불케 했다. 입장하는 것은 거의 행운에 가까웠다. 그렇게 들어가서도 밀려다녀야 했다.
주로 놀이공원이었다. 그곳을 다니면서, 과거 한국에서 쓰던 문화산업 관련 기사들을 떠올렸다. 테마파크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근본에는 무엇이 있고, 또 돈은 얼마나 벌어들이나 하는 따위의 내용이었는데, 말로만 듣고 쓰던 바로 그 테마파크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나는 그곳에서 돈을 쓰고 있었다.
디즈니월드의 매직킹덤에서 본 시가지 쇼 장면이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텔레비전 만화에서 서 어릴적부터 보아왔던 캐릭터들이 이렇게 분장을 하고 나와 춤을 추는데, 참 그게 장관이었다.
이런 광경들은 도처에서 너무도 쉽게 보였다. 나는 이런 사진을 일부러 찍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나중에 정리하다 보니 많이 나왔다. 그만큼 캐릭터의 이미지가 그곳에 많았다는 얘기다.
디즈니월드의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있는 <인디아나존스> 공연장이다. 영화를 찍는 장면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배우들이 직접 설명을 하면서 공연을 벌인다. 헬기가 등장하고, 큰 폭발이 있고, 액션이 있고 춤이 있는 기발한 공연이다. 연극도 영화도 뮤지컬도 아닌, 딱 뭐라고 장르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그냥 디즈니월드의 공연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형식과 규모, 그리고 그 완성도에 압도되었다. 재미있었다. 세번째 사진 오른 쪽 끝에 보이는 것은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는 비행기이다.
밤 10시 무렵 디즈니월드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거리 풍경이다. 밤 11시까지 가는 곳마다 이런 풍성한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유니버셜스튜디오의 거리에서 본 밴드의 공연 장면이다. 세계 최고의 위락지답게 최고의 사운드를 내는 밴드들이 이렇게 거리에서 멋진 공연을 펼쳤다. 어디를 가든, 볼거리가 너무 많아 사람이 지칠 지경이다. 게다가 최고들 또한 너무 많아, 최고가 최고가 아닌 것 같았다. 입장료는 또 얼마나 비싸게 받는지, 4인 가족이 이틀 동안 둘러보는데 거의 1000달러를 써야 했다. 일주일치, 사흘치를 살 수 없으니 부득이하게 하루치를 살 수밖에 없어 더 비쌌다. 보는 방법을 좀더 살피고 갔더라면, 돈도 줄이고, 집중적으로 한 곳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안보면 또 언제 오나 싶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면서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도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비싼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면. 노부부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평생 꿈을 꾸어온 사람들로 보였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에프캇 과학기술 공원이었다. 그곳의 상징물은 에프캇센터라 불리는 구다. 그 안에서는 인류 문명사, 정확하게 말하면 서구 문명사를 보여주는데 빙하시대부터 컴퓨터시대까지 망라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줄을 지어 미니열차를 타고 가면서 각 시대별 문명의 변화와 발전을 보게 해놓았다. 스토리를 얼마나 잘 만들고, 또 조형물들은 얼마나 생생한지 연신 감탄했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천장화를 누워 그리는 장면에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
이같은 하드웨어를 가능케 한 근본적인 힘이 공학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점이었다. 그 상상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인문학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학문. 인문학의 바탕이 없다면 상상력도 불가능하고, 상상력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이끌어내는 힘도 나오지 않을테고, 그것을 조직하여 이렇게 거대한 문화산업으로 연출하는 에너지도 물론 만들 수 없다.
예전부터 인문학의 위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디즈니월드에서, 디즈니월드를 가능하게 한 근본 바탕이 인문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게 위기라면 세상 사는 재미가 많이 줄어들겠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 역설이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과거 문화산업이 어쩌고 저쩌고 수없이 기사를 썼다. 이곳을 보고 나니 말이 필요없겠다 싶다. 월트 디즈니가 만든 작은 쥐새끼 한 마리가 쌓아올린 산업. 입이 딱 벌어진다. 미국이 괜히 미국이 아니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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