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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손님이 불편하면 커피가 좋아진다-클럽에스프레소


<시사IN>에 커피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책에 실린 후 한 달쯤 지나서 블로그에 옮깁니다. 책에는 지면의 제약 때문에 다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원본을 싣습니다. 사진은 모두 시사IN 백승기 작.


  예전부터 그랬다. 일부러 그런 곳에다 자리를 잡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로 클럽에스프레소 가는 길은 불편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그 커피점을 9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나는 또다시 툴툴거리고 말았다. 예전에 차를 몰고 갈 때는 주차 때문에 골 아프게 하더니,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도 단번에 닿지 않는다.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갈아타고 부암동주민센터 앞까지 다시 가야 한다.

  클럽에스프레소 주변은 고요하다. 인왕산이나 환기미술관을 찾는 사람 정도만 외지인일 뿐 커피 전문점이 있을 시끌벅적한 동네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클럽에스프레소 대표 마은식씨. 고사를 하는 바람에 만나기가 참 어려웠다. 캐나다에서 가는데 안 만나줄거냐 하고 거의 협박을 해서 만났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커피와 목공에 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부암동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나 클럽에스프레소는 놀랍게도 손님들로 북적댄다. 수요일 오후 2. 1층의 40여 좌석은 빈 곳이 거의 없었고, 볶은 콩(원두)을 사려는 손님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맛있는 음식점도, 분위기 좋은 카페도 아닌데 평일 대낮에 불편을 마다 않고 굳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의 커피에 분명 뭔가가 있다.

  그 뭔가는 클럽에스프레소의 입구에서부터 눈에 띈다. ‘커피 중독자 시리즈라는 제목의 이벤트에는 커피를 물처럼 자주 마시는 사람을 위하여같은 다소 장황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른바 중독자에게 제공하는 볶은 커피콩의 가격이 놀랍다. 500g 18천원.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원두 가격이 100g6~8천원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파격적이다.



  입구에 카페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커피 상점이라고 써붙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좋은 사람과 정담을 나누는 곳이라 여기고 그곳을 찾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푹신한 소파 대신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고,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천장과 칸막이,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원목으로 짜여져 있다. 소박하고 검소한 분위기이다. 마은식 대표는 실내는 목공을 하는 나와 우리 직원들이 꾸몄다고 말했다.

  클럽에스프레소는 커피 상점이라는 이름에는 딱 맞아떨어진다.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수십개 커피 생산국에서 들여온 각종 커피콩을 볶아 파는 코너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커피 봉지에는 볶은 날짜를 적어 신선도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 쪽에서는 커피 기구를 전시하면서 집에서 커피를 쉽게 내려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돌아간다. 300ml의 물에 커피 15g2분 만에 내려 마시면 된다. 물은 92도에 맞춘다.

  클럽에스프레소는 201010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90년 서울 대학로에 가게 문을 열었다. 당시 스물셋 젊은이가 창업한 스페셜티 커피점은 새롭다’ ‘특이한 20대가 주인이다하여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의 하나인 대학로에서 클럽에스프레소는 한 마디로 잘 나갔다.’

  2001년 마은식 대표는 그 붐비는 좋은 자리에서 한적하기 짝이 없는 부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느닷없는 이사여서 클럽에스프레소의 팬들은 의아해 했다. 누가 봐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내가 전문가라면 조건이 갖춰진 곳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바로 그 맨바닥에서 이상적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를 실험한 셈이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 가운데서도 커피는 묘한 물건이다. 먹어서 배부른 것도 아니고 마셔서 시원한 것도 아닌, 그저 쓰거나 설탕을 곁들인 달달한 음료일 뿐이다. 웬만한 커피 애호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저 쓰거나 달달한 커피에 전문가혹은 전문성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 괜히 거창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람들은 그 쓴물을 마시기 위해, 놀랍게도 5천원 이상 씩을 서슴없이 투자한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것이 대도시의 비까번쩍한 커피 전문점이니, 커피는 장사꾼에게나 소비자에게나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확실하게 떠올랐다.

