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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미주 지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국인 참 많습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활동하는 어느 블로그가 좋은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제목은 <미국에서 한국인이 전문직을 갖기 힘든 이유>였습니다. 그 내용은 30대 중반에 미국에 온 한국 유학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유학생이 대학의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처음에는 친절했던 동료 학생들이 왕따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에 교수까지 가세해 까다롭게 굴었다, 이러한 따돌림 때문에 방황하고 좌절하여 목적했던 '미국에서의 전문직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73년 제가 깡촌에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더니, 서울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촌놈에게 사투리를 가지고 놀리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청운의 뜻을 품고 온 미국 대학에서 코피 터뜨`려가며 공부하는 '늦깎이 한국 유학생'에게 본토의 학생들이 저런 텃세를 부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서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생들은 한국의 고3 수험생처럼 생활합니다. 공부에 지쳐서 늘 얼굴이 누렇게 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조기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이곳 사회에서 조기 탈락에 대해 대수로워 하지 않는 문화가 있지만 한국인 부모를 둔 학생들은, 여간해서는 조기 탈락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도 속된 말로 코피 흘리지 않으면 졸업장 받기가 어려운 터에, 30대에 유학을 와서 톱을 달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부디 이런 자잘한 절망에 좌절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끝까지 톱을 유지하여 더 큰 꿈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선 내용의 그 블로그 글에 반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을 구체적으로 전하는 그 글 자체는 좋은 내용이었으나,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몇몇 대목들이 일부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예로 든 유학생처럼 전문직을 갖기 힘들고, 이민을 온 사람들은 대다수가 <영세>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로 비쳐진다는 것입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에 자주 드나드는 저로서는, 유학생이 처한 현실이 미주 지역에 사는 한국인 전체의 현실로 오해될까 싶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계기는, 이같은 내용을 <캐나다에서>라는 이름으로 해당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다가 '어설프게 알면서 태클을 거는 것'으로 비난 받고, 거기에 답글을 달았다가 지워지는 일을 겪었고, 다시는 그곳에 글을 쓰지 못하는 'IP 차단' 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글 자체에 대해 비판을 한 것도 아닌데, 힘겹게 공부하는 유학생의 현실이 미주 지역에 사는 한국인 전체의 일로 비쳐질까 싶어 올린 첨언 내용을 블로거가 좀 오해를 하신 듯 싶습니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했으나 그 글을 본 독자들도 많은 만큼 외국살이 10년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보완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 글은 특정 블로그에 대한 반박이나 비판이 아닙니다. 저는 그 블로그에 나온 내용을 십분 수긍하고 안타까워 합니다.

   다만, 그 현실이 그 글에 나타난 것처럼 <전체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유학생의 문제이며, 특히 '한국' 유학생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쓰는 글입니다. 

   이민 1세들 대다수가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의 자녀들, 곧 젊은 한국인들이 미국과 캐나다의 전문직에 얼마나 많이 진출해 있는가 하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간호사라는 전문직을 얻기 위해 그 글의 주인공께서 유학을 오셨다니, 미국 간호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출해 있는지 이번 기회에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이 뉴욕의 대학병원에서 2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해오셨던 터라 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만일 S라는 블로그 글의 주인공께서 조언을 듣기 위해 원하신다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수많은 한국 후배 간호사들에게 조언해 주시는 분입니다).


뉴욕 맨해튼 32가 코리안타운. 뉴욕의 명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으나 이미지 사진으로 지난 부활절에 찍었던 사진을 다시 올립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분위기는 서부쪽에 비해 다소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같은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서부를 잘 아시는 분들은, 그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고, 제 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국의 대표 도시 뉴욕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뉴욕에서 현재 간호사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국인 숫자는 4천명에 육박합니다. 외국인으로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 사람 다음으로 많은 숫자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인에 비해 대체적으로 실력이 떨어지지만 유창한 영어 하나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는 편입니다. 

  뉴욕을 예로 보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이 '전문직'인 간호사로 일을 하는데, 이 분들이 미국으로 오는 경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미국의 간호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경우. 그런데 이 시험이 참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보던 시험도 폐지되었고, 필리핀이나 괌에 가서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토플성적도 600점 이상을 요구합니다. 토플 점수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완벽한 의사 소통 능력'을 요구합니다. 간호사로서의 자질은 물론 기본에 속하는 조건입니다.

