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든 자동차를 타고 갈 때는 토론토에서 음식 재료를 바리바리 싣고 떠납니다. 현지에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이어서인지 미국 국경 세관은 한산했습니다. '어디를 가느냐?' '왜 가느냐?' '뒤에 뭐 특별한 거 있나?' '음식은?' 하고 묻는 게 상례인데, 성탄절이라고 신참을 내보낸 모양입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날고기는 있냐, 채소는 있냐 하고….
으레 '음식이 좀 있다'고 하면 자동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고는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에 '한국 음식이 좀 있다'고 모호하게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차의 트렁크를 열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차를 타고 여러번 갔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트렁크를 열자마자 문을 탕 하고 닫더니, 다른 직원을 급히 불렀습니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눈 뒤 다른 곳으로 불러 다른 직원이 다시 물었습니다. "뒤에 무슨 음식이 있나?"
우리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쌀, 삼겹살, 상추, 라면..." 하면서 우리가 뭘 더 가져왔나를 생각했으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또 물었습니다.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가족 모두를 내리게 한 뒤 실내에 들어가게 하고는 두 사람이 차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10여분은 걸렸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음식을 가져왔으니 벌금 200불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동료에게 가서 여권을 가지고 뭔가를 조사했습니다.
200불? 속된 말로, 내가 돌았냐, 그걸 내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짜식이 이번에는 오더니 벌금이 300불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우리가 미처 기억해내지 못한 제주도 밀감 한 봉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껍질이 얇아 까기 쉽고 맛 또한 신선해서 토론토에서 한 박스 5불짜리를 두 박스나 사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거는 왜 얘기하지 않았니?"
"기억을 하지 못했다"고 하니, "내가 두 번이나 물었는데?" 라고 했습니다. 두번을 묻든 열번을 묻든 마찬가지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쌈장, 풋고추 등 얘기하지 않은 것도 많은데, 그건 놔두고 맛있어 보이는 밀감만 들고 나타났습니다. 벌금을 300불이나 내라고 하면서...
열이 확 올라서, 잘 못 알아듣는 척 했더니, 아이들에게 "너 영어 하지?"라고 물었습니다. 큰 아이도 "다시 한번 말해줄래?"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나 돈 없다. 300불 벌금 낼 거면 캐나다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그 짜식은 더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옵션이 하나 더 있다고...
"300불을 내고 이 귤 들고 갈래, 아니면 이 귤을 두고 그냥 갈래? 두고 가면 우리가 폐기처분하거든."
"귤을 두고 가겠다"고 했더니, "마침 오늘이 크리스마스이고 하니, 그냥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망할 놈들, 크리스마스 타령할 거면 귤까지 줄 것이지, 무슨 선심 쓰듯 하나 싶었습니다. 쌈장도 발견하지 못한 주제에...
300불을 내라고 하면 제주도 귤을 확 빼앗아서 캐나다로 돌아올 참이었습니다. 그래도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국경까지 1시간30분여 달려온 게 아까워서 "땡큐.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나왔습니다. 나오면서도 제주 귤이 못내 아까웠습니다.
그들은 빼앗은 제주 귤을 분명히 까(처)먹었을 것입니다. "무슨 귤 껍질이 이렇게 얇고 말랑말랑하냐?" 하면서...
그런데 내가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내가 깜짝 놀랐습니다. 삼겹살이 비닐봉지에서 비죽이 비어져나와 있었습니다. 트렁크를 연 세관 직원이 1초만에 탁 닫고 동료를 무를 만했습니다.
관련 사진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찍은 사진 몇장 올립니다.
시라큐스에서 1시간여 떨어진 곳에 있는 미국의 명문 코넬대학 건물입니다. 한국의 어느 대학 건물과 그 형태가 많이 닮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코넬대학이 있는 도시의 다운타운입니다. 대학도시답게 소박하고 아름답습니다. 성탄, 연말 휴가 기간이어서 붐비지 않았으나 평소에도 그리 붐빌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환락가로 변모한 서울의 대학가와 퍽 대조적입니다.
숙소를 제공해주신 선배님께서 숙소에 남긴 메모. 맥주와 와인, 위스키에 김치까지 그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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