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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하이라인, 맨해튼 흉물이 명물로 거듭나다

  하이라인을 아는가?

  캐나다의 브루스트레일, 한국의 제주올레 등 걷는 길에 대한 관심이 요즘 부쩍 많아지고 있는데, 나는 뉴욕에서 오랜만에 감동적인 길을 보았다. 다른 트레일이야 워낙 자연 속에 길이 나 있으니, 그 자체로 편안하고 감동적이라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반면 뉴욕 맨해튼에 생겨난 '하이라인'이라는 길은 자연 속의 길이 아니라 산업시대의 폐기물을 걷는 길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감동적이다.  말 그대로 리사이클링이다. 흉물이라 하여 때려부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디어만 내면 얼마든지 명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이라인은 일깨워준다. 나는 미국의 힘을 여기에서 다시금 확인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 길은 빌딩 숲속에 있다. 길을 새로 낸 것이 아니라 맨해튼 서쪽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버려진 고가 철로가 아름다운 길로 만들어졌다. 공원이라지만 사람들은 모두 걷는다.

 

 

 

  왼쪽에 보이는 철길은 원래 1800년대 후반에 놓인 것이다. 사고가 빈번하자, 뉴욕시 당국은 9미터 높이의 고가 철로를 놓아 1934년에 개통했다. 고가 철로를 오간 기차들은 맨해튼 서쪽에 밀집해 있는 각종 공장과 창고의 화물을 실어날랐다. 철로의 오른쪽은 거대한 푸줏간과 육류포장 공장 지대였다. 기차는 1980년까지 운행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화랑가인 첼시에서 올려다본 고가철로이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철길을 걸어다니는 것이 신기하여 나는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다. 

 

 

첼시의 남동쪽의 푸줏간 거리에서 본 철로이다. 기차가 달렸다면 그래도 운치라도 있을텐데, 1980년 열차 운행이 중단된 뒤로는 만고에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주변 건물주들이 중심이 되어, 고가 철로를 걷어내려고 뉴욕시를 상대로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이 지역 주민들이 '기차에 대한 향수'를 내세워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그냥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당시 뉴욕시장 블룸버그와 담판을 짓는다.

 

  그 대안이라는 것은, 바로 공원이다. 공원이 길게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산책로가 되었다. 얼마나 근사한 산책로가 되었는지 보자.

 

 

 

길을 걷다보면 허드슨 강이 보인다. 산책로 옆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꽃과 나무가 즐비하다.

 

 

 

 

 

 

 

 

 

 

  짜투리 공간에 공연장을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거리의 악사며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반드시 등장한다.

 

 

 

 

  오래된 철길이다 보니, 그 후에 지어진 건물들은 철길 위로 세워졌다. 기차가 건물 밑으로 지나갔었다. 이제는 사람이 그곳으로 지나간다. 이런 건물들 중에는 화장실을 내주는 곳도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은 못 찍었다. 화장실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찍기가 좀 멋쩍어서.

 

 

 

 

 빛이 좋으니 일광욕은 당연히 할 것이다. 기온만 올라가면 비키니족이 등장한다. 아래의 의자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누워서 더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바닥과 연결해놓았다.

 

  오른쪽에 보이는 청년은 나와 함께 첼시와 하이라인을 함께 둘러보았던 뉴욕의 화가 한규진이다. 그 앞에 놓여 있는 쇼핑백은 세계 최고, 최대의 갤러리인 가고시언의 것이다. 한규진 덕분에 가고시언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미공개 유작 작품집을 얻었다. 한규진이, 첼시 갤러리 투어 가이드 알바를 할 모양이다. 관심있는 이들은 연락 바람. 첼시를 한규진만큼 잘 아는 한국 사람도 없다. 하이라인도 당연히 걷게 될 것이다.

 

 

  하이라인에서 내려다 본 세계 최고의 갤러리가인 첼시이다. 하이라인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걷다가 첼시의 갤러리에 들러 펄펄 살아 숨쉬는 첨단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업 갤러리이니, 입장료는 없다. 공짜다.

 

 

 

  아래 도로와는 이렇게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입구가 여러 개 있고, 휠체어를 위한 엘리베이터도 여럿 설치되어 있다.

 

 

 

 

 

  위의 사진 3장은 하이라인 홈페이지에서 빌려왔다. 설명 없어도 무슨 내용인지는 다 알 것이다.

 

  하이라인 인근 주민들은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이 길을 만들었다. 부지는 뉴욕시와 뉴욕주가 내주었다. 2009년 9월6일에 1구간이 개통되고, 2011일 6월8일에는 2구간이 열렸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3구간은 34가까지 이어지는데, 1~3구간까지의 길이는 2.33km에 달한다.

 

  하이라인의 운영 경비는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기금 마련 행사와 기부금을 모아 90% 이상 충당한다고 했다. 하이라인에서 느끼는 것 두 가지. 첫째는 미국의 힘을 다시금 보았다. 둘째, 분해되어 사라진 조선총독부 청사와 청계고가가 어느 면에서는 참 아깝다. 철거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하이라인은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하이라인이 명물이 되니, 첼시 이외의 주변 공장 지역도 패션과 고급 식당가로 변모중이다. 하이라인을 걷는 예쁜 백인들은 모두 유럽 관광객이라고, 어느 뉴욕커는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은, 이 길에 한국인의 감각이 스며들었다는 사실. 하이라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총괄한 회사(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담당 수석 디자이너 2명 중 1명이 황나현씨이다. 프로젝트 팀(9)에서는 윤희연이라는 한국 이름도 보인다.

 

www.thehighline.org에 가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