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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타블로와 박재범의 공통된 잘못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성장하여 한국에 들어가 활동하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곳 특유의 문화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타블로에 대한 글을 쓰고, 내 글에 달린 극악스러운 댓글들을 보면서 이민 1.5세, 2세들에 대한 거부감 혹은 적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콜롬비아 대학을 나온 박정현, 서울대를 나온 김태희에 대해 우리는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는 타블로 스스로 만든 것이다."

   타블로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졸업했다는 증거를 여럿 내놓아도 대중이 믿지 않는 것일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보니, 박정현이나 김태희에 대해서는 제기하지 않던 문제들을 유독 타블로에게 들이대는 이유가 하나 떠오릅니다. 그것은 박재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공통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일반 정서와 보편적인 문화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란 아이들답게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입니다.

  재범군이 몰랐던 것은, 친구와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공개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몰라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내용이 공개되었을 때 어떤 파장을 몰고올까 하는 것을 짐작하지도 못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자랐으니 미국친구와 미국식으로 말하고, 그 말이 갖는 의미나 파장에 대해, 자기가 한 말이 한국에 그대로 전해졌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하는 점에 대해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재범군이 잘못한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타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블로가 공개했다는 성적표와 졸업생임을 증명한다는 스탠포드 대학측의 편지. 이 성적표에 따르면 타블로는 대단히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스탠포드를 졸업했다고 한국에서는 '스스로 자랑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타블로의 가장 큰 잘못입니다. 
  

  한국에서 학력 문제는 가장 예민한 부분입니다. 김태희가 서울대 졸업했다고 본인 입으로 자랑했다면, 타블로보다 훨씬 일찍 치도곤을 맞고 무대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명문 대학을 나와도 "나 무슨 대학 나왔다"고 남들에게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존중해야 할 한국의 문화입니다.

  캐나다에 와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영어를 배울 때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질문하지 말아야 할 터부 한 가지씩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학교) 나왔느냐고 고 물으면 안된다. 그건 터부까지는 아니지만 대단히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외국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를 못하겠다. 왜 그런데?"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인의 감정과 정서가 뒤섞인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서가 이러한 환경에서, 스탠포드 대학 조기 졸업이라는 타블로의 학력은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됩니다. 저렇게 좋은 대학을 나온 수재가 연예판에 들어왔기 때문에, 학력 하나만으로도 방송과 대중의 주목을 받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타블로는 자기가 그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것을 자기를 알리는 데 이용했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무슨 대학 나왔다는 것을 스스로 말해도, 무슨 대학 나왔느냐고 물어도 크게 주목되는 자랑이거나 큰 실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스스로 자랑해서는 곤란하고, 물어봐서도 안됩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산 나도 외국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런 복잡 미묘한 정서와 문화를 타블로가 알 리가 없습니다.

  대학뿐 아닙니다. 한국의 연예판에서는 나름의 독특한 생존 논리와 정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연예판의 정치라 불러도 좋겠습니다. 누가 누구와 연애를 해도, 공개하는 것도 시기를 봐가며, 대중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비난을 사기 십상입니다. 연예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을 예쁘게 지켜봐 주세요."

  타블로는 예쁜 배우와 사귀면서 한국 연예판에서 통하는 정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연애하고 있으니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는, 이곳에서 자란 청년답게 그저 히죽대며 좋아하기만 하고, 그 좋아함을 대중 앞에 여과없이 드러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와, 와" 하며 대단하게 생각하니 "나, 스탠포드 나왔어" 하며 떠벌리며 자랑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타블로는 한국에서 명문대 출신이라는 학력이 대접 받는 줄만 알았지, 그것을 자기 입으로 떠들고 다니며 자랑했을 때 남들에게 얼마나 눈꼴사나운 일이 되는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서울대 나온 이들이 "나, 서울대 나왔어"라고 자랑하고 다닐 때의 모습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자란 곳과 한국의 문화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겉은 같고, 말도 같은데, 문화의 다름과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앞으로 외국에서 성장한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감내해야 할 큰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는 그냥 넘어가도 아이들은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물며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문화의 다름과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을 대화로써 서로 이해시켜야 하는데, 한국에 들어가는 1.5세 2세 아이들이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이해는 하지 못해도 그저 그 문화에 맞게 순응하고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다.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재범군과 타블로는 한국 사회의 그 미묘한 문화를 알고 조심했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한 스타들이, 한국 사회에서 터부인 줄도 모르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한국의 문화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