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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나도 유진박을 노예로 만든 죄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소개된 그는, 당시 문화부 기자였던 내 눈에는,  처음부터 '천재'는 고사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천재'는 팔아먹기 위한 광고 카피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비극은 그가 진짜 천재였고, 많은 천재들이 그러한 것처럼 세상을, 더군다나 한국을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의 나라를 따뜻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믿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텔레비전으로 연주를 보았던 것 말고,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간접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유진박을 인터뷰한 후배 기자가 그에게 한마디로 '뻑갔다'. 기사를 그렇게 쓰면 안되는데도 칭찬을 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줄리어드 출신의 천재 소리 듣는 연주자가 대중음악을 하고 있으니, 또한 바네사 메이보다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후배는 지면을 많이 요구했고 관철되었다.

  그 후배가 하루는 취재 나갔다가 씩씩대며 들어오더니 "아이, 씨#, 어째 유진박이는 안나오는 데가 없어?"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크고 작은 각종 행사에 불려다니며, 연주를 했던 모양이다. 아시다시피, 공연에는 기획이 필요하고 연주자는 연주자로서 대접 받고 관리를 받아야 연주회다운 연주회가 된다.

  그런데 유진박은 처음부터 너무 바깥으로 내돌려졌다. 참 안쓰러웠다. 대접은 받지 못해도 저렇게 함부로 내돌려져서는 안되는데...

  그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었다. 하나는, 기획자 잘못 만나 너무 휘둘리는구나. 둘째는, 유진박이 순진해서 한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두 가지 생각이 다 맞았다. 유진박의 매니지먼트 회사는, 그를 처음부터 연주자로 여긴 것이 아니었다. 바이올린 잘 하니, 그저 신기하게 보일 수 있으니, 길거리든 어디든 원숭이 재주 부리게 하듯 돈만 되면 바깥으로 내돌렸다. 기획만 잘 하면 바네사 메이를 능가하는 한국의 명품으로 자랑할 만한 재목인데, 고려자기를 장터 술상 뚝배기로 내놓은 꼴이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니, 곧이곧대로 다 믿는 순진한 구석이 많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이들을 보면 참 순진하게 큰다. 남들이 하는 얘기는 다 믿는다. 

  유진박의 얼굴을 보면 순진한 아이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어릴적부터 줄리어드에서 음악만 했으니, 택도 없는 기획자에게 걸려들어 그의 말을 다 믿으며 속된 말로 "돌림빵" 당하고, 기어이 마을회관 반주자에까지 이르렀다. 한국의 연예판이 어떤 곳인데, 그쪽으로 풀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고 난감하다. 기획자 잘 만나면 바네사 메이 혹은 '비'가 되고, 기획자 잘못 만나면 유진박된다.

  유진박에 대한 두번째 간접 경험은, 어느 첼리스트를 만나 들은 이야기이다. 그녀는 유진박과 같은 시기에 줄리어드에서 공부했다고 했다. 줄리어드는 당연히 세계 최고들이 모이는 곳이다. 유진박은 최고인 동년배들 가운데서도 실력이 단연 뛰어났다. 그런데 재즈바에 드나들며 그쪽에 필이 꽂히더니, 아예 넘어가 버렸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계로서는 큰 손실이지만, 재즈나 대중음악계에서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그녀는 예상했다.

  그녀가 미처 몰랐던 것이 한국 연예판의 생리이다. 유진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모질고 독한 부류들에게 걸려들었다. 그쪽 판에 들어간 이들 중에 가장 순진한 사람이 유진박이니, 저렇게 끝장을 보고 나서야 뉴스를 타게 된다. 

  10년 전 유진박이 길바닥 아무 곳에나 나와 연주하던 '꼴'을 보면서 후배가 씩씩거리며 화를 내던 것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그때, 이미 지금의 꼴은 시작되었다. 좋은 연주자를 처음부터 저렇게 내돌려서는 안되었다. 왜 그때, 이런 내용의 기사를 후배에게 쓰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것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 막급이다. 분명히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그런 면에서 나도 천재를 노예로 만든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