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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자영업자 피 빨아먹는 대자본 프렌차이즈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 둔 이들이 많이 종사하는 일이 소규모 자영업입니다. 쉬운 말로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지요. 먹는 장사, 입는 장사, 구멍가게 등 업종의 종류는 한국이나 캐나다나 엇비슷합니다.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이민자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기술을 가지고 취직을 하려 해도 이제는 그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생각이 진취적이고 뛰어난 머리를 가진 몇몇 이들은, 이곳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하여 화이트컬러 직종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드문 일입니다.

  한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부동산이나 보험 브로커를 하는 것을 빼고나면 한국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뻔합니다. 가장 뻔하고 일반적인 것이, 한국의 직장인들이 퇴직하여 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소규모 자영업입니다.

   이민 사회에서도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다'는 탄식이 나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에야 한국에서 이민 오는 이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입니다. 이민을 오는 이들이 많을 때에는 '캐나다의 이민 환경이 이렇게 좋지 않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미묘하여 말로써 금방 설명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이민 사회에서 이민자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민이란 삶의 어떤 분야가 되었건 좀더 나은 삶을 위해 택하는 결단입니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 '먹고 사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흔들리면 다른 모든 것은 의미를 잃고 맙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것은 대자본의 횡포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민자는 소규모 비니지스를 하면서 밥벌이를 합니다.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 역사는 50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민 온 지 30년이 넘은 이민 선배님들은 대부분 스몰 비지니스에 종사했고, 그것으로 가정을 꾸리고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요즘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제 스몰 비지니스에 종사하는 어떤 이를 만났습니다. 편의상 ㅂ씨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종사하는 업종은, 한국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이 전통적으로 해온 것입니다. 업종이 무엇인지도 밝힐 수 없습니다. 그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팀호튼스 커피점. 팀호튼스가 들어서면 주변 커피점과 샌드위치숍은 다 죽는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던 가게는 가격과 서비스 경쟁에서 속된 말로 쨉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예외에 대해 들은 바 없다.  위의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그같은 피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꼭 밝히고 싶은 사실은, 프랜차이저의 행포입니다. 이민자들이 소규모로 운영하던 스몰 비지니스의 모든 업종에 대자본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대자본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주로 이민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운영하도록 합니다.

  ㅂ씨도 4년여 전에 프랜차이즈 가게를 하나 인수했습니다. 권리금만 한국돈으로 2억원이 넘었습니다. 프랜차이즈 회사는 적게는 매출액의 8%에서부터 많게는 12%까지 프랜차이즈 Fee를 떼갑니다. 업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광고도 해주고, 가게 자리도 얻어주고, 물건도 대주고 하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너 요즘 들어서는, 그 횡포가 말도 못하게 심합니다. ㅂ씨의 고민은 건물 임차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벌어질 일입니다. 멀쩡한 가게인데도 리노베이션을 하지 않으면 임대를 더이상 해줄 수 없다고 협박합니다. 리노베이션이야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그 가격을 프랜차이저가 정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한국돈 2천만이면 충분한 일을, 1억원을 들여서 특정 업체에 맡기라고 명령합니다.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그 특정 업체는 프랜차이저가 정합니다. 그 의도야 분명하지 않습니까? 리베이트를 챙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임차를 5년 얻고, 그 다음 5년 계약은 옵션으로 합니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쫓겨나는 일이 요즘은 허다합니다. 쫓아낸 그 자리에 프랜차이저는 가게를 찾는 다른 이민자를 찾아 돈을 받고 채워넣습니다. 5년 후 똑같은 일이 발생하겠지요. 

  건물주나 몰은 프랜차이즈를 선호합니다. 건물주나 몰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프랜차이저가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가게를 확실하게 관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최근 5~6년 만에 개인 가게들은 거의 다 쫓겨나고 그 자리에 프랜차이즈로만 채워진 몰도 주변에 있습니다. 비싼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샀는데도 임차를 더이상 해주지 않아 투자액의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건물주에게 쫓겨난 소규모 자영업자들입니다. 5년 후에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신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판국에, 5년 만에 돈 1억원을 만들어 리노베이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횡포는 이뿐이 아닙니다. 물건도 지정한 곳에서 받아야 합니다. 어제 만난 ㅂ씨가 한숨을 다시금 쉬는 까닭은, 프랜차이저가 새로운 족쇄를 하나 더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물건을 받았다고 하지만(물건값도 싸지는 않습니다), 조금씩은 다른 도매상에서도 개인적으로 구매하여 팔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100% 물건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지정한 도매상에서 말이지요. 그 도매상은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배달을 부탁하면 미니멈 오더가 백만원이라고 합니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지금, 프랜차이저는 불황으로 인한 부족한 수익분을 다시금 프랜차이지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가뜩이나 수입이 줄어든 판에, 저런 압박까지 들어오니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속된 말로 죽을 노릇입니다. 권리금을 포기하면서 당장 그만 두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건물 임차 계약기간은 채워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ㅂ씨는 "피가 빨리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피를 빨리는 느낌을 주는 프랜차이즈가 치고 들어오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잠 안자며 몸으로 떼워가며 성실하게 일하며 밥벌이하던 모든 업종에 프랜차이즈는 '마수'를 뻗쳤습니다. 개인이 대자본과 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이 자본에 피를 빨리는 '자본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의 나라에 살러와서 가뜩이나 주눅들고 어리버리한데, 그 어리버리한 가운데 나도 모르게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실하게만 일한다면 최소한 굶지는 않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일한다고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대자본이 이민자 사회의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