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성우제) 피디수첩의 한 피디는 재판정을 나오면서 말했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존재하는 권력의 한 축인 '언론 권력'는 누가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나?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한국에 사는 내가 아는 사람 모두는 무관심한 한 두명만 빼고 모두가 촛불시위 지지자였다. 촛불시위가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만큼 모르고, 모르는 만큼 시위 자체에 대해서는 지지하든 반대하든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분명하게 걸리는 것은 피디수첩 방송 내용이다. 나는 이곳에서 촛불시위 초기에 방영되었던 피디수첩을 인터넷을 통해 보았다. 무릎이 꺾여 잘 일어서지도 못하는 소를 지게차로 굴려 도살장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사회자는 "저게 바로 광우병 소"라고 했다. 저런 소가 도살되어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흑인 어머니는 방송에 나와 계속 눈물을 흘렸다. 피디수첩은 나 같은 시청자로 하여금 그 여인의 딸이 '광우병으로 사망했다'고 생각하게끔 분위기를 끌어갔다.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두 장면을 보면서, 밥맛이 뚝 떨어졌다. 한국보다 훨씬 싸고 품질 또한 뛰어난 캐나다산 쇠고기, 나아가 쇠고기 자체에 대한 입맛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찌하여 미국에서는 저렇게 무릎 꺾이는 광우병 소(라고 피디수첩은 믿게 만들었다)를 도축하며, 어떻게 저런 소를 외국에 수출한다는 것인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2003년, 내가 캐나다에 온 이후 처음으로 알버타 주에서 광우병 소가 나타났을 때,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 금지 조처를 가장 먼저 내린 나라가 미국이었다. 남의 나라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는 저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남의 나라에 쇠고기를 수출할 때는 어떻게 저런 광우병 소를 버젓이 내놓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러나 피티수첩이 그렇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광경이었다.
이 사안이 재판정에까지 갈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적 판결이든 보복성 기소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을 떠나,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 팩트는 모두가 사실인가 하는 것이 나는 몹시 궁금하다. 번역에 참여했다는 이는 "의도적인 오역"이라고 주장한다고 하고, 무릎이 꺾이는 소는 광우병 소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사망한 흑인 처자는 광우병이 사인이 아니라고 또 확인되었다는데, 이 사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누가 올린 영상을 보니 한 쪽에서는 "정의가 승리했다"고 하고, 한 쪽에서는 "정의가 사라졌다"고 시끄럽다. 정의가 승리했든, 실종되었든 피디수첩에서 제기한 팩트는 명백한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사실이 아님으로 인해 하필 그 시기에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킨 파장은 어느 정도였는가? 멀리 캐나다에 사는 내가 구토를 일으킬 정도였으니, 한국에서는 어땠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시기에 한국을 방문했던 분의 말을 들어보니 "무릎 꺾이는 소의 영상이 MBC 뉴스 시간에 한 달 내내 나왔다"고 했다. 광우병 소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그 소의 영상이 왜 자꾸 뉴스 시간에 나왔으며, 그 영상이 불러일으킨 효과는 어떠했을까?
바다 건너에서 구경하기에, 이런 것을 하나 하나 따져보는 기자다운 기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피디수첩의 무죄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들은 위에서 제기한 팩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피디수첩은 저 단순한 팩트를 어떻게 여기는지도... 탄압을 당해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큼, 팩트를 잘못 다룬 것은 아닌가 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법정 바깥에서 소란을 피우는 보수단체 사람들을 경찰은 붙잡아가지 않는 것일까? 내 눈에는, 피디수첩에 대한 판결보다는 사법부를 우습게 여기며 법정 바깥에서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그냥 두는 문화가 훨씬 더 큰 문제로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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