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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읽던 책 덮고 "똥꽃"부터 보세요



  최근 '위대한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물건너 오는 책 모두가 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겠으나, 작년 친구 안찬수가 보낸 책 보따리에 섞여 있던 이 책을 요즘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무리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한들, 우리네 마음 한 구석에서 어른들은 '노인네'로 격하되기 일쑤입니다. 사회는 물론 집안의 모든 것은 젊은 사람들 위주로 움직입니다. 대학 준비생을 둔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자녀를 중심으로 생활의 모든 질서가 짜일 것입니다.

  나아가 어른이 요즘 드물지 않게 발병하는 알츠하이머(치매)에라도 걸리면 그때부터 어른은 인격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환자'로 변합니다. 사람으로서 산다기보다는 그저 생명만 이어가는 셈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보고 놀란 것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막내 아들이 '환자'가 아닌 '어머니'로서 대접해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옷에 싸서 벽에 바르는 똥을 지은이는 '똥꽃'이라고 했습니다. 지은이는 치매를 병이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온 역사의 집적이자 삶의 한 과정으로 여깁니다. 

  어머니가 오줌을 싸든, 똥을 싸든 아들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사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부끄러워 하지 않을까 오히려 마음을 많이 씁니다. 그 부끄러워 하는 마음을 받아 똥오줌을 가릴 수 있도록 기저귀를 빼는 훈련도 시켜드립니다.

   자식에게 희생한 과거 어머니의 인생이 눈물겹게 묘사되는 한편, 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씩이나 묘소도 지켰다는 것을 떠올리며 아들은 자기 어머니에게 내 인생 몇년만 바쳐드리자고 결심합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핵심 키워드는 '존엄성 살려드리기'입니다. 아무리 나이들고 병든 노인이라고 하나 어머니는 존엄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며, 부끄러움이 많은 '여성'이자 자식을 한없이 챙기는 '어머니'입니다.

 아들 전희식씨는 똥오줌을 싸고 부끄러워 하는 어머니의 그 수치심을 절대 자극하지 않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시도록 최대한 배려해 드립니다. 똥오줌을 쌌다고 요양원과 같은 공개된 자리에서 노인들의 속옷을 함부로 내리는 것은 일종의 성추행이라고 지적합니다. 생각해보니 지은이의 말이 정확합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고 부끄러움마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상인들의 오만이자 큰 오산인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살려드리기는, 일상생활에 녹아 있습니다. 외출을 할 때 반드시 큰절 드리기, 아침에 바깥에 일 나갈 때 어떤 일을 하러 간다고 말씀드리기, 망상에 잠기시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 만들어드리기, 이야기 잘 들어드리기, 놀이 개발해드리기, 동화가 아닌 노화(老話) 만들어드리기,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벤트 만들기 등 어머니를 위해 촌에 새로 지은 집안에서의 생활 자체가 어머니를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일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촌에 새로 마련해 꾸민 집. 어머니의 생활 패턴과 행동 반경을 고려해 고쳐지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그냥 효자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인간'을 찾아드립니다. 뒷방에 누워 있으면서 생명만 연장해가는 어머니의 인간을 찾아드립니다. 어머니의 생명을 건진 것이나 다름없겠습니다. 비단 어머니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 세상에 대한 애정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행되어야 진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방법은 나오게 마련입니다. 치매에 걸린 어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선명한 치유 방법론이 이 책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도 이만한 체험적인 치료 방법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노인될 날이 많이 남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3월에 나온 책이어서 제가 뒷북을 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위대한 책에 대해 뒷북을 치는 것 또한 큰 영광입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고 "똥꽃"부터 펴시기 바랍니다. 책은 반드시 사서 보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 싶습니다. 전희식씨는 공동 저자로 '김정임'을 올렸습니다. 이 책의 소재를 제공했으니 공동 저자가 맞습니다. 참 대단한 아들입니다. 캐나다에 사는 제가 이런 책을 발견하고, 또 감동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 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기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