  두번째는, 위에서 언급된 그 늦깎이 유학생처럼 미국 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하여 간호사로 취직하는 경우입니다. 해당 블로그에서 밝힌 대로 졸업을 하면 유학생의 신분임에도 취직이 잘 되고, 취직이 잘 되니 미국 영주권을 얻기도 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당국이 그 길을 봉쇄해 어렵게 공부를 하여 졸업을 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한 채 그 봉쇄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3년째 봉쇄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냉정한 현실 가운데 하나는 영주권자, 시민권자를 포함한 현지인과 유학생을 차별대우한다는 것입니다. 유학생의 경우, 대학 등록금도 현지인에 비해 아주 비쌉니다. 당연히 취업에서도 차별대우가 있습니다. 간호사의 경우, 워낙 일 자체가 중하고 특수하고, 또 한국인처럼 일 잘 하고 책임감있는 인재가 필요하여 그동안에는 어렵지 않게 자리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요즘에는 이렇게 어려워졌습니다.

   OPP제도라 하여 유학생 대학 졸업자에게 1년 일할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 추세는 그 '1년 신분'을 병원에서 꺼려한다고 합니다. 트레이닝에 필요한 기간이 최소 6개월인데, 나머지 6개월을 고용하기 위해 월급과 시간을 투자할 병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현실이 이렇고 보면, 학교에서 공부하며 겪는 어려움보다 졸업 후 취업하면서 겪는 그것이 훨씬 더 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 미국이나 캐나다다 이민 정책이 자주 변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 그 규제와 봉쇄가 슬그머니 풀릴 것입니다. 책임감 있게 일 잘하는 한국 출신 간호사들을 쓰지 않는다면 자기들 손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이 어려움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기 때문에 겪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숨통을 열어놓은 미국은 캐나다보다 조금 나은 기회의 땅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유학생 신분으로 번듯한 전문직에 취직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예 이민자로 와서, 영주권자나 시민권자 신분으로(학비도 훨씬 싸니) 공부를 하여 고급 전문직에 취업한 사례는 종종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한 사람은 현재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일하고, 또 한 사람은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애드먼튼 주정부로 옮겨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고위직 공무원입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 10년 이상 하다가, 30대 중반에 이민와서 이곳에서 공부하고 캐나다 사람들도 부러워 하는 전문직을 갖게 된 이민 1세들입니다. 

   '유학생'이 아닌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숫자는 대단히 많습니다. 이민 1세의 경우에는 언어 문제 등으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미국은 75% 정도, 캐나다는 50%가 넘습니다.

  그러나 2세 한국인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부모들이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식들의 공부 때문입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여 이민 2세 대다수가 전문직을 갖게 됩니다. 제가 단 첫번째 댓글에 대한 답글에서, 그 블로거께서는 이민 1.5세나 2세가 전문직에 진출한 것을 '뜬금없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전문직에 이민 1.5세나 2세가 그렇게 많이 진출해 있다면 왜 한국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미미한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다시 한번 알아보면 금방 알테지만, 최소한 뉴욕과 토론토의 1.5세나 2세의 경우,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드뭅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그 공부를 바탕으로 얻은 화이트컬러를 전문직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느 민족 아이들보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여, 여러 고급 직종에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어제 전화 통화를 한 뉴욕의 어느 분은 "이민 2세 중에 흔하디 흔한 직업이 의사 변호사다. 한 집안에 1명씩은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자기네는 고생하더라도 자식은 잘 키워야겠다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고, 부모가 고생하는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아이들이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피터지게 공부하여 이른바 상류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한국 이민 2세대들의 보편적인 문화입니다. 

   이들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입니다. 요즘은 한국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필사적으로 가르치려 합니다. 사는 곳이 어디든 한국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공한 자녀에게 한국말 가르치지 못해 후회하는 부모를 이곳에서도 여럿 보았습니다. 장성한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하면, 부모들 사이에서 "아이 참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늘 다시 확인해보니,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2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우선 오바마 캠프에서 시카고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일해온 한국인이 7명입니다. 뉴욕 맨해튼 서쪽이 리모델링되고 있는데, 그 디자인을 맡은 이가 한국인 건축가라고 합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시피, FIT나 파슨스 같은 패션 스쿨들은 한국인 학생이 없으면 "문들 닫아야 할" 정도입니다. 한국인 졸업생들이 뉴욕 패션계에 진출하여 어떻게 활약하는가 하는 것은, 이미 한국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이민 1.5세나 2세가 전문직에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 블로그께서 의문을 표시했듯이 한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왜 미미한가? 이유는 두 가지 정도입니다. 

