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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교통딱지 받고 웃음이 절로 나와?

   지난 목요일 캐나다 토론토는 부활절 연휴 전날이어서 몹시 붐볐다. 특히 다운타운에서 고속도로를 타는 쪽으로 오르는 퇴근 혹은 '행락' 차량이 많다. 대신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반대 차선은 거의 텅 비다시피했다.

   토론토 시내의 일반 주행속도인 60km를 믿고 여유만만 운전하는데, 커브를 돌자마자 경찰이 툭 튀어 나왔다. '아니, 이 넘이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했으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또 순간적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이 차를 붙이라고 손을 까딱했다.

  '에이, 씨벌, 걸렸네' 하면서도 차를 공손하게 세웠다. 
  숨어서 찍은 기계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귀하는 40km 제한 속도의 스쿨존에서 무려 68km를 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 보험가입증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난 여러번 잡힌 경험이 있는 전문가답게 최대한 공손하게, 그러나 비굴하지 않게 "아, 제가 그랬셥니까? 미안하게 됐셤다"(물론 영어였지만 이와 같은 말투로다가......)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른쪽 서랍 비슷한 곳에 들어 있는 등록증을 꺼내기 위해 "저곳을 열어도 되겠셥니꺄?" 했다. 거기 있는 권총을 꺼내서 쏠까 봐 경찰이 무지 긴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Sorry, Sir" 하면서 세 가지를 깔끔하게 넘겨 주었다. 경찰차로 가서 컴퓨터를 통해 내 기록을 체크하고, 딱지에 이것 저것 옮겨적고 하는 시간은 10분 정도 걸린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28km 위반이면 벌점은 3점이 넘는데, 그럼 보험료는 얼마나 오르지? '브로커한테 맡겨서 벌점 털어내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에이, 스가발, 200불 깨졌네.' '200불만 깨지나? 또 벌금은 따로 내야 하잖아.' '아이, 귀찮아 죽겠네, 스발!'. '조까치'처럼 비틀어 옮겨적기도 민망한 온갖 욕들이 말끝에 달려나왔다.

  예의 그 콧수염 경찰이 다가왔다. 나는 그를 보고 다시 한번 방긋 웃었다. 그는 내 웃음에 화답하듯이 경관이 노란딱지를 내밀며 의기양양.
 
  "당신 말이쥐, 스쿨존에서 28km 위반이어서 벌점 4점, 벌금 220불이야. 근데 말이쥐, 내 오늘 특별히 봐줘서 15km 이하 위반으로 해주쥐. 벌금은 37불 더하기 세금이야. 앞으론 조심햐!"



  야, 만세다! 15km 이하면 벌점이 빵이다. 벌금은 내고 말지, 뭐. 야호!

  딱지를 받고도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이 없었다. 나도 들은 게 있어서 시험 한번 해본 것뿐이었다. 경찰한테 걸렸을 때 확실하게 하라는 말.

  첫째, 죽자사자 울어서 확실하게 동정을 살 수 있거나.
  둘째, 그냥 당당하게 '내가 잘못했다. 티켓 끊으쇼' 하고, 이른바 죽은듯이 'Plead Guilty'(김경준 때문에 한국에도 유명해진 제도이다) 하거나.

  어중띄기는 당한다. 나도, 쪽팔리지만 운 적이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야 되는데, 내 꼴이 하도 한심하여 웃음이 픽픽 터져나와 실패는 했지만서도......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면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

  남자가 선택할 최선의 방법은? 그냥 방실 웃으며 깨끗하게 승복하는 거다. 난 그래서 살았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코트에 들고가서 파이팅을 하나, 마나 고민중이다. 코트에 경찰관이 안나오면 없던 일이 되는 거고, 나온다 해도 벌금이 깎인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시간, 돈 생각하면, 빨리 내고 잊아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경찰이 안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하긴 요즘은 시간외 수당을 주니 경찰이 안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아~ 형님, 나~ 관내 취재왔는데, 좀 봐줘" 하고 호통 개그 비슷하게 하면 "아~ 거~ 대충 조심 좀 하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의경한테 붙들리면 얄짤 없었다. "아, 동생, 좀 봐줘"했다가 "난 댁같은 형 둔 적 없는데요? 근데 왜 봐달래요?"라는 얌통머리 없고 야박한 대답을 한번 들으면 쪽팔려서, 담부터는 위반 안했다고만 박박 우긴다. 우기다가 개쪽을 당한 적이 더 많기는 했지만서도...

  마지막 딱지가 2004년이고 하니, 딱지 3장이면 보험도 안받아준다는 토론토의 척박한 보험환경에서도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래도 당분간 조심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함정단속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 이곳에서는 함정단속을 일상적으로 하니,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른다. 하긴 함정이 되는 곳이든 아니든 어긴 게 잘못이기는 하다. 재미나는 것은 함정단속 포인트가 늘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이번에 나는 그 포인트 하나를 더 알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