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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우리는 왜 뱀파이어와 좀비에 열광하는가?


글쓴이 : 김 상 현


이번 주말, 뱀파이어 영화 '뉴문'(New Moon)의 개봉을 앞두고 전세계의 뱀파이어 팬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영화를 포함하는 '트와일라잇'(Twilight) 4부작의 팬이라고 해야 맞을까요? 아무튼 뉴문이 이번 주말의 북미 영화판을 석권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오히려 관심사는 그렇게 긁어모을 돈의 액수가 얼마나 될까에 집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린 질문 하나는 '도대체 왜 사람들은 저토록 뱀파이어에 열광할까?'입니다. 사실 이 의문은 뱀파이어를 넘어 좀비, 위어울프, 라이켄 같은 괴물, 혹은 몬스터들로 확대됩니다. 우리는 왜 뱀파이어 영화, 좀비 영화만 나오면 시쳇말로 '사족을 못쓰'고 영화관을 달려가는 것일까요? 이때 그 영화가 별점을 몇 개나 받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 그렇게 못 만들었어? 어디 한 번 확인이라도 해봐야지... 와, 그렇게 잘 만들었어? 그럼 당연히 봐야지... ^^

아래 글은 그런 의문에 대한 제 나름의 풀이입니다. 한국의 '엠톡'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북미 신문들에 연재되는 인기 만화중 하나인 베티(Betty)의 10월15일치 에피소드는 세대 간에 달라진 문화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드래곤들은 멍청해. 거대한 덩치에, 하늘을 날며 불을 뿜는 도마뱀이라고? 말도 안돼!" 영화를 보던 10대 아들이 불평한다. "당시 기사들은 자기들의 가치를 증명해보일 만한 적이 필요했던거야," 엄마가 촌평한다. "하지만 그게 꼭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거여야 하나요?" 아들이 반박한다. "좀비나 뱀파이어랑 상대할 수도 있잖아요!"

만화 속의 아들이 보기에 드래곤은 엉터리에 가짜이고, 좀비나 뱀파이어는 실제이다. 혹은 현실에 가까운 캐릭터들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좀비나 뱀파이어가 지구상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죽어도 죽지 않는 (undead), 이 기괴한 존재들이 요즘 북미 지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누리는 인기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기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깝고 분명하게 존재한다.

좀비와 뱀파이어에 대한 북미인들의 열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온갖 설화와 신화,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 이벤트 등을 통해 몇백년 동안 면면히 흘러내려온 일종의 전통에 가깝다. 다만 '왜 이들은 이토록 좀비와 뱀파이어에 매료되고 집착할까?'라고 다시 묻게 되는 이유는 지난 1, 2년새 그 관심의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출판계에서는 뱀파이어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스테프니 메이어즈 (Stephenie Meyers)의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영화판에서는 좀비와 뱀파이어가 끊임없이 수천만달러의 매표 수입을 기록하며(언더월드, 트와일라잇, 렛미인 등), TV 드라마도 좀비와 뱀파이어를 내세워 인기몰이에 열중하고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트루 블러드 등), 컴퓨터 게임에서는 좀비와 뱀파이어 들이 번화한 뉴욕 다운타운의 행인들만큼이나 흔하게 활보한다. 2억달러 이상의 관객 수입을 기록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한 소설 '트와일라잇'의 영화 버전은 그 속편인 '뉴 문'(New Moon)에서 전편의 기록을 넘어설 기세이다. 오는 11월20일 개봉도 하기 전에 온라인 예매표가 동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흥행몰이를 겨냥한 과장 보도일 수도 있다).

다시 '왜?'라는 단순한 물음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왜 좀비와 뱀파이어가 북미의 대중문화에서 이토록 큰 인기를 끄는가?

그에 대한 여러 가설중 하나는 '여성층이 그에 매료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뱀파이어의 경우에 그렇다. TV 드라마 '트루 블러드'(True Blood)의 대표 프로듀서인 앨런 볼(Alan Ball)은 "뱀파이어는 섹시하지 않은가?"라고 당연한듯 반문한다. "그들은 우리의 인식속에서 섹스를 상징하는 일종의 은유이다." 그리고 그 성적 욕망에 대한 은유가 요즘처럼 흔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어디에나 뱀파이어이다.

한편 스타펄스(Starpulse.com)의 필자중 한 사람인 캐스린 스팍스(Kathryn Sparks)는 "그들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뱀파이어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해야 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과 전혀 다르게 역동적이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위기와 갈등의 연속이다. 그들의 세계는 지루한 일상에 질린 현대인들에게 더없이 달콤한 피난처를 제공한다"라는 것이다.

