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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외국에서 보니, 이은미가 권리세 뽑은 이유 따로 있다


  
  지난주 토요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우리말 잘하기 대회>에, 영광스럽게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모두 130명의 학생(외국인 4명 포함)이 참가했는데, 원고를 부모가 써줬건 부모가 죽으라 하고 연습을 시켰든 간에 저마다 한국말로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더랬습니다.

  이와 비슷한 감동을 저는 요즘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받습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가수 선발 프로그램에 참가한 재일교포 권리세라는 아이를 통해서입니다. 그 아이는 탈락의 위기에서 여러 차례 구제되어 마지막 라운드에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고, 또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들 또한 워낙 많은 까닭에 권리세의 최종 라운드 발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가 많다고 듣습니다. 

  특히 정 아무개라는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은미가 잘못했다, 공감을 잃었다라고 단정적으로 비판합니다. 이은미는 지금껏 그 누구보다 가창력을 최고의 심사기준으로 제시했다면서….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은미가 심사기준으로 제시했다는 '가창력'만을 가지고 이은미 권리세를 평가할 뿐, 이은미가 말하는 권리세의 '근성'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은미가 가진 멘토로서의 발탁 기준을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이은미의 생각과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외국에 살아보면 압니다. 언어와 관련된 그 근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말 잘하기 대회에 출전한 아이들 또한 죽으라 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어눌하고 부족합니다. 그 어눌함조차 만들어내기 위해 아이들이 얼마나 애썼는가 하는 점을,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을 통해 알기 때문에 어눌해도 기특해 보입니다. 

  권리세의 이력을 살펴보니 재일교포 4세라고 합니다. 1.5세도, 2세도 아닌 4세라면 참 어렵게 어렵게 한국말을 익히고,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썼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배운 일본어를 바탕으로 그 위에서 한국말을 배웠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일본이라지만 외국에서 2세도 아닌 4세가 한국어를 이만큼이라도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아이는 "마법의"를 일본식으로 "마보베"라고 발음합니다. 

  





  이은미는 일본식 발음을 고쳐주려고 애를 쓰고, 권리세는 입에 펜까지 물어가며 발음 교정을 했습니다. 그 첫번째 근성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발음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나 많이 개선된 모습니다. 이제는 4명 후보자 가운데 2명을 뽑는 파이널 화면입니다.



  노래를 들으면 교포 4세인 줄 알지 못할 정도로 거의 정확하게 발음합니다. 이은미가 보기에예쁘게 노래하는 모습, 곧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 가르침을 주면 '근성'을 가지고 무섭게 달려들어 흡수해버립니다. 이은미는 바로 이 모습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참가자 모두 아직은 아마추어이고, 다른 참가자가 지금으로서는 노래를 조금 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은미는 '아마추어'로서는 잘 하는 노래이지만 아마추어의 한계가 뚜렷한 오늘의 모습보다는, '프로페셔널'로서 확실하게 잘 할 수 있는 내일의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둔 듯합니다. 지금까지 발휘해온 '근성'을 유지한다면,  지금은 조금 떨어져도 가수로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참가자가 권리세라고 이은미는 판단한 듯합니다. 욕먹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결정할 수 없는 대단히 어려운 판단이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근거가 있습니다. 또 외국에 사는 사람답게 옛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는데, 1994년 첫번째 히트곡 <어떤 그리움>(2집)을 발표했을 때 홍대앞에서 이은미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맨발의 디바'라는 열정적인 시절을 지나왔으나, 당시만 해도 누구보다 예쁘고 얌전하게 노래 부르는 조용한 가수였습니다.




  그 시절 노래를 들어보면 지금과는 너무도 틀립니다. 앨범에 실린 사진을 보아도, 지금의 이은미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노래 하는 스타일로는 지금의 이은미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저 예쁘게 노래할 뿐입니다. 이은미는 기질상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음반의 기획자가 "은미는 이렇게 예쁘게 노래하는 것이 느낌과 음색에 어울린다"고 했으나 이은미는 그 기획자와 결별하고 지금의 모습을 향해 왔습니다. 
  
  그때 이은미는 "매일 10시간씩 혼자 연습한다"고 했습니다. 연습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으라 하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은미가 권리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근성'을 나는 그때 이은미에게서 보았습니다. 그 근성 때문에 <어떤 그리움>을 부르는 이은미에게서, 지금의 이은미가 나왔습니다. 

  이런 이력을 지닌 이은미는 죽자하고 따라오는 권리세를 버리지 못하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은미가 얼굴 예쁘장하고 남다른 스토리가 있는 권리세를 발탁하려는 스타시스템에 희생되었다는 그럴듯한 설도 등장합니다. 설이 사실일 수도 있겠으나, 과거에 본 이은미, 현재의 이은미로 변해오면서 보인 근성을 되돌아본다면 그 설은 이은미의 히스토리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외국에 사는 1.5세 2세 한국 아이들이 발음은 고사하고 한국말 하는 것 자체를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겠으나, 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의 핸디캡이자 극복 대상을 권리세가 라운드를 거듭하며 하나씩 통과해갈 때마다 남다르게 감동하게 됩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해준 이은미가 고맙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싶습니다.

  권리세가 더 노력하고 애써서 입상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어가 어눌한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