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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에서 보니 "허정무 감독, 복도 참 많아요"

  

외국에 살러나온 이래 처음으로 우리 교민들이 합동 응원하는 곳을 찾았습니다. 스크린을 보며 하는 단체 응원이 어떤 것인가를 경험하려는 목적보다는, 일반 텔레비전에서 중계 방송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SBS처럼 이번 월드컵은 캐나다 국영방송 CBC가 독점 중계했는데, 경기가 겹치다 보니 한국 경기는 인터넷으로만 생중계했습니다. 과거 여러 채널이 중계하면서 겹치기 방송도 하지 않았고, 빠뜨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선 마지막 경기의 하위팀들이 방송 불이익을 받게 되었습니다.

16강이 확정된 이후 토론토에는 이렇게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가 많아졌습니다.


  16강에 올랐으나 개인적으로는 참 씁쓸했습니다.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한국의 잘 하는 축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의 작전에 따른 한국팀다운 경기였다기보다는, 선수 개개인이 가진 역량이 간신히 무승부를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의 첫 골은 그리스전을 참고하지 않은 나이지리아의 명백한 실책이며, 두번째 골은 박주영 개인의 골입니다.

  아시다시피 히딩크는 한국팀이 가진 특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모두가 죽자사자 뛰면서 일사분란함을 유지하며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벌떼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죽으나사나 공격이었습니다. 

  허정무는, 한국 축구의 특징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히딩크 방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선굵게 공격을 퍼붓는 것이 히딩크식 한국 축구였다면, 허정무는 상대방 문전에서 '깔짝'대는 스페인 방식을 빌려왔습니다. 체력과 스피드, 조직력이 뛰어난 한국팀에게 히딩크식은 통했고, 허정무식은 실패했습니다. 스페인과 같은 개인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허정무식은 무엇 하나 시원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세트피스가 3골이었고, 나머지 2골은 박지성 이청용 개인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허정무 축구의 압권은 2대 1로 리드할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수비는 공을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두 세번 빼앗겨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히딩크는, 딱 한 번 실수한 주전 골리 김병지의 주전 생명력을 끊어버렸습니다.

  허정무식이 두드러진 것은 선수 교체입니다. 허정무 또한 히딩크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카드를 끄집어냅니다. 다른 점은, 히딩크는 "절묘하다"며 무릎을 치게 했는데, 허정무는 "아, 저건 아닌데" 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공격수 염기훈을 빼고 왜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을 넣습니까? 히딩크 아래에서 진공 청소기였던 남일이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맙니다. 상대방 문전에서도 하지 말았어야 할 드리블을 우리 문전에서….ㅠㅠ 남일이답지 않았습니다.

  김재성의 교체는 그렇다치고, 박주영을 빼고 수비수 김동진을 넣는 것을 보면서 "악" 소리가 났습니다. 스트라이커 한 명은 남겨두어야 역습을 하든 위협을 하든 할텐데, 한 명 남은 박주영마저 이동국 이승렬이 아닌 수비수로 바꿔버립니다. 

 그러고도 16강에 갔으니 억세게 운도 좋습니다. 우루과이가 멕시코를 이겨주는 바람에,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 피하려고 빡세게 했고, 한국이 이긴다는 소식 듣고 더 빡세게 하여 골을 넣어주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애들은 페널티킥보다 더 쉬운 무인지경의 골을 2개나 놓쳤습니다. 볼에 귀신이 씌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귀신이 씌지 않았다면 4대 2로 졌을 경기입니다. 

  허정무는 복이 많으나, 한국 선수들은 억세게 운이 없습니다. 전술이라고는 수비밖에 모르는 감독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풍산개처럼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할 선수들이 뒤로 볼이나 돌리니 하는 말입니다.

  오늘 경기를 보니 16강전에서 선전해도 그것은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입니다. 지금 한국팀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은 허정무 감독입니다. 현지에 가 있는 차범근 또는 김병지로 감독을 교체할 수도 없고... 상황이 참 거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