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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노무현 추모공연, 부산대 아니면 자리가 없었나?

  
▲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
ⓒ 유성호
 이원기

  이원기 회장은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면
서 "대학 측은 쓰레기와 수업차질, 정치 중립 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불허했고 교직원들이 업무를 못 보게 했으며, '인세산성(부산대 '김인세' 총장의 이름으로 버스로 정문을 막은 것을 빗대 부른 말)'을 설치하고 경찰이 대학에 들어올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 측이 내세운 실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그 어떠한 압력 때문인지 지금도 모르겠다"면서 "마음이 넓으신 총장께서 저희들을 교육시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르치는 교육을 한 것이며, 민주주의가 소중함을 많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청소비가 없다고 했는데, 이번 공연을 위해 1800만 원이나 모금했다"면서 "학생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힘을 보여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공연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가시는 길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고 우리 마음도 더 편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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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글과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퍼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 이후, 국내외에서 벌어진 여러 감동적인 풍경들을 인터넷을 통해 캐나다에서도 상세하게 지켜보았다. 때로는 마음이 움직여서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다.

  캐나다살이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한국을 바라볼 때, 이해 안되는 대목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캐나다 사람의 시각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캐나다에 사는 사람의 시각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에,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이해 안되고 때로는 불편한 점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에 한국에서 벌어진 <촛불시위>이다. 멀리서 지켜보니, 참 이상한 시위였다. 그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몇개월 동안 한 나라의 국정을 마비시킨 큰 시위였음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어보인다. 미국산 쇠고기는 여전히 수입되어 잘 팔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시위는 한국의 이른바 지식인 계층에 있는 사람이  이곳에 전화를 걸어와 "캐나다 쇠고기를 먹는" 나를 걱정하게 하는, 참으로 이상한 시위였다. "멀쩡하다"고 답하면 "10년 후에 나타난다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곳에서 10년산인지, 30년산인지 쇠고기를 먹은 지 10년을 눈앞에 두었으니, 좌우지간 결과는 곧 나타나게 되어 있다. 특히 이민 초기에는 돈이 아깝고, '이게 왠 뼉다귀냐' 싶어 값싼 캐나다산 쇠뼈를 사다가 푹푹 고아서 가족 모두 날이면 날마다 퍼먹었으니, 결과는 금방 드러날 것이다. 한국에서는 캐나다산이 미국산보다 더 위험하다고들 한다는데….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이 연세대에서 불허되었을 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격렬하게 항의했을까? 장소가 없어서? 성공회대에서 성공리에 끝마쳤다니 장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세대가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여서? 그렇게 따지자면 80년대에 성지가 아닌 대학이 없다. 그러면 왜?

  나는 이 대목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대학 당국은 행사를 허가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구두'로 약속이 되었다 하더라도, 대학 당국이 생각하기에 '허가해줄 수 없다'고 판단하면 공식적으로는 더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서면' 계약서가 존재한다면, 계약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아무리 감정이 상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등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성은 작동되지 않았다. 대학 당국이 불허하는 공연을 왜 굳이 그곳에서 하려 했던 것일까? 성공회대에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공연을, 왜 대학 앞에 차량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무리 혹은 야만을 되풀이하게 하며 강행하려 했던 것일까? 

  이번 부산대 공연도 마찬가지다. 대학당국에서 어떤 이유를 들어 불허하면, 속으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승복해야 마땅하다. 확인되지 않는 압력설을 가지고 삐딱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가질 불만이지 물리력으로 학교당국의 입장을 뒤엎을 일은 아니다.

  압력을 받았든 압박을 받았든 그것은 허가와 관련해 따질 일이 아니다.  대학 당국에서 대는 이유 또한 그 진위 여부를 따져보기 전에 받아들여야 한다. 속으로는 아무리 불만스럽더라도 칼을 쥔 쪽에서, 아무리 가당찮은 이유라지만 이유를 대는 친절까지 베풀는데…. 냉정하게 보자면, 이유를 굳이 댈 이유도 없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국 사회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반대파들은 '개구리'라 놀리고 탄핵까지 했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반대파들은 '쥐명박'이라 놀리고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면 비판은  힘을 잃는다.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박정희 전두환처럼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국민의 선택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람들인데, 반대파들이 끝까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사회를 힘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법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그것은 최대 공약수의 부분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연세대가, 부산대가 공연을 불허한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따라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연 허가권을 쥔 측에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불허한다는데, 무슨 이유를 더 따질 수 있을까. 그것은 대학의 자존심, 그런 대학을 둔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이다.

   대학 입구를 대형 버스로 막아 공연을 못하게 했다는 것은, 공연을 한 것과 다름없는 야만적인 풍경이다. 대형 버스를 뚫고 공연을 했다 해서, 자랑스러워 할 것 하나 없는 똑같은 풍경이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학교측의 불허 이유에 대해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말도 안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학교측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굳이 행사를 강행한 그 물리력이 "말도 안된다." 그는 또 "민주주의가 파괴된다"고 했다. 법에 의거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인데, 왜 그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 반대인데?

   원칙을 고수하여 불행해진 대통령이, 민주주의 원칙을 부수며 강행하는 이같은 풍경에 즐거워 할지, 나로서는 정말 의문이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양측은 서로 너무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