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페이스북에서 처음 만난 안희곤 선생(사월의책 대표)의 페북을 들여다 보다가 맛깔나는 글 솜씨에 푹 빠졌더랬습니다. 커피 이야기가 나와서 '커피 도사'를 자처하는 처지에 그냥 지나가기는 어려워서, 또 못 참고 참견을 하였지요. 안 선생의 글은 바로 이것입니다.
"동네 레스토랑... 밥 다 묵고 후식으로 커피를 준다기에 이왕이면 에스프레소로 달라고 했더니, 저희는 커피전문점이 아니어서 만들 줄 모른단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떡하니 있구만...ㅠㅠ 커피 가져온 것을 보니 아메리카노다. 잉? 에스프레소 못한다면서 이건 어케 만든 거지?"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듭니다.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고, 아메리카노를 만든다면, 그것은 100% 에스프레소를 내려 만들었겠지요. 에스프레소를 못 한다면서 아메리카노를 만든다면 그것은 신공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오랜만에 느긋하게 중고 물품을 파는 밸류빌리지에 갔다가 에스프레소 기계를 하나 보았습니다. 커피메이커 성능은 거기가 거기고 옛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나는 커피메이커를 주로 이곳에서 삽니다. 알고 잘 고르면 나름 명품도 얻어걸립니다.
일단 상표를 보니 확 땡깁니다. 독일 회사 메리타. 지난번 뉴욕에 갔다가 후배가 하는 커피점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마신 터여서, 오랜만에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었습니다. 기계는 간단, 간편하고 가격도 최상급입니다. 7.50달러. 바로 이 놈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집에 오자마자 작동을 시켰는데, 오 마이 갓!, 세상에 에스프레소 단계를 거치지 않고 아메리카노가 바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스프레소처럼 커피를 눌러 담고, 물을 넣고 작동 단추를 눌렀더니, 사진에 보이듯 커피가 줄줄 내려오는데…. 양이 일반 에스프레소를 넘어섭니다. 왼쪽 버튼은 양이 적고 오른쪽 버튼은 많습니다. 그러나 양이 적다고 하여 에스프레소는 아닙니다. 적은 양의 커피도 에스프레소 맛은 아니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커피의 양뿐 아니라 크레마 상태만 보아도 에스프레소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메리카노가 맞습니다. 맛으로도 아메리카노입니다. 그러니까 "잉? 에스프레소 못한다면서 이건 어케 만든 거지?"라는 안 선생의 의문에 "요렇게 만들더라"라는 대답을 오늘 캐나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요.
아무리 커피 도사를 자처한다 한들 아마추어 도사일 뿐입니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오늘 또 확인합니다. 프로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설쳐대고 있으니….
마지막 사진은 커피를 내리고 난 다음의 모습입니다. 단단한 빵떡 모양은 아니지만, 뭐 그런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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