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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황상민 교수는 왜 박근혜씨에게 "쇼"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 한국 뉴스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박근혜씨의 돌발 방문입니다.  마치 대통합과 화해를 과시하려는 듯, 그녀의 방문은 의표를 연일 찌릅니다.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민주당은 '멘붕'>이라는 기사 제목은 참 훌륭합니다.


  현 정권 및 과거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방문' '유감 표시'등을 통해 마무리하려는 제스처는, 정치적이지만,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화해와 사과를 위한 방문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막는다면 막는 쪽이 용렬한 소인배로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도 이런 점들까지 모두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이상돈씨 같은, 기회를 잘 보는 전문가 집단이 곁에 붙어 훈수를 잘 두는 듯 보입니다.


봉하마을인 듯. 오마이뉴스 사진 빌려왔습니다. 



전태일 동상 앞에서 박씨의 '참배'를 막아선 노동자. 이 상황에서도 꽃을 들고 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한 사람이 참배를 막으며 누워 있는데도 얼굴에 웃음을 짓는 모습은, 쇼맨쉽으로 보입니다. 동상 앞에 누워 왜 나를 막을까 조금이라도 생각 한다면, 과연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장난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세계일보 사진입니다. 사진 크레딧 문제가 있으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멀리 캐나다에서 뉴스를 통해 박씨의 돌발 방문을 자켜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먼저, 이미지 정치입니다. 대통합과 화해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상식선으로 보면 누구나 느낍니다.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진정성이 있다 여길 터이고, 맞는 측에서도 대놓고 그걸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찾아와서 예를 갖추겠다는 데, 무조건 막는다면 막는 측에서 나쁜 사람 되기 십상입니다. 박씨캠프에서 이를 계산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두 번째는, 화해 혹은 대통합을 의미하는 방문은 하면서, 왜 미리 입으로 진심어린 사과는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유신 세대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손바닥 맞아가며 달달 외고,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을 교가나 유행가보다 더 많이 듣고 부르며, 허구한 날 멸공 포스터를 그렸습니다. 혼식 안 해왔다고 매를 맞았고, 교문에 들어서면서 거수 경례와 동시에 "충성" 소리 크게 외치지 않았다고 아침부터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코피가 터진 적도 있습니다. 아침 등교시간부터 중1짜리 얼굴에 손찌검을 하던 그 모습이, 당시 잘 나가던 중학교 교사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10월 유신이 한국적 민주주의로서 한국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필요불가결한 제도라고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그렇게 배우고 그게 시험의 정답이었으므로), 그런 믿음을 근거로 10.26 사태가 났을 적에는 울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나라는 망했다 하면서... 


  나이가 들어, 세상에 대해 눈을 조금씩 뜰 때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머리에 꾹꾹 박아놓은 유신 이데올로기의 쇠막대기는 참 오래도 갔습니다. 차라리 교육을 시키지나 말지, 한 개인을 영웅시하고 장기집권으로 내세운 명분을 교육이랍시고 학교에서, 교실에서 무자비하게 때려가며 "추웅~서엉~"을 외치게 했던 바로 그것을 행한 정점에 바로 박씨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고부터, 나는 우리를 그렇게 가르쳤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생님을 좀 만나고 싶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그들이 그렇게들 믿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박정희씨의 친일 문제며, 쿠데타, 3선개헌과 유신 및 긴급조치를 통한 독재보다는, 유신 도덕 교육의 흔적이 훨씬 더 깊게 남아 있습니다. 사실도 아닌 것을 어린 아이들에게 진리라 믿게 했습니다. 그것이 진리이기는커녕 사실과도 거리가 먼 것임을 알았을 때, 학교와 교육과 사회에 대해 생겨나는 불신은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과거 우리의 믿음과 열광은, 요즘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박근혜씨가 대통합의 의미로 '방문'을 하려거든, 물리적으로 누구를 찾아 참배하고 악수하기 전에, 일단 문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들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렁설렁 과거의 불행했던 사실에 대해 유감이다, 어쩌고 하는 수사로써 퉁 치고 지나가면서, 바깥으로는 화해 이미지를 만들어낼 요량이라면, 그것은 불행을 겪은 이들을 두 번 죽이는 꼴입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김연아 선수의 교생실습을 두고 '쑈'라고 했습니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생의 행위를 쑈라고 비판한 황 교수의 눈에, 최근 박근혜씨의 방문 정치는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합니다. 그것도 매우... 


  김연아가 쑈를 했다면,  박근혜씨의 방문 정치는, 내 눈에 '쑈쑈쑈'로 보입니다. 우리 세대를 학교에 몰아넣고 어떤 교육을 시켰는가를, 박씨는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우리 세대가 귀싸대기를 철썩철썩 맞아가며, 원산폭격을 받아가며 달달 외었던 국민교육헌장과 그 많은 노래들을, 우리처럼 수십년이 지나 머리가 허옇게 된 중년이 이른 지금에도 한 소절도 빼지 않고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앞으로  대선 후보 토론회 할 때, 박씨에게 이를 누가 좀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세대 우리 모두가 외운 노래와 국민교육헌장을 그녀도 우리처럼 달달 읊을 수 있는가를...  


  나는 지금도 모두 기억합니다. 


  "이기고 돌아왔네, 대한의 아들, 이역만리 월남전선 밀림을 뚫고, 드높은 전공으로 평화를 심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안으로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정신으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좋아졌네, 좋아졌어, 몰라보게 좋아졌어, 이리 보아도 좋아졌어, 저리 보아도 좋아졌네..."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들, 매 맞아가며 외웠던 헌장과 노래 들은, 나이 쉰이 된 지금도 모두 생각납니다. 국가 원수라는 이가 일본 군가에다 가사를 붙이고 마치 자작곡인 것처럼 강제로 전파한 노래를, 전국 초중고 모든 교실에서 부르게 한 대단한 교육입니다. 


  이렇게 정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과거를 시퍼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어디 어디를 방문하며 화해 혹은 대통합 이미지를 퍼뜨리는 것은 쑈를 넘어 잔망스러운 짓거리로 보입니다. 진정으로 화해와 통합을 원한다면, 최소한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로 일했던 1975년 여름~1979년 가을의 그 정권이 한국의 정신문화에 어떤 흔적을 어떻게 씻을 수 없도록 남겼는지부터 명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박씨의 방문이 나에게까지 닿지 않는다면(직접 오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입니다. 황상민 식으로 말하자면 제대로 만든 "방문쑈"가 되겠습니다. 김연아에게 일갈했던 그는 왜 박씨에게 "쑈"라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에, 김연아의 쑈보다 훨씬 더한 빅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