뱀파이어가 매력적인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죽지만 않을 뿐 아니라 늙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필연적으로 늙어 쇠약해지는 우리 자신을 뱀파이어의 신화에 비춰 보면 그들의 매력은 분명해진다. 그 뱀파이어가 브래드 피트나 톰 크루즈 같은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의 영화평론가인 팀 로비(Tim Robey)는 영화에서 드라큘라로 분한 배우들이 벨라 루고시(Bela Lugosi)로부터 크리스토퍼 리(Christopher Lee)와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을 거쳐 제라드 버틀러(Gerard Butler)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젊고 섹시한 배우들로 채워졌음을 지적한다.

뱀파이어에 견주면 좀비는 좀더 집단적으로 활동하는 괴물이다. 독립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떼지어 다닌다. 좀비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1978년 영화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를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더(Zack Snyder)의 2004년작은 현대 사회의 특정한 현상을 비꼰 알레고리로 읽힌다. 그 영화에서 좀비들은 교외의 버려진 쇼핑몰을 덮친다. 최면을 거는 듯 조용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좀비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아무 생각없이 떠돈다. 그게 좀비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쇼핑몰 처지에서 볼 때는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졌을 고객이다: 아무 생각없이 매장안을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

그 속내야 어떻든, 좀비와 뱀파이어는 이제 주류 문화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늘 'B급 영화'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고, 대체로 '비주류'나 '컬트'라는 말에 수식되었던 이 괴물들은 당당한 주류의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젊은이들로부터 동지애나 연대의식, 심지어 동일시 현상까지 끌어내고 있다.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를 다룬 트와일라잇, 가정과 학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어린 주인공이 뱀파이어로부터 사랑과 우정을 얻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10월15일치 기사 '소년, 소녀, 좀비, 뱀파이어 그리고 섹스에 관한 진실'에서 좀비와 뱀파이어에 관한 영화가 10대 청소년층에서 특히 크게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들[좀비와 뱀파이어 - 필자주]은 섹스와 죽음 그리고 먹이에 대한 우리의 매혹을 상징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들은 죽지 않고, 우리를 먹이로 하며, 기괴한 역병(疫病)을 퍼뜨리고, 특별한 방식에 의해서만 죽임을 당한다 - 뱀파이어는 가슴을 관통당해야 죽고, 좀비는 뇌가 박살나야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들은 양극적이 된 듯하다. 뱀파이어는 소녀들의 지지표를 얻고, 좀비는 소년들의 환호를 받는다. 뱀파이어는 쿨하고, 무심하고, 아름다우며 밤에 주로 활동한다. 기본적으로 감정의 기복이 큰 10대 소년의 은유이다. 그에 비해 좀비는 멍청하고 잔혹하고 흉칙하며 무자비하게 폭력적이다. 이 또한 전형적인 10대 소년의 한 단면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좀비와 뱀파이어가 성장기 청소년들의 두 가지 고민 - 감정적 폭주와 신체의 변화 - 에 대한 은유로 그처럼 널리 유포된다는 분석이다.


이 좀비와 뱀파이어의 인기는 10월말과 11월에 또 한차례 '붐'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10월31일이 핼로윈(Halloween)이고, 11월에 뱀파이어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트와일라잇 연작 제2편 '뉴 문'이 개봉되기 때문이다. 온갖 흉측하고 기괴한 형상의 의상과 마스크가 팔려나갈 것이고, 거리는 또다시 이들 가짜 좀비와 뱀파이어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잠깐, 그렇다면 '진짜' 좀비와 뱀파이어가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글쎄.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흐릿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10월16일치 
LA타임스의 기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보도에 따르면 75세 된 노인이 발코니에 앉은 채로 죽었는데, 행인들은 그렇게 죽어 썩어가는 시체를 때이른 핼로윈 장식으로 착각하고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좀비와 뱀파이어에 대한 매혹 - 그것은 어쩌면 때때로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을 도외시하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지극한 상업주의의 다른 두 얼굴은 아닐까? 백화점을 가득 메운 인파를 잠시 관찰해 보라. 그리고 세월의 풍화를 거부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TV나 거리의 온갖 광고판 - 화장품, 영양제, 성형수술 -을 잠시 둘러보라.  어쩌면 우리 자신이 이미 일정부분 좀비이거나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 위 포스터는 구글에서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