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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에서 한국정치 두고 싸우는 사람들


   외국에 살러와서 한국 드라마 보고, 한국 소설 읽고, 한국 사람 만나 놀고, 한국 교회 가면서 아무리 한국에서처럼 산다 해도 좀 너무하다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뉴스 없나 싶어 가끔씩 동포신문 게시판을 기웃거리는데, 요즘 들어 참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제 치러지는지도 나는 잘 모르고, 이곳에서야 알 필요도 없는 한국의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그 게시판에서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는지, 이전투구의 흥미진진한 그 현장은 차마 공짜로 보기 미안할 지경입니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진풍경입니다. 

  외국에 살면서 캐나다 정치도 아닌 한국 정치에 왜 그리들 관심이 많으며, 관심뿐만 아니라 서로 욕까지 해가며 왜 저렇게들 싸울까, 궁금하기도 신기하기도 하여 요 며칠 관전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조금만 보면 다 아는 내용을 들이대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싸움을 벌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정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더이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문제들까지 새삼 끄집어내어 싸웁니다. 이를테면 80년 광주가 민중항쟁이냐, 북한의 지령에 의한 폭동이냐 하는 식으로…. 옛일을 두고 너무 질기고 진지하게들 싸워서, 새로운 '학설'이 나왔나 궁금해 할 지경입니다.

  순간 번쩍 떠오른 생각 하나. 외국에 사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 이토록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심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르라 해도 캐나다 정치는 한국 정치에 비하면 무료하기 짝이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안다 해도 캐나다 정치를 두고 한국 사람들끼리 싸울 일이 없습니다.

  반면 한국 정치는 얼마나 재미나는 소재인지 모릅니다.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목에 핏대세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익명이지만 아주 사생결단하고 싸웁니다. 사생결단이라 함은 그 싸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듯 말입니다.

 처음에는 '참 한심한 사람들이다'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남자들이 재미있어 할 드라마도 별로 없고, 요즘 한창 진행중인 NBA나 NHL 플레이오프에도 별 흥미들이 없고, 나처럼 블로그질이라도 하면서 놀기에도 좀 그렇고, 얼마나 심심하면 저럴까 싶습니다. 

  나도 저 판에 한번 끼어들어 놀아볼까 하면서도, 한국 정치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어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싸움의 그 진기명기 만들기, 삿대질하며 욕하는 재미에 중독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여하튼 엄청나게들 싸웁니다. 좁은 바닥이니만큼 한국에서의 싸움은 저리 가라입니다. 지난번 서울에 갔을 때, 어느 자리에서든 한국 정치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자리에서든 정치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지겹거나,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멀리 살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지겹지도 않고 포기할 수도 없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한국정치만큼이나 재미나는 싸움 아이템은 없는 모양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심심하게 사는 저들이 참 안됐다 싶습니다. 나도 늘 심심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