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괘종시계였습니다.
나이가 조금 있는 분들의 눈에는 아주 익숙한 시계일 것입니다. 디지털 전자 시계가 나오기 이전인 1980년대 초반까지 왠만한 집의 마루에는 이 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밥을 주는 아날로그 괘종시계로서는 그 역사의 마지막 즈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데, 거라지 세일에서 발견한 이 시계는 놀랍게도 '한국산'이었습니다.
'세일'을 하고 있던 백인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얼마?"
"20불."
"10불로 하자."
"작동한다.15불."
"아니, 10불. 별로 필요치 않은데 made in Korea라서 사고 싶다."
"좋다. 10불."
이렇게 흥정을 하여 10불(한국돈으로 약 1만원)에 샀습니다.
집에 들고와 지하실 벽에 걸어놓으니 여간 근사하지가 않습니다. 시간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지 않았으나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근사할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도 이 시계를 구하려고 인사동이고 황학동이고 싸돌아다녔으나 한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어느 복덕방에 오래된 괘종시계가 있어서 눈독을 들였으나 인근 중학교 교사가 수박 한통을 사놓고 먼저 떼가는 바람에 통탄해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시계를 구하려고 애를 쓴 첫번째 까닭은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괘종시계는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시골 우리 집의 대청 마루에 저만한 크기의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시간을 알리는 댕댕 거리는 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습니다. 아버지는 가끔씩 시계의 문을 열고 열쇠 같은 것을 돌리시곤 했는데, 아주 어릴 적에 뭐 하시는 거냐고 여쭤보면 "밥을 준다"고 했습니다. 나는 시계에게 왜 밥을 줄까를 한참 생각했고,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나도 저 괘종시계에 밥을 줄 때마다 어릴 적 풍경을 떠올릴 것입니다. 내 아이가 뭐 하는 거냐고 물으면 딱 한 마디만 할 것입니다. "밥 준다."
두번째 이유를 꼽자면 디자인이 소박하고 예쁘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가 예쁘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물건이어서, 저 디자인에 내가 기억하는 세월이 묻어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요즘 아무리 비싸고 예쁜 디자인이 있다 한들, 세월이 만든 디자인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저 시계에는 영문/불문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시계 이름은 CITIZEN인데, 1970년대 말경에 한국에서 제작되어 캐나다로 수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간수하기 어렵고 효용성도 떨어지는 저 시계를 30년 가까이 간직해온 캐나다의 그 집이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오늘 오후 먼지를 닦아내고 지하방의 벽에 걸었습니다. 이 일 한 가지로 어제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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