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사건이 불거졌을 때, 나는 이 블로그에서 그를 비난하는 자들과 격하게 싸웠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가지고 비난하고 헐뜯고, 루머를 만들어 사실인양 퍼뜨리면서 한 인격을 무참하게 짓이기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그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개인을 밝은 원형 무대에 올려놓은 채 어둠 속에서 집단적으로 괴롭혔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자들보다 더 한심하게 보였던 '것'들이 있었으니, 이른바 '언론'이라는 곳에서 '기자' 타이틀을 가지고 일한다는 일부 '종자'들이다.
내가 사람에게 '것'이나 '종자'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까닭은,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인터넷 인격 살인을 못하게 하거나 고발해야 하는 자들이 그것을 오히려 부추기고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격 살인을 중계하고 사회적으로 유포하면서,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문제를 증폭시킨다. 천둥벌거숭이들의 합창은, 인터넷 언론을 통해 번져나가면서 마치 사실인 양 힘을 얻었다. 타블로의 경우,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피디수첩이 달려들었고 그 보도 후에도 이지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고은태(편의상 이하 존칭 생략) 사건도 그렇고, 다시금 시끄러운 배우 설경구 사안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들끓다가 단 사흘 만에 잊혀지는 뉴스 때문에, 고은태라는 한 사람은 변론의 기회마저 묵살당한 채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되고 말았다. 그저 잘못했다, 사과한다고 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를 일방적으로 비난만 하는 자들은, 그가 사과하고 침묵하는 것까지 '잠수탔다'는 표현으로 잔인하게 몰아붙인다.
다음 제물은 배우 설경구다. 나는 그가 힐링캠프라는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반대를 하는지 그 이유가 참 궁금했다.
가장 많이 읽혔다는 어느 블로그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기가 막힌다. 전처의 언니가 과거에 올린 글에서 설경구에 대한 비난은 다시금 시작된다. 아이를 둔 부부가 갈라서게 되었으니 그 갈등은 최악에 이르렀을 것이다. 친언니 입장에서는 당연히 동생 편을 들게 마련이다. 언니가 이혼한 동생의 전 남편을 비난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번에 설경구를 비난하는 자들의 다음과 같은 논리다. '폭력과 협박, 거짓으로 일관한 이혼 과정이 전처의 언니에 의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왜 당시 설경구가 전처 언니의 공개된 글에 대해 '무고'로 고소하지 않았느냐, 당시 고소하지 않은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한 것 아니냐, 자기도 인정한 그 사실을 힐링캠프에서 얘기하면서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설경구를 비난하는 핵심 사유이다.
설경구를 비난하는 자들은 설경구가 어찌 했든 간에 문제를 삼았을 것이다. 설경구가 무고로 전 처형을 고소했더라도 '왜 고소를 했으냐'며 설경구를 잡았을 것이다. 무대응도 대응이다. 또 갈등에는 양쪽 당사자들의 입장이 있게 마련이어서, 어떤 갈등에서든 두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균형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은 상식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억울하다'고 얘기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거나,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세상살이에서 크든 작든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한다. 그 당시, 내가 설경구였더라도 똑같이 대응했을 것이다. 그것은 전처와 새로 맞는 사람에 대한 예의에 관한 문제다.
설경구를 공격하는 자들은, 이혼의 시점과 송윤아를 만난 시점에 대해 왈가왈부하면서 '불륜'을 이야기한다. 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부부 외에는 알 수가 없다. 부부 사이에 언제부터 틈이 생겼는지 두 사람 아니면 알 수 없고, 남녀 사이에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당사자들 아니면 모른다. 그런데 설경구를 비난하는 자들은 그저 '불륜'이라고 낙인 찍어버린다.
나는 설경구를 비난하는 자들에게서, 과거 타블로를 죽어라 공격하던 이들의 모습을 본다. 타블로가 아무리 증거를 내놓아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저 '타블로는 가짜 졸업생'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인정하라며 두들겨 패는 데만 골몰한다. 설경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처 언니의 주장을 그들은 100% 사실인 양 믿는다. 그 근거로, 설경구가 당시 반박하거나 고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든다.
타블로나 설경구에게 비난을 퍼붓는 모습은 과거 미국에서 복면을 쓴 KKK단이 흑인을 잡아다가 때리고 희롱하며 결국 죽이는 영화 속 장면을 연상케 한다. 집단과 가면의 힘에 편승하여, 한 개인(의 인격)을 살해하는 잔인하고 비겁한 자들이다.
바로 이들의 깡패 양아치 같은 행태에 대해, 왜 언론들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지, 그러고도 언론이고 기자라고 할 수 있는지, 나는 그것 또한 이해할 수가 없다. 제2, 제3의 타블로를 만들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심심해 못 사는 사람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데, 그것을 내려치기는커녕 동조하고 부추기는 것들이 언론이고 기자들인가.
나는 힐링캠프가 정상적으로 방송되기를 바란다. 홍석천까지 출연시켜 성 소수자의 입장을 들어주었던 이 프로그램이, 가면을 쓴 천둥벌거숭이들의 집단적 이지메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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