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술' 2009년 9월호에 실린 원고로, 2PM 재범군 사건이 나기 전에 쓴 글입니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그 극복 과정 등에 관한 내용이어서 "양키 고 홈!"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을 퍼부은 이들에게 코리언-아메리칸의 정신적 입장을 설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 8월5일 141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따라 북한을 빠져 나온 유나 리 기자는, 캘리포니아 버뱅크공항에 도착한 뒤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전형적인 한국식 인사였다. 유나 리를 잘 몰랐던 한국 사람들도 그 인사 하나만으로 그녀가 한국인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외국 생활을 아무리 오래 한다 해도 한국 사람의 몸에는, 이렇게 한국식의 그 무언가가 몸에 배여 있게 마련이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식’이라는것은 일종의 정체성이다. 1.5세나 2세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식’은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다. 그것은 유나리의 인사 예절처럼 부지불식간에 드러난다.
때로 그 정체성 문제 때문에 2세 젊은이들이 어린 시절 방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다수는 방황과 고민을 코리언-아메리칸으로서의 특성 혹은 강점으로 전환해낸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최근 그가 몰두하고 있는 평면 작품은 원형과 직선, 흐름과 멈춤, 나아가 동양과 서양의 특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추상 같지만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읽힌다. 바로 소통과 교섭과 섞임이다.
원형은 직선을 덮고, 직선과 곡선은 서로 교차된다. 부드러운 원이, 테이프를 붙여 정확하게 그렸다는 반듯하고 날카로운 직선을 부드럽게 감싼다. 직선이 정교한 붓질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꽉 차게 그려진 것이라면, 원형은 물감을 떨어뜨린 후 아래 위로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퍼지게 한 모양이다. 서로 친할 것 같지 않은 직선과 곡선,원형 들이 한데 어울려 묘한 조화를 이룬다.
열한 살 때인 1981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작가는 “처음에는 한국인이 별로 없는 휴스턴에서 ‘헬로’와 ‘굿바이’밖에 할 줄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혼란스러웠다. 나이가 들면서 혼란이 점차 사라졌다. 양쪽 문화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체험한 동서양의 문화가 최근 작품 속에 서로 소통하고 교섭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학부(캘리포니아버클리대학)를 졸업한 캘리포니아에서 한 번, 현재 활동중인 뉴욕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까지 수십 회의 그룹전에 참가해 왔다. 그의 작품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대형 원형과 사각 소품.
지난 7월말 뉴욕의 브루클린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작가는 전시회를 하듯 작품들을 벽에 걸어놓고 있었다. 작품 모두가 20*16인치 혹은 14*11인치 정도밖에 안되는 소품이어서 좁은 작업실 안에서도 전시장 분위기를 낼수 있었다. 작지만 강해 보였다. 작품들은 강렬한 원색들로인해 눈에 금방 들어왔다. 재료와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특이해 보였다.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이 사용되었고, 에나맬과 아크릴을 동시에 사용했다. 분홍ㆍ초록ㆍ하늘색ㆍ오렌지색ㆍ흰색 등 밝은 원색들은 서로 이합집산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4월19일자 <뉴욕타임즈>는 ‘지금은소품이 대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실을 적이 있다. 잭슨 폴록 이후 대형 작품이 평면의 주 흐름으로 이어져 왔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린 추상이 크게 유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뉴욕의 데이비드 주워머 갤러리 전속인 독일 출신의 토마 앱스가 소품으로 각광 받는 대표 작가로 꼽힌다.
“유행을 따른 것은 아니다. 작업 환경이 여의치 않아 소품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
필자가 캐나다 이민자로서, 이곳에서 성장한 1.5세혹은 2세를 만났을 때 갖게 되는 느낌을
‘지금은 소품 시대’라며 자기 작업에 의미를 부여할 법한데
소재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미를 달지 않았다. 그저 작업 환경에 맞게,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2년 전부터 해왔다는 새로운 작업은 소품이라는 특징 외에도, 앞서 언급한 소통과 교섭, 섞임의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 “1.5세로서 두 문화를 경험하다 보니 한 가지 내용보다는 두 가지 이상을 섞는 게 좋아졌다. 기하학적인 모양 위에 물감을 붓고 이리저리 자연스럽게 흘리면서, 두 가지 형상을 섞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그는 말했다.
강렬한 원색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휴스턴에서 이사를 간 캘리포니아의 색깔이라고 그는 답했다. 청소년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의 색깔이, 그리움으로 자연스럽게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작가의 전반적인 생활 환경을 집약한 듯이 보였다. 좁은 아파트, 구하기 쉽고 운반이 편리한 재료. 거기에 걸맞는 소품. “내가 살아온 환경, 현재 내가 처한 환경을 작품을 통해 살짝살짝 보여주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다른 작업으로 주목을 받은 작가였다. 2005년과 2007년 각각 열린 두번째, 세번째 개인전에는 대형 원형 작품들이 등장했다. 지름이 사람 키만한 크기의 화면 위에, 그는 다시원을 넣거나 점을 찍었다. 대형 원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동그라미들은, 여름철 한옥 대청 마루에 걸린 발 뒤의 풍경처럼 보일 듯 말 듯 은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캔버스의 사각형 틀이 지겨워졌다. 캔버스도 좋지만 어떻게든 그 틀을 깨고싶었다.”
그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Ready Made)’을우연히 발견했다. 자기가 치던 드럼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 주어진 환경이 작품의 내용으로 드러난 셈이다. 반투명인 대형 북의 피(皮) 뒤에 작은 드럼의 피를 붙였다. 작은북의 피에는 색을 칠했다. 작은북들은 큰 북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한편으로는 페인팅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각인 그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행성이 돌고 있는우주의 형상을 읽어냈고 기하학의 아름다움도 발견했다. 운반이 용이하고 좁은 작업실에서도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옮겨간 작은북 그림들은 또 자기들끼리 어울려 설치작품으로 나타났다.
“10대 시절에 전혀 새로운 문화를 갑작스럽게 접했다. 내 몸에 녹아 있는 한국의 문화와 조화를 시키지않으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활 자체가 하나로 똑 떨어지게 설명되는 게 아니었으니, 바로 그러한 느낌들이 추상으로 드러났다. 구상 작업을 한 적은 있으나,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추상으로 옮겨왔다.”
그는 서양악기인 드럼을 연주하는 한편 한국의 전통 사물놀이에도 5년 가까이 흠뻑 빠져들었다고 했다. 물론 악기는 북이었다. 드럼의 묘미와는 다른 색다른 체험이었고, 바로 그 두 가지 체험의 섞임이 코리언-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했다.
교섭과 소통, 섞임이라고 하지만
고단한 유학생이라는 처지가 뉴욕 화가
세계 예술의 수도라고 하지만, 전체 화가 가운데 전업으로 1% 정도만 생활을 해결한다는 뉴욕의 살벌한 예술 환경에서 십수년을 현역으로 버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대까지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2~3개씩 하면서 생존들을 한다. 30대에 들어서면 그것마저도 어려워진다. 예술가로서 뉴욕에 지쳐 30대후반에 뉴욕을 떠나는 화가가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고 한다.
39세에 이른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부업으로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품 보험회사의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뉴욕의 거의 모든 화랑과 거래하고 있으니, 예술의 경향과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접한다. 게다가 자기 작품을 갤러리에 직접 보일 기회가 많다. 그런 면에서 그는 행운이라고 했다.
4회 개인전의 계획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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