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따르면, 한강 둔치에서 찍은 나무라고 합니다. 평원 위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일 뿐인데 광목을 뒤에 놓고 사진을 찍으니 완전히 다른 나무로 변신합니다. 아주 단순한 '개입' 하나만으로 바로 저 나무를 하늘과 산과 대지를 배경으로 하는 '우주의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올렸습니다. 고고한 선비의 추운 시절의 심경을 드러내는 것이 <세한도>라면, 이명호의 저 나무는 현대판 <세한도>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캔버스 위에서 자연의 주인이 되어 보는 이의 춥고 서늘한 심경을, 실핏줄과 같은 나무 가지들이 그 심경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원수는 집의 정원에 있어야 볼품이 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지어지기 전에는 그저 볼썽 사나운 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저렇게 아름다운 아름드리 나무로 변신합니다. 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풍선들은 정원수의 동글동글한 모양들을 모방한 듯 하면서, 나무가 비로소 아름다움을 과시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듯 보입니다.
이왕 보는 김에 계속 나가자면….
나무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액스트라는 캔버스의 덕을 입어 단박에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대지를 보니 가을입니다. 나무에도 잎이 몇 남지 않아 가을,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극의 주인공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밤에 찍은 나무입니다.
이명호의 작업을 보면서 예술의 위대한 힘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좋은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월간미술'에 실리는 원고를 미리 보일 수는 없습니다. 내년 1월께, 월간지가 나오고 한 달이 지난 다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명호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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