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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작가 김수현, 대한민국을 엄히 꾸짖다


  이곳에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다는 사실은 여러 번 썼기 때문에 이제 다 아실 터이고…. 드라마 가운데서도 작가 김수현의 것은, 내게 좀 각별합니다.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김수현 드라마는 거의 빼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본 그의 초기 작품은 <새엄마> <강남일기> <수선화> 등입니다. 빼먹은 것은 2년 전인가, 김상중과 김희애가 바람 피는 내용이었습니다. 미화하는 것도 아니고 합리화하는 것도 아닌데 보기가 좀 '거시기'했습니다.

  요즘 제주도에 사는 대가족을 그린 <인생은 아름다워>에도 보기에 따라 좀 민망한 관계가 나옵니다. 민망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편견일 그런 관계 말입니다. 바로 동성애에 관한 것입니다.

  대가족의 그 잘나고 매너 좋은 장남이 바로 동성애자입니다. 그가 만나는 애인 또한 참 잘 난 인물입니다.

  


  나는 작가 김수현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리는 것 자체가 만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큰 집단과는 다른 특이한 소수의 성문화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이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와 다른 신체의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걸 보면 별로 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수현은 극중에서 가장 탐나는 '신랑감'을 게이로 그립니다. 나는 왜 저 인물을 등장시켰을까 참 궁금했습니다.

  지난주, 집에서 커밍아웃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의 면면을 보고 김수현의 의도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연애 관계를 위태위태하게 풀어나가다가, 때가 되어 그 사실을 감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인 어머니에게 먼저 털어놓게 합니다(또 다른 어머니 김영란은 이성적일 수가 없습니다. 친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엄동설한에 아이를 벌겨벗겨 바깥에 세워놓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 표현이 절묘합니다. 동성애자들에게 한국은 바로 엄동설한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가족을 모아 그 사실을 공표하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천명합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눈물을 쏟습니다. 아들은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습니다.

 

   그 다음부터 김수현은 자기 생각을 등장 인물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어머니는 "큰 삼촌 생각이 가장 중요해요"라고 말합니다. 평소 극중에서 매사 분명하고 깔끔하고 똑똑 부러지는 캐릭터로 그려진 큰 삼촌과 맏딸은 "큰일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것도 소수자의 인권 문제까지 이야기 하며 아주 적극적으로 나갑니다. 평소 그들은 냉정하리만큼 이성적으로 그려집니다. 

  소수자에게도 누구보다 냉정하게 보일 법했던, 당사자와 어머니가 가장 두려워 했던 큰 삼촌이 오히려 따뜻합니다. 김수현은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이 문제를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이 하는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너한테 피해주는 거 있어?"라는 것입니다. 큰 삼촌은 나이 마흔 넘은 동생에게 주먹까지 날리며 강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김수현이 문제를 삼는 것은 바로 요놈들입니다. 김수현이 보기에, 요놈들은 바보입니다.



  두 인물 모두 이 드라마에서 가장 '덜 떨어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가족 가운데 딱 두 사람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작은 삼촌의 경우, 제 앞가림도 못하는 못난이이고, 사위는 뒤에서 마누라 욕을 하면서도 여직원의 카운셀러를 자처하며 주접을 떠는 인사입니다. 


  예쁜 동생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신경 안써요." 20대 젊은 사람들은 남의 연애성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되는 대사는 "피해준 것 있어?"라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동성애자들로부터 피해 받은 것이 없는데도 손가락질을 하는 곳이 한국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유없이 손가락질하는 인간들은 이렇게 한결같이 찌질이, 못난이라고 김수현은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은 문제를 삼지 않고, 그 반대편의 못난 놈들이 문제를 삼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문제를 삼으면 찌질이라는 얘기입니다. 나아가 김수현의 공식에서는,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주지 않는 똘똘이 또한 바보입니다. 김수현은 그 공식을 한국 사회에 들이밀었습니다.절묘합니다.

  드라마 한 편으로 인하여 동성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달라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하나의 이정표는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내 눈에는 작가 김수현이 대한민국을 절묘한 방법으로 엄히 꾸짖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삼촌 같은 찌질이들이나 왜 혼나는 줄도 모르고, 바깥에서 방황할 것입니다. 

   김수현은 자기가 가진 파워, 포스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힘을 이용해 소수자들에 칠해진 편견을 벗기려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한 편당 5천만원이 아니라, 5억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프로젝트입니다.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길입니다. 김수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빛납니다. '동성애자' 자리에 '장애인'을 넣어도 상황은 똑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