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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한국은 왜 패션이 캐나다보다 빠를까?



  이번 겨울 들어 우리 가게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품목이 하나 있습니다. 인피니티 스카프라 불리는 것인데, 지난 가을초 이곳의 어느 옷회사 사장이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으니 올 겨울에는 캐나다에서도 많이 팔릴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장의 예견대로 타원형으로 이어지는 이 스카프가 이번 시즌의 대세입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특히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이 스카프가 한국에서는 벌써 작년부터 유행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한국 30대 손님은 "작년 겨울에 토론토에서 유독 한국 애들만 이상한 걸 목에 두르고 다니는 게 눈에 띄더니 바로 이것이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패션이 캐나다 토론토보다 정확하게 1년이 빠른 셈입니다.

  하긴 한국이 빠르다기보다는 캐나다가 느리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면서, 한국은 세계의 주요 첨단 시장의 하나로 당연히 편입되었습니다. 소비 자본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유행을 선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일본에 공연하러 온 팝스타들에게 한국 공연은 '끼워팔기'였다면, 지금은 팝스타 공연은 본공연이고 영화는 뉴욕과 동시 개봉됩니다.

  그런데 유행에 예민하고 세계 첨단을 걷는다는 것이, 멋이라는 것을 더 잘 아는 진짜 멋쟁이를 의미할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 길거리 색깔이 참 우중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낮게 내려앉은 겨울의 흐린 하늘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하철의 풍경이 낯설고 어두웠습니다. 패션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한, 그저 매서운 추위를 가리기에 급급해 보였습니다. 다른 계절이라고 하여 딱히 달라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소박하고 수수하다, 나쁘게 말하면 참 촌스럽다, 이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 업계에서 밥벌이를 하다 보니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토론토 사람들이 서울 사람보다 옷을 잘 입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보이는 거리 패션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대개가 유행하는 옷에 신상품입니다. 옷을 참 잘 입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길거리의 대다수 사람들이 새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론토 사람들 또한 신상품에 관심이 많지만 그들, 특히 여성들은 '신상'보다는 죽으라 하고 "매칭"을 외칩니다. 내가 이걸 샀는데, 혹은 나한테 이게 있는데 여기에 맞는 어떤 것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자본이 만든 유행에 별 생각없이 휩쓸려 가는 것 △휩쓸리지 않으면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의 유형이라면, △유행은 있으나 전체가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 △유행이 있건 말건 옷을 통해 나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이 캐나다 토론토의 방식이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행에 민감할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첫째는 유행을 쫓아가지 않으면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번째는 옷이 필요한데 유행하는 것 외에는 따로 살 게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보이기'에 더 치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까지 이르면, 어느 것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은, 좋다 나쁘다의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될 문화적 유형이자 특성입니다. 한국과 이곳이 이렇게 다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