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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가수 모독 좋아하시네 !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는 모양입니다.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나 다른 곳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정엽 이소라 박정현 김범수 윤도현이 노래하는 것은 보았습니다. 김건모와 백지영이야 예전부터 워낙 노래 잘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고, 직접 확인한 바도 있으니, 안봐도 비디옵니다.




   노래 중간에 자료 화면 때문에 끊기건 어쨌건 최고 실력파 가수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즐겁습니다. '아니, 내가 왜 이짓을?' 하는 듯하면서도 가수들은 역시 프로들답게 최선을 다하고, 동료들을 격려하고 즐기고 칭찬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오늘 어느 기사를 보니, 이들의 선배 가수인 조 아무개라는 자가 "예술에 대한 모독이다. 참을 수 없다. 김건모나 이소라가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수들이 스스로 망가지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을 합니다. 프로페셔널들을 어떻게 순위를 매겨 나열할 수 있느냐는 비판입니다.  또다른 어느 가수도 비슷한 취지로 비판에 참여합니다.

  예전부터 나는 박정현이라는 가수를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단한 실력에 비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깝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학력만 좋으면 일단 높게 치고 보는 한국에서, 콜롬비아대학 출신의 박정현은 그 프리미엄도 누리지 못합니다. 임재범과 함께 부르는 다음의 노래를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칩니다. 노래를 이렇게 잘 합니다. 



  <나는 가수다>는 박정현 같은 좋은 가수들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진짜 가수란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예능이 되었건 음악 프로그램이 되었건 가장 많은 이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황금 시간대에, 중간에 끊기든 어쨌건 실력파 가수들의 노래하는 모습이 비쳐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박정현이라는 뛰어난 가수가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도 유튜브에 가서 한번쯤 찾아보게 합니다. 캐나다에 사는 나도 김범수와 정엽을 찾아보고, 기회가 닿으면 음반 한번 사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좋은 가수를 소개하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음악여행 라라라>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소모품으로 가수들을 동원했다고도 비판합니다. 이런 얘기는,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개소리'입니다. 뒤집어 말해서, 사람들의 관심도 별로 끌지 못하는 심야의 음악 프로 2시간짜리보다는 프라임타임대의 예능 프로에 나와 5분 노래하는 것이 대중음악 발전에 훨씬 더 크게 기여합니다. 가수가 노래는 안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망가지는 걸로 유명세를 얻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기에 좋습니다. 
   
  프로들을 어떻게 순위를 매겨 나열할 수 있느냐는 비판 또한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요지부동이고, 그것이 대중음악 발전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내가 십수년 전 딴따라 기자할 때도 비판하던,  벌써 수십년 전부터 제기된 문제입니다. 그래도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굳건히 살아남아서, 어쨌거나 한류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조 아무개씨의 눈에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프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가수들을 순위를 매겨 나열하는 게 아닌 것으로 보이는지 그게 참 궁금합니다. 왜 그는 수십년 동안 젊은 프로들을 데려다 순위를 매긴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프로를 데려다가 순위를 매기는 것은 가수와 음악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자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면, 이번 비판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자기가 프로라면, 다른 동료 프로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을 일단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윤도현은, 김건모는, 백지영은, 조 아무개보다 노래를 못하고 프로답지 않아서 그 '순위' 프로그램을 선택했다고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그들도 조씨 못지 않은 프로로서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거기에 나가 긴장을 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점차 뒤로 밀려나는 성인 음악을 살려보자는 노력도 보입니다.

  이런 저런 순기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수를 모독하는 것이라 비판하는 것은, 조 아무개씨가 후배 가수들을 오히려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가수로서, 가수들이 저런 곳에 나가서 노래 하지 않아도 가수로서 대접 받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수 아닌 다른 일로 유명세를 얻어, 그 유명세를 통해 가수로서의 명맥을, 그것도 함께가 아니라 오로지 혼자 이어나가는 것은 프로페셔널 가수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 가수가 노래가 아니라, 몸과 말로써 망가져야 유명해질 수 있다는 표본을 지난 수십년간 보여, 노래만 잘 하고 망가지는 재주라고는 없는 가수들을 방송에서 밀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강운구 선생이 잘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수 모독 좋아하시네!"

  다음 선수로서는 임재범이 거론되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신승훈 이승철 김종서 등 노래에 목숨을 건 가수들이 실력을 발휘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탈락했다고 해서 명성에 크게 흠이 가는 것도 아니고, 실력없다고 누가 비난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흠이 간다 한들 '가수란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말과 몸 개그가 아니라 오로지 노래로써 보여주는 순기능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