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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악덕' 건물주는 한국이나 캐나다나…



    한때 한국에 캐나다 이민 붐이 일 때, 이민 알선업체들은 캐나다를 마치 '지상 천국'인양 치켜세웠습니다. 그 말을 다 믿고 이민을 온 사람은 없을테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말에 혹했거나 최소한 작은 기대는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왠걸. 문화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일상'이 닥쳐왔습니다. 한국의 나쁜 것이 싫어 이민을 왔으나 막상 발을 딛고 보니 캐나다의 나쁜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에 살 때는 한국의 좋은 것을 몰랐고 캐나다에 살고 보니 캐나다의 좋은 것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좋은 것들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얻은 단순한 결론. '한국이든 캐나다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나이 들어 이민 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졌던 전문직을 유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하여 이민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스몰 비지니스'입니다. 컨비니언스 세탁소 샌드위치숍 커피숍 등이 한국 출신이민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스몰 비니니스 아이템입니다.

  가게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건물주에게 어떤 조건으로 세를 얻는가 하는 것입니다. 임차료, 곧 가게세(이곳 한인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렌트비'라고 부릅니다)가 얼마인가가 첫번째로 중요한 사안이고 그 다음은 임차 기간입니다.

  악덕 건물주는 그 임차 기간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칩니다. 요즘은 악덕 건물주에, 악덕 프랜차이즈가 가세하여 칼을 모질게 휘두릅니다. 악덕 건물주(또는 악덕 프랜차이즈)는 재계약할 때가 오면, 터무니없는 요구를 많이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들면 가게의 멀쩡한 인테리어를 다시 하라고 합니다. 악질들은 리노베이션을 하는 업체를 일방적으로 선정하여, 그 업체에 의뢰하지 않으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협박합니다. 물론 그 업체가 제시하는 가격은, 일반 업체보다 몇 배는 비쌉니다. 속된 말로 세든 사람을 '봉'으로 만들어 돈을 우려내겠다는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이런 악덕 건물주들은, 애니멀이라 불립니다. 애니멀들이 설쳐대면 이민자들이 고달파집니다. 아직까지는 동물보다 사람이 많아 다행입니다만… .

  오늘 서울에서 유명한 커피점을 운영하는 어느 사장님의 하소연을 전화를 통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들었다면 가게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 심각하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듣고 나니, 악덕 건물주, 곧 애니멀들은 한국에나 캐나다에나 사람 사는 곳이면 다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곳은 서울에서 커피 마니아로 자처하던 제가, 서울의 최고로 꼽는 커피점이었습니다. 지난 8월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십수년을 해온 커피숍입니다. 그곳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 주변에 인테리어 비용만 7~8억원씩 들인 커피점이 여러 개 들어섰으나 다 망했습니다. 그곳은 커피를 제대로 알고, 손님의 취향을 알고,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커피점이 있는 건물에 공간이 생겨, 커피점과 연계되는 음식점을 냈다는데 첫날부터 대박이 났다고 합니다.

  그동안 받아온 가게 임차료(사글세, 이곳 용어로는 렌트비)의 세금을 적당히 낮추어 내던 건물주가 세무소에 어떤 이유로 걸렸다고 합니다. 수억원을 두들겨 맞았습니다. 건물주는 커피점 주인에게 그 세금을 대신 내주든가, 재계약을 하지 말든가 양자 택일 하라고 했답니다.

  건물주에게는 재계약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이용하여 십수년 동안 죽을 둥 살 둥 운영해온 커피점에, 자기가 내지 않은 세금을 대신 내라고 했다는데….

  때만 되면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새로 했던 커피점 사장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은 일일 뿐더러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입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가게에 투자한 비용만 해도 5억원 가량 된다는데, 그것을 날리고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하기야 그 자존심이 커피점을 그렇게 유명하게 만든 것이니, 자존심이 가장 큰 재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같은 커피 마니아 입장에서는,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 하는 '명소'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본의 논리 때문도 아니고, 그저 가진 넘이 부리는 터무니없는 횡포 때문에, 아무리 장삿꾼이지만 장사꾼이 지닌 드높은 자존심과 목숨을 걸고 지켜온 나름의 긍지가 짓밟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서울이나 토론토나 악질들은 어디든 있습니다. 서양 악질이나 동양 악질이나 악질끼리는 어찌나 닮은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