  먼저, '쪽수' 문제입니다. 같은 이민자라도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이 적습니다. 토론토와 그 주변에는 중국인이 100만명 살지만 한국인은 10만명밖에 안됩니다. 전문직에 진출한 이들은 그 비율보다 더 적을 것입니다. 중국인의 교육열은 한국인을 능가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니, 이민 1세부터 전문직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쪽수에서 현저하게 밀리니, 커뮤니티의 영향력 또한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민 1.5세나 2세들의 힘을 모를 만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민 1세들을 모으는 구심점도 미약한 터에, 커뮤니티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다음 세대의 힘을 모으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코리언어메리칸, 코리언캐네이디언으로 이곳 사회에 그냥 동화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 못지 않게 이곳의 1.5세, 2세들도 열광했습니다만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일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또한 그들로 하여금 한국이라고 느낄 만한 동기 부여가 그동안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그같은 일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10여년 전부터 뉴욕에서 벌어지는 한인 유권자 운동 같은 것들도 달라지는 모습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세나 2세 한인 유권자들의 표를 결집하니, 정치적인 파워가 생기고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도 한인 커뮤니티를 무시하지 못하는 경우를 요즘 들어서 봅니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지고 지루하시겠지만, 진도를 조금만 더 나가겠습니다.

  한국인 이민 1세의 경우, 미국에 비해 캐나다에는 전문직에 진출한 이들이 많습니다. 기술 이민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기업이 '캐나다 경력'을 요구하는 이민자에 대한 푸대접(유학생보다는 훨씬 덜 하지만)을 돌파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만도 여럿입니다. 월 2회씩 만나 연습하는 사물놀이팀의 이민 1세 8명 가운데 4명이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이민 1세 대다수가 '영세 자영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대해여. 

  '영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국 땅에 와서 '스몰 비지니스'(자영업)을 하여 먹고 살 만하다면, 저는 영세라고 보지 않습니다. 왠만한 전문직종 종사자들은 자영업자들을 부러워 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돈 때문입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요즘 많이들 어렵다 해도 어렵다 해도, 다들 그렇게 밥벌이를 하며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형제의 부모께서도 미국 씨에틀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하며 자녀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어릴적 부모의 일을 도왔던 정명훈씨는 지금도 그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주방일'을 잘 한다고 합니다.

   이민1세 자영업자들 가운데 거상이 된 분들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하여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기업을 운영해야만 부자가 아닙니다.

  큰 부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수십년 전에 이민을 와서 이곳에서 자수성가하고 자식을 훌륭하게 키운 이민 선배님들을 저는 존경합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분들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은 달랑 200달러였습니다. 말 그대로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이곳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입니다. 지금이야 한국이 잘 살게 되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과거에는 한국으로 엄청난 달러를 보내어 한국의 발전에 보탬을 주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부동산쪽에 투자를 많이 하여 한국의 달러고 비축에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는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희박한 편입니다. 전문직에 종사한다고 하여 뻐길 일도 아니고 진짜 '영세 자영업'에 종사한다 하여 기죽을 일도 전혀 없습니다.  
  
  글을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해당 블로그의 글의 내용이 충실한데도 불구하고, 미국에 사는 모든 한국인들이 전문직에 진출하기가 어렵다는 오해를 살 여지가 다소 있어 그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완을 위해 '캐나다에서'라는 이름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아는 것도 없으면서 태클'이나 거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아예 그쪽 블로그에는 글조차 올릴 수 없는 '봉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봉변이야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미주 지역에 사는 한국인 전체가 전문직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비쳐질까 봐, 이곳의 현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현지에 사는 이들과 여행자들의 처지가 다르듯, 이곳에 사는 이민자와 이곳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의 입장이나 시각 차이는 매우 큽니다. 이민자의 시각이 전체의 것이 될 수 없듯이, 유학생의 시각도 그러할 것입니다. 유학생의 경우에도,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희망하느냐, 현지에 남기를 희망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갈릴 것입니다. 이민자의 경우에도, 이민을 와서 공부를 하느냐, 전문직에 취직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나뉩니다.

  보편적인 사안을 이야기할 때 어느 한 경우만을 가지고 '이것이 전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블로그에 오르는 글이, 개인이 처한 환경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 만큼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그 부족한 부분이 댓글 형식의 토론을 통해 보완되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비판을 통한 보완도 좋겠습니다. 욕설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댓글이든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