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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는 한인 모녀를 꼭 추방했어야 했나?


  오늘(4월25일 토요일) 저녁, E양과 어머니는 피어슨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어머니 S씨는 꼭 9년 만에 귀국하게 됩니다.

  
  요즘의 9년이면 한국에서는 강산이 서너번은 족히 변했을 세월입니다. 저의 경우 4년 만에 서울에 들어갔을 때, 십수년을 운전했던 그 익숙한 거리에서 운전대를 잡기가 두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과거 우리 회사가 있던 광화문 근처에는 수십층짜리 고층빌딩이 여러 개 들어서서 도시의 풍경 자체가 4년 전과는 완전하게 달라보였습니다.


E양 모녀의 강제 추방을 처음 다룬 <토론토스타>의 4월23일자 기사.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이웃들의 애절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E양 모녀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요즘은 한국이 캐나다보다 더 잘사는 만큼, 경제적으로는 더 윤택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사는 환경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갖가지 내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심성 또한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선진 한국의 시민'들로 변한 모습도 있을 터이고, 더 강팍해진 생활 여건에 시달려 인심 자체가 더 각박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야 어찌 되었건 E양 모녀에게는, 한국은 이제 외국처럼 낯설 것입니다. 9년 만에 돌아가는 어머니에게는 모국어가 있고, 가족과 친지, 친구가 있어 마음의 위안이라도 잠시 받을 것입니다.

   반면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성장해온 E양에게 한국의 새로운 환경에 '강제로' 적응하라는 것은, 본인이 원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어느 독자 분께서는 제 블로그에 오른 E양의 사진과 이름(일간지 <토론토스타>를 찍은 내용)을 지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의 학교에서 당할지 모를 '왕따'를 벌써부터 경계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모국이라고 하나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이민지나 다름없고, 딸에게는 외국어(한국어)와 무시무시한 왕따가 있을지도 모를 생경한 땅입니다. 새로운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엄마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8살난 어린 캐네이디언(자기 국민)을 어려운 환경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E양이 동양인이 아닌 앵글로색슨이었거나 유대인이었어도 역시 같은 결과를 맞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정은 180도 달랐을 것입니다. 유대인이었다면 저 커뮤니티 내에서 변호사를 붙여서 어떻게 해서든 구했을 것입니다. 어제 만난 어떤 분은 "유대인 변호사를 구해서 난민 신청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E양은 캐나다 시민권자입니다. E양은 어머니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추방되는 상황에서, 캐나다에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함께 추방합니다.

   캐나다 정부가 그 반대의 경우는 왜 고려하지 않을까요?  캐나다 시민권자인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 어머니에게 이곳에 체류 허가를 내주는 일 말입니다. 

  물론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캐나다에서 살고 싶어 10년 넘게 기다리는 인도· 중국· 서남아시아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무조건 뭉개며 살아가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판례 혹은 비빌 언덕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캐나다에 살아보니, 이곳에서는 판결권을 가진 당사자가 재량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동안 E양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딸을 홀로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성실한 경제활동으로 캐나다에 이익을 안겨줬다, 학교에서 큰 인기를 끌 정도로 딸을 잘 키워왔으므로 앞으로 캐나다에 크게 기여할 인재로 키워낼 가능성이 많다, 등등 그 명분과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양의 학교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와 이웃 들까지 나서서(한국사람들이 아닙니다) 연방정부에 이메일하고 전화하고, 심지어 E양 어머니가 갇혀 있는 불법체류자 추방대기소(구치소) 앞에서까지 시위를 하는 형편이라면 명분과 이유는 확실한 것이고, 그것을 들어 재론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죠. E양의 어머니가 비록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지만, 싱글맘에게 주어지는 캐나다의 혜택도 하나 받지 못하면서도 착하게, 성실하게 10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을 접하면서 몇 가지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첫번째는, 캐나다가 캐나다 시민권자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몇해 전 레바논에 융단 폭격이 가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캐나다는 레바논에 함정을 급파했습니다. 참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레바논에 살고 있는 수만명의 캐네이디언을 구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캐네이디언들은 누구인가? 레바논과 캐나다의 이중국적을 보유한 레바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레바논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여차하면 캐나다 여권을 가지고 제3국 안전지대로 튀겠다는 '얌체족'들입니다. 캐나다 여권 소지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는 '평화주의자'로 꼽힌 바 있어, 어느 나라로든 튈 수 있습니다.

  저런 얌체족들을 위해 캐나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함대를 급파했고, 수만의 얌체족들을 캐나다로 실어날랐습니다. 전쟁이 잠잠해지자 이중국적자인 얌체족들은 얌체들답게 다시 레바논으로 건너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놈들을 위해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곧 잠잠해졌습니다.  

  두번째. 몬트리올에 사는 이란인 여기자가 이중국적자였습니다. 그녀는 이란 여권을 이용해 이란에 들어가 정치범 감옥을 취재하다가 체포되었고, 고문을 받는 와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즉각 나섰습니다. "왜 우리 캐나다 시민을 고문하고 죽였나?" 이란 정부 당국자는 맞받아쳤습니다. "그녀가 캐나다 여권을 가지고 입국했더라면 바로 추방했을 것이다. 이란 여권을 가지고 들어와 활동하다 불법을 저지른 만큼 그녀는 어디까지나 이란인이다. 이란 사람인 만큼 이란 국내법에 따라 처리했다. 그러니 네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는 유해 송환과 함께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했고, 그 모든 것을 받아냈습니다.

  세번째. 어제 토론토에서 이른바 '기러기 엄마'를 만나 차를 마셨습니다.저의 대학 후배인 그녀는 고교 2년생인 딸을 뒷바라지 하러 이곳에 와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이곳에 체류할 합법적인 지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미성년자 딸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체류의 합법성을 뒷받침하는 이유입니다.

   수많은 조기 유학생들의 어머니들에게는 체류 허가를 내주면서, E양의 어머니에게는 같은 지위를  왜 부여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당연히 생깁니다. 

  더군다나 E양은, 캐나다가 군함까지 파견하여 전쟁통에서 구해올 정도로 끔찍하게 여기는 캐나다 시민권자의 한 사람입니다. 이란 국적을 가지고 들어가 사망했는데도, 캐나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거세게 항의해 유족들을 위로해주는 나라가 캐나다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E양은 어머니와 함께 추방되었을까요? 
  
  <토론토스타> 기자가 물었습니다. "앞으로 캐나다에 돌아올 거니?"
E양은 말했습니다. "엄마와 함께라면요."

   외국에 나와 살아보니, 우리 모국 한국은 참 아름답고 좋은 나라입니다. 모든 면에서 엑티브하고, 돈도 많고 정도 많은 곳입니다. E양이 왕따와 같은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잘 하는 영어를 특기로 살리고, 또한 캐나다 학교에서처럼 친구들의 인기를 한몸에 모으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요즘은 캐나다보다 훨씬 잘 사는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은, 모녀가 인천공항 트랙에 내릴 때부터 어머니처럼 넉넉하게 품에 안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