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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연아야, 살고 싶으면 토론토에 빨리 와라!"

MBC 뉴스데스크는 김연아를 왜 불러내 인터뷰를 했는지, 김연아를 사랑한다는 그 방식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조용히 훈련에 몰두하고 싶은 김연아를 가장 사랑하는 이들은 김연아 안티카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관심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잔치가 끝난 게 아니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활짝 핀 영웅'과 '일그러진 영웅'이 있습니다. 두 영웅을 두고 언론, 국민 할 것 없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저처럼 외국살이 하면서 한국을 멀리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그러진 영웅'이란 물론 노무현 전대통령을 일컫습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문화일보>에서 뉴욕에 가 있는 딸 내외를 얽어넣는 기사를 썼더군요. 검찰이 흘린 내용을 적었으나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조사를 하고 죄가 나오면 벌을 내리면 그만입니다. 언론이고 국민이고 확인 안된 사실을 가지고 신나게 칼춤을 추는 형국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네거티브 영웅'이라면, 김연아는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영웅입니다. 연습 장면도 기사가 되고, 등교를 해도 기사가 되고, 농구감독 허재가 "연아랑 밥먹으려면 이겨야 한다"는 멘트까지 날렸답니다.  


  이즈음, 저는 한국 사람들이 김연아를 사랑하는 '방식'을 보면서 김연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오락 프로그램 <무한도전>이야 김연아가 자신을 알려준 '고마움' 때문에 출연했다고 하지만, MBC 뉴스데스크는 왜 김연아를 '데스크'에 앉힌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내용 가운데 새로울 것도 전혀 없는 데 말입니다. 

  새로울 것이 하나는 있더군요. 

  "단 하루만으로도 아무도 날 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다녀보고 싶은데 불가능하다. 꿈일 뿐이다."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습니다. 인터뷰를 해보았자 새로울 것도 없는데, MBC만이라도 단 하루 가만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김연아 인터뷰가 나간 이후, 뉴스데스카가 김연아에 올인을 했네, 어쨌네 또 난리 호들갑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진검승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김연아를 영웅으로 붕붕 띄우면서, 그 뒤로는 갖가지 상업적 방식으로 김연아를 이용하고 이득을 채우면서, 그 영웅이 자칫 추락이라도 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 저는 저 분위기를 보면 한국 사회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아가 로봇이 아닌 인간인 이상 실패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때 가서 어떻게 나올지, 캘거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쳤으나 여전히 캐나다에서 사랑 받는 브라이언 오서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데 의구심이 생깁니다(브라이언 오서는 학교를 다니며 강연을 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줍니다. 우리 둘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몇개월 전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사인을 받아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김연아 스승인 줄 몰랐습니다).

  'IMF의 국민 영웅' 박세리가 한때 무섭게 비난을 받았고, '불세출의 영웅' 차범근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전후해 '국민 영웅'에서 '공공의 적'으로 삽시간에 추락한 적이 있습니다.  

  하여, 저는 지금 한국 사람들이 김연아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역설적으로 하게 됩니다.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이 "단 하루만이라도 아무도 날 알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고민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게 해서든 김연아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자들뿐입니다. 
그들은 벌써부터 샴페인을 터뜨려가며 자기 이득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히려 김연아의 '안티 카페'가 김연아를 진짜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본인이 부담스러워 하는 관심과 사랑을 '쿨하게' 가라앉히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론토의 북쪽 지역 Yonge & Finch에 김연아는 산다고 합니다. 훈련장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이 사진은 한 블록 떨어진 우리 집 앞입니다.

 
  위의 풍경은 김연아가 사는 동네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목요일 오후 4시경에 찍은 사진인데,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그만큼 조용합니다. 김연아가 혼자 걸어다녀도 한국 사람 아니면 아무도 아는 척 하지 않습니다.

  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의 어느 한인 사이트에는 "김연아가 오면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양식"에 관한 글까지 올랐습니다.

  그 글의 대강 내용은 이랬습니다. "동포 언론은, 김연아가 공항에 도착해도 인터뷰 하지 말라. 더 들을 내용 없다. 우리 동포들은 김연아를 길거리나 식당에서 만나도 가벼운 눈인사 정도만 나누자. 멀리서 '김연아 화이팅!'만 가볍게 외쳐주자. 본인이 부담스러워 하는데도 사인을 해달라고 종이를 내밀지는 말자".

   김연아를 초청할 만한 토론토의 특정 단체에서도 "만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접촉을 자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드립니다.

  김연아는 한국에서는 영웅일지 몰라도 캐나다에서는 그 존재가 아직 미미합니다. 세계선수권대회 직전에는 아사다 마오가 사진과 더불어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200점을 돌파하며 우승한 뒤에도 최대 신문 <토론토스타>에는 사진조차 오르지 않았습니다. 

  겨우 "거의 캐네이디언이라 할 수 있는 김연아가 우승했다. 김연아는 토론토에서 브라이언 오서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중이다" 정도만 언급되었습니다. 대신 아사다 마오에 대해서는 실패한 이유 등이 자세히 소개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김연아가 아직도 세계 1위로서의 입지를 완벽하게 굳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선호 차이도 작용하겠으나, 김연아가 명실상부한 챔피언에 오르기 위해서는 밴쿠버 올림픽에서 정상에 올라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여왕 지위에서 바로 쫓아낼지도 모릅니다.  

  국가대표팀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본선 두 경기 성적이 좋지 않자, 한국의 축구 영웅 차범근을 예선이 끝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쫓아낸 적이 있습니다. 쫓아낸 당사자가 누구냐? 한국의 광적인 대중과 축구팬들입니다.  '영웅'에서 '역적'으로 내몰리는 데, 열흘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팬들은, 김연아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와 캐나다 팬들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브라이언 오서는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지금도 팬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진검승부는 내년 2월에 펼쳐집니다. 한국에 중요한 행사가 잡혀 머무른다고 하지만, 김연아가 빨리 토론토에 돌아와 자유롭게 활보하며 연습에만 몰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