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보도한 내용은 LA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규태씨의 자필 편지. 황씨는 그 편지에서 문화일보에 게재된 신씨의 사진은 "합성"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황규태씨의 편지조차도, 후플러스는 제대로 요리해내지 못했다. 작년에는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황씨는 "합성 사진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찍었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이 신씨와 문화일보 사이의 법정 공방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후프러스는 편지를 확인한 후 황씨와 접촉했으나, 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접촉이었다. 그렇다면 "합성이 아닌 진본이었다"는 인터뷰를 한 당사자(문화일보와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조아무개씨)를 만나, 그가 그 말을 한 것은 확실한지 인터뷰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것을 빼먹었다.
신씨와 변양균씨가 어떤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무죄 항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는 것 하나는 평가할 만했다. 문서로 다 나와 있는 것을 정리해 보여주는 것은 일거리도 되지 않지만, 내가 알기에 어느 언론도 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죽일 *, 죽일 * 만들어놓고, 진짜 그런 것인지, 나중에 죄값을 어떻게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언론은 물론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정아 사건은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이 아니다. 배우 장모씨와 대학로의 큰 공연장 이사장으로서 ㄷ대 교수를 지냈던 김모씨도 똑같은 잘못을 범했는데, 신씨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수천, 수만배의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또한 단순한 학력 위조였다면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직과 교수직에서 쫓겨나고 사문서 위조와 공무 집행 방해에 대한 죄값만 치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감옥에서 치른 죄값은, 일부 신문이 주도한 여론재판을 통해 치른 죄값에 비하자면 말 그대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을 '신정아 사건'으로 만든 것은 변양균씨와의 관계, 그 관계가 낳은 신씨의 신분 수직 상승이다.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가 개입된 전형적인 권력 남용 스캔들이었다. 그 스캔들에 불을 지핀 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늘 대립각을 세워온 신문사들이었고, 그 신문사들의 타격 목표는 노 전대통령이었다. 신정아씨의 뒤를 봐준 것은 변양균씨 정도가 아니라 더 고위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청와대에서 변양균씨를 치며 서둘러 꼬리를 잘라내는 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당시에 나돌았다.
신정아 학력 위조사건을 신정아 사건으로 만든 핵심 코드는 바로 이것이다. 목표는 당시의 권력, 불쏘시개는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에서 이 두 가지를 놓고 기를 쓰고 기사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검찰은 죄목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비판을 받을 정도의 분위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결과는? 학력 위조 파문으로 끝났을 신정아 사건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권력 남용 문제는, 신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따라서 두 사람의 사생활 문제 또한 사건의 본질과 연관성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사건을 사건으로 만든 것이 빠졌는데, 이거 뭐가 좀 이상하지 않나?
전원책 변호사의 지적은 정확하다. 수개월 동안이나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신정아의 지인들로 하여금 "나는 신정아를 모른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게 할 정도로, 토론토에 있던 내가 신정아와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석희씨와 생방송으로 이틀씩이나 인터뷰를 할 정도로 대단했던 그 사건. 그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치른 죄값은 1년6개월 징역형과 집행유예였다. 전원책 변호사는 "해외토픽감"이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본질은? 앞서 말했거니와 자기네가 싫어하는 정권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 왜곡해가며 사건 자체를 호도하고 독자의 눈을 가린 일부 언론과, 그 일부 언론을 따라간 나머지 언론들이다. 그들은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했다.
토론토에서 보기에, 당시 신문들은 한마디로 미쳐 날뛰었다. 신문들은 부적절한 관계를 내세우며, 검찰이 그냥 흘린 듯한 '뜨거운 연서'를 마치 무슨 대단한 증거물인 양 대서특필했다. 병원에 입원한 신씨가 무엇을 어떻게 먹든 사건과 아무 관련도 없는 가십거리들을 무슨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는 양 쏟아냈다. 모든 신문방송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옐로우페이퍼 경쟁을 했다. 정론지라는 것들이 옐로우가 되지 못해 안달이었다. 진보 신문이라는 한겨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압권은, 무속인의 멘트를 받아 신씨의 얼굴에 '도화살이 끼었다'는 것이었다. 멀리 토론토에서 보기에, 저들은 언론이기는커녕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게도, 신정아 사건을 뜨거운 뉴스로 만든 것은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언론이 미쳐날뛰었던 바로 이 부분이 신정아 사건의 핵심이자 본질인데, '후플러스'는 지금 보면 동물원의 원숭이에게도 하지 말았어야 할 짓거리들을 기자들이 사람(신정아)에게 하는 화면을 방영하면서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MBC도 미쳐날뛰던 언론 가운데 하나였고, 후플러스는 바로 그 기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동국대와 예일대의 공방, 누드사진 문제 등은 신정아 사건에 따르는 부수적인 일들일 뿐이다. 어찌하여 아직도 핵심을 못 짚어내는지 답답하다 못해, 후안무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신정아씨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하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보니, 동물원의 원숭이에게 그랬어도 동물학대죄로 걸릴 만한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후플러스를 보다 보니, 신정아 사건에 관한 한 아직도 한국 언론은 미쳐날뛰던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양균씨가 말을 정확하게 했다. "아직 말을 할 때가 아니다."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하긴 신정아로 인하여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조차도 사람에 대한 일말의 연민마저 보이지 않는 판국이니….
사족:신정아 사건을 섹스 스캔들로 밀어올리며 권력형 비리 문제로 전환시킨 그 특종 기자가, 줄줄이 사탕으로 특종상을 받은 직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찾아보면 아주 흥미로운 일종의 커넥션이 발견된다.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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