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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김연아와 신정아 뉴스는 닮은꼴이다

   며칠전 1년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신정아씨가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구치소 앞으로 기자들이 잔뜩 몰려갔습니다. 그 가운데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를 되짚어본 기자가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들 대신 생각을 해봅니다. 신정아씨가,
  학력 위조를 하여 교수 자리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자리까지 차지해서? 그 학력 위조 파문이 나라를 들썩이게 해서? 노무현 정부의 고위 관료인 변양균씨와 부적절한 관계여서? 미술관 공금을 유용해서? 

  생각을 아무리 이어나가려 해도 신씨와 직접 관련하여, 기자들이 출소하는 데까지 우루루 몰려나갈 이유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입니다.

 '신정아 본인 혹은 본인이 지은 죄와 상관없이 터무니 없이 부풀려진 사건이어서...'

  본인이 지은 죄와 상관없다니? 물론 상관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가 지은 죄의 질 혹은 무게에는 별 상관이 없이 말 그대로 '부풀려진 사건'의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경험했다시피 이른바 신정아씨 학력위조 사건은 2007년 여름 한국 사회를 몇개월 동안이나 들었다 놓았습니다. 7월부터 10월초까지 한국의 매스미디어는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이 사건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신정아씨와 변양균씨가 감옥에 간 이후 이 사건은 언론은 물론 대중의 관심에서 금세 사라졌습니다. 수개월 동안 나라를 뒤집어놓을 정도로 매가톤급이었던 뉴스가 불과 몇개월 사이에 그냥 없어진 것이지요.

2006년 8월 신정아씨가 뉴욕에 '피신'해 있을 무렵 찍어 보낸 사진. 뉴욕 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마치 사냥개처럼 신정아씨를 쫓아다녔다. 1년6개월만에 풀려날 사건의 당사자를 두고 그들은 왜 그랬을까? 1년6개월도 가혹해 보인다. 학력 위조는 사문서 위조로 불구속감이고, 공금횡령에 대해서도 억지로 털어 만든 먼지라는 혐의가 있어보인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신정아씨가 법정에서 어떻게 진술했다, 출소했다는 정도의 단신만 나왔을 뿐, 몇개월 동안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사건의 중심인데도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나라가 뒤집어질 정도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1년 6개월이 아니라 무기징역, 사형을 선고받은 죄인도 이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예가 한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건 자체의 핵심이랄 수 있는 예일대의 팩스 답신 문제는, 지금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합니다.

   동국대에서 신정아씨를 임용할 당시 예일대에 '졸업생 맞느냐? 확인해달라'는 팩스를 보냈습니다. 예일대는 대학원 부학장이 사인을 해서 '우리 졸업생 맞다'는 답신을 동국대에 보냈습니다. 이 팩스를 받고 동국대는 신씨를 교수에 임용했습니다.

  신씨 사건이 터진 후 예일대는 '저런 답신을 우리는 보낸 적이 없다'고 확실하게 발뺌했습니다. 무슨 특정 의도를 가지고 신정아 사건을 부풀린 것으로 보이는 한국 신문들은 '신정아가 예일대에 잠입해 팩스를 보낸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썼습니다.  신정아씨는 그 기사를 읽고 "내가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당하지도 않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몇달 후 예일대는 '우리가 보낸 게 맞다'고 실토했습니다. 동국대는 예일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천문학적인 보상액이 걸려 있는 소송이 진행중입니다. 예일대에서 딜을 제안했지만 동국대는 거절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 팩스 한 장 때문에 동국대가 전임 총장을 비롯하여 얼마나 모질게 당했는데요.

  세계 제일의 대학 예일대에서 졸업생이 아닌 사람을 두고 '우리 졸업생 이 맞다'고 사인해 보냈다면, 게다가 답신 자체를 부인했다가 번복한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어 보입니다. 신정아씨는 "예일대 내부자와 연계된 브로커에게 속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예일대의 오락가락하는 대목과 분명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인데도 이같은 사실 관계를 면밀하게 따지는 언론은 지금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그저, 신정아가 출옥했다고만 씁니다. 그들은 왜 쓰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께서도,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 사건이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큰 사건인지, 태풍이 와서 십수명이 사람이 상한 사건을 제치고 1면톱으로 오를 만한 사건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김연아와 신정아가 닮은꼴이라고 했습니다. 그 닮은꼴이란 두 주인공에 대해 들끓는 뉴스 제공자와 독자들의 태도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 또한 김연아 선수가 예쁘고 자랑스럽고, 그 여세를 몰아 올림픽에서까지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에게 쏠리는 이른바 '국민적 관심'은, 바로 신정아씨에게 쏠렸던 이상 열기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연아 선수의 피겨선수권대회 우승보다는 박태환 선수의 세계선수권, 올림픽 우승이 더 대단한다고 봅니다. 두 선수만 비교해보아도 '국민적 관심'의 급과 질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김선수의 등교 장면까지도 뜨거운 뉴스가 되었습니다. 총장이 신입생을 만나 학생증을 직접 주었습니다. 신입생의 의상 또한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그러고 보니, 신정아씨의 패션도 화제가 되었지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연아 선수의 안티카페처럼 그가 해낸 업적을 깎아내리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국민 모두가 그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 바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매스 미디어들과 그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태도를 냉정하게 들여다보자고 쓰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만의 하나,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그것도 일본 선수에게 밀려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점입니다. 

  김연아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는 비록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으나 캐나다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저는 한국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한국신문은 오서 코치를 캐나다 신문보다 더 크게 대접해줍니다. 어쨌거나 캐나다에서 사랑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와서 강연도 했다니까.....

  그러나 토론토에서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브라이언 오서를 아는가?'라고 물어보면 열 중 아홉은 '모른다'고 할 게 확실합니다. 지나간 영웅이기도 하거니와 문화 자체가 한국처럼 쉬 뜨거워졌다 식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정아씨가 본인이 지은 죄와는 별 관계없이 매스미디어에 의해 '부정적인 영웅'(나라를 뒤흔든 뉴스의 주인공이라는 면에서)으로 떴다면, 김연아 선수 또한 그 매스미디어에 의해 하늘로 높이 높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너무 높이 오르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지경입니다. 높이 올려놓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내려오게 할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입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직후 대한민국의 축구영웅 차범근씨가 국민적 왕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본선을 통과한 직후 감독으로서 영웅대접을 받은 직후였습니다. 당시 여론몰이를 한 언론은 차감독을 중국에까지 내쫓았고, 중국에서 연패하는 팀성적까지 뉴스로 내보내며 우리의 영웅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니 걱정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기우이기를 바랍니다. 

   김연아 선수는 지금처럼 뜨겁지 않게, 미지근하게, 스승인 브라이언 오서처럼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 요정'으로 롱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스승처럼 은근하게 오래 오래 사랑을 받으며 요정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