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저는 대학 친구를 딱 한 명 사귀었습니다. 한 명이라고 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금 억울해 할 수도 있겠으나, 제 마음 속으로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대학 1학년 2학기. 졸업 정원제가 실시되어 문과대학 불문과의 정원도 엄청 많았습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78명이었을 것입니다. '동기'는 많았으나 '친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접해본 초창기 대학 생활은 나에게 암흑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초창기의 그 시절을 견디게 해준 친구가 다름아닌 위의 사진 오른쪽 인물 김훤주입니다. 훤주는 나에게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시(詩)를 잘 썼기 때문입니다. 별 재능도 없이, 시를 읽을 줄도 모르면서, 나는 문학도다, 시를 써야겠다고 심한 '헛지랄'을 하는 나에게, 훤주는 '완성된 시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업도 같이 듣고, 책도 나눠 읽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술을 잘 하지 못해, 나는 로트레아몽이라는 이름의 컴컴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던 훤주에게는 아마도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훤주는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손을 양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건들거리다가 넘어진 다음날 팥을 간 얼굴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았는지, 늘 그렇게 건들거렸습니다.
거의 매일 붙어다니다가 2학년 2학기말 무렵부터 각자 방향을 조금씩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 학생'으로서 고민만 하던 훤주는 학생운동으로 방향을 잡아나갔고, '철없는 학생'이었던 저는 막연하게 대학원 진학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만남이 잦지 않았을 뿐, 방향이 다르다 하여 관계가 별반 달라진 것 없었습니다.
3학년 2학기. 훤주는 급기야 투사가 되어 '민정당사 점거 사건'에 가담하였습니다. 잡혀갔습니다. 저는 훤주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서 불문과 '학우'들 앞에 서서 훤주를 면회하고 온 결과를 보고해야 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면회를 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 이렇게 쓰다보면 글을 끝내기가 어렵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또 쓰겠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쓰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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