  스페셜티 커피가 한 잔에 5~6천원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점이 부암동 같은 외진 곳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마 대표가 말하는 전문성이다. 그이와 함께 한 자리에 직원이 에티오피아산 리무라는 커피를 한 잔 내왔다. 마 대표가 에티오피아에 가서 직접 사온 것이라 했다. 약간 텁텁하지만 좋은 신맛이 돈다. 깊이와 더불어 입안 한 가득 차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마 대표는 꽃 향기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커피의 진정한 맛은 볶기블랜드’(Blend·산지가 서로 다른 커피를 섞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하는 것) 기술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새까맣게 혹은 연하게 볶거나, 블랜딩만 잘 하면 되는 줄로 알았다.

  최근 그 개념이 크게 바뀌었다. “스페셜티 커피의 진정한 맛과 향은 각 커피 산지가 가진 독특한 환경과 문화에서 나온다. 산지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고유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성 높이기와 더불어 마 대표가 목표로 삼는 것은, 바로 그 맛과 향을 좀더 많은 이들이 즐기게 하는 이른바 대중화이다. 커피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은 대중화를 위한 첫 걸음이다.

  “좋은 물건을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하는 것은 제조업자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미국에서 20달러 하는 청바지가 한국에서 10만원 한다면 말이 안된다. 나는 커피 값을 내리자고 악을 쓰며 이야기한다.” 커피업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093월 커피 중독자 시리즈를 시작하여 500g15~18천원(내가 사는 캐나다와 엇비슷한 가격이다) 제공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중화를 위해서이다. “이것이 국제 가격이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남는다고 마 대표는 말했다.

클럽에스프레소에서 파는 생두. 생두를 사서 볶으면 참 재미나는 일이 많이 생긴다.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면서 그는 부암동까지 찾아오는 그 대중들을 점점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2007년부터 그이 스스로 담배를 끊어가며 실내에서 담배를 못 피게 하더니, 2년 후에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했다. 3층 건물(120)을 모두 쓰면서 16명 직원들의 쉼터는 널널하게 만든 대신,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에게는 달랑 1층 한 구석만 내주고 있다. 직원들의 쉼터에는 푹신푹신한 소파와 침대까지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딱딱한 나무 의자만 제공할 뿐이다.

  “홀 서비스 방식으로는 공간의 효율성이나 직원 인건비 같은 것을 따지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꼭 필요하지 않는 서비스를 줄이는 대신 그 에너지를 커피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마 대표는 급기야 매장 내의 테이블을 모두 없애는 계획을 진행중이다. ‘손님을 불편하게, 더 불편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듯 보이는데, 클럽에스프레소에서 그것은 커피 질을 높게, 더 높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하면 2천원이 싼 3천원에 마실 수 있다.

  아무리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지만 한국만큼 커피값이 비싼 나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최근 산지의 특성을 살려 커피를 볶고 만드는 신 개념 커피점으로 각광 받는 미국 스텀프타운커피로스터스의 커피 한 잔 가격이 2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클럽에스프레소가 이른바 가격 파괴와 전문성 높이기를 통해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화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돈 벌어서 배부르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손님에게 최고의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서비스라 생각한다는 마 대표는 여전히 배가 고파 보인다.

 

 

클럽에스프레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전화 02-764-8719

www.clubespresso.co.kr

교통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 1020, 7022, 0212, 7212 갈아타고 부암동주민센터 앞에 하차. 버스 탑승 시간 약 10.

특징 : 20년 전통의 수준 높은 스페셜티 커피 가격이 파격적. 집에서 커피를 직접 볶을 수 있도록 생두 판매. 오븐에서 직접 구운 신선한 쿠키. 온라인 쇼핑 가능. 실내 금연. 인터넷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