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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김연아에게 유독 냉랭한 캐나다 언론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는데, 캐나다 언론의 반응이 참 차갑습니다. 차가워도 민망하리만큼 차갑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겨울 스포츠가 성한 캐나다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종목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종목을 텔레비전은 생중계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싱글과 페어는 생중계했는데, 여자 싱글은 3개 스포츠 채널은 물론 남자와 페어를 중계한 공영방송 CBC도 외면했습니다.


  경기가 벌어지는 곳에서 불과 2시간 여 떨어진 곳에 살면서, 김연아의 경기 모습을 한국 방송을 통해 인터넷으로 보는 아이러니가 생겨납니다.


 


World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Canada’s Kaetlyn Osmond finishes eighth

Olympic champion Kim Yuna captures the gold



  지난번 쇼트 프로그램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송만 그런가 싶었더니, 신문도 김연아에 대한 칭찬은커녕 보도에 인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위는 캐나다 최대의 신문 <토론토스타>에 나온 기사의 제목과 사진입니다. 인터넷 기사도, 종이 신문 기사도 같습니다. 자국 선수에 대한 기사가 우선이라고는 하나, 기사를 보면 챔피언에 대한 예우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부제목으로 아주 드라이하게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다는 뉴스만을 전하고, 본문에서도 딱 한 문장이 나올 뿐입니다. 


Olympic gold medallist Kim Yuna seemed to float through her technically challenging and beautifully choreographed program and easily won gold by a margin of 20 points.


Reigning world champion Carolina Kostner won the silver in a particularly gutsy performance. She went on the ice struggling to stem a bloody nose and skated most of her program well before taking a tumble on her final triple Salchow. A flower girl had to go out afterwards and scrape blood off the ice.


Olympic silver medallist Mao Asada, the only woman to include a triple Axel in her program, essentially the equivalent of a quad in men’s skating, struggled on that landing and won the bronze.

 


 쇼트 프로그램 뉴스를 전할 때부터 김연아를 애써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김연아가 종합 우승을 차지하고 난 다음에 보이는 반응을 보니 그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사의 분량이나 내용으로 보아, 1위에 대한 소개는 2위, 3위보다 작습니다.

 

  종이 신문도 그런가 싶어, 오늘 아침 일부러 들여다 보았습니다. 기사 내용은 똑같고 김연아의 미운 표정을 담은 사진 한 장만 달랑 더 게재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스포츠면 내지의 가장 구석 자리에, 하는 수 없이 실었다는 느낌이 역력합니다.

  지난번 밴쿠버 올림픽을 전후하여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되던 모습과 참 대조적입니다.


  한국에서는 애국가를 캐나다 합창단이 불렀다고 화제가 되는 모양인데, 애국가를 특별히 챙겨서 불러준 게 아닙니다. 김연아가 1위를 했기 때문에 부른 것일 뿐, 아사다 마오가 우승했다면 일본 국가를 불렀을 겁니다.


  김연아에 대해 캐나다 언론이 이렇게 냉정하게 나오는 것은 아마도 브라이언 오서와의 관계 때문인 듯합니다. 어느 곳에서도 직접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김연아의 화려한 복귀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이 흥분하며 기사를 쓰는 데 비해, 냉정하게 딱 2줄의 뉴스만을 전하는 것으로 김연아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토론토스타>에 실린 김연아의 유일한 사진. 이틀에 걸쳐 쇼트와 프리를 석권하고 정상에 등극했으나 사진은 딱 한 장만 게재했습니다. 8위를 차지한 자국 선수의 예쁜 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2위를 차지한 이탈리아 선수의 아름다운 사진은 왜 그렇게도 크게 실었는지-물론 특정 사진가가 좋은 사진으로 찍어 게재한 것이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연아의 사진은 해당 기사의 가장 아래 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쁜 표정과 아름다운 장면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하필 이런 표정의 사진을, 그것도 구석에 처박듯이 게재했는지, 여기에서 캐나다 언론의 악의적인 무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을 전후해, 캐나다 언론들은, 선수로서 토론토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기를 보낸 김연아에게 크게 주목했습니다. 그때도 김연아에 대한 기사는 브라이언 오서의 존재와 지도력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김연아가 오서와 아름답지 못하게 결별하고, 그럼에도 추락하지 않고 정상에 재등극하자 캐나다 언론은 자기들의 감정을 집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나는 평소 캐나다 언론에 대해 매우 호의적입니다. <토론토스타>같은 신문은 공정하고 진보적이고, 이민자와 약자의 편에 서서 기사를 적극적으로 쓰는 좋은 신문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정기 구독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연아에 대해 드러내는 언론의 집단 감정, 의도적인 무시를 접하면서, 캐나다 언론의 새로운 면모를 접합니다. 이들도 사람이고, 참 냉정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