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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커피 공룡들의 피 비린내 나는 전쟁

   향긋해야 할 커피 세계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격해질수록 늘 신선한 커피를 원하는 커피 애호가들에게 즐거운 일이니, 아니러니하기는 합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체감온도)는 기본으로 안고 사는 캐나다 동부 사람들에게, 커피는 밥과 같은 존재입니다. 캐나다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북구의 핀란드와 수위를 다툰다는데, 하루 평균 5잔 정도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0g을 평균 1잔으로 봅니다. 50g이면 막걸리처럼 거의 '퍼마신다'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저의 경우 하루 60~70g 정도를 소비합니다. 커피값을 감당 못하는 것도 이민을 온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비량이 이렇게 많다 보니, 커피 시장이 활성화했고, 그 시장 쟁탈전이 엄청 뜨겁게 전개됩니다. 과거, 개인이 소규모로 운영하던 커피점은 이제 그 자취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동네의 한 모퉁이에서, 그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몇몇 커피점을 제외하면 커피점은 모두가 프랜차이즈입니다. 시장이 그만큼 크고 하니, 대자본이 그 시장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던 프랜차이즈 '커피타임'은 이제 거의 망했고, '세컨컵' '티모시'라는 프랜차이즈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형편입니다. '팀호튼스'라는 막강 프랜차이즈가 캐나다 동부 시장을 완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캐나다의 대표 브랜드인 팀호튼스를 참 싫어합니다. 커피 맛이 싫은 게 아니라. 저같은 이민자를 죽이거나 거의 노예로 만드는 프랜차이즈의 선두주자이기 때문입니다.

  스몰 비지니스에 종사하는 이민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샌드위치숍, 베이글숍, 커피숍 같은 패스트푸드 점을 주로 운영해 왔습니다. 전형적인 스몰 비지니스들입니다.

  그런데, 베이글, 샌드위치, 수프, 도넛까지 취급하는 팀호튼스가 들어서면 최소한 반경 2km 내에 있는 샌드위치숍, 베이글숍, 커피숍은 '아웃'됩니다. 모든 손님들이 앞을 다투어 팀호튼스로 몰려가기 때문입니다. 커피타임의 경우, 바로 옆에 팀호튼스가 들어서면 바로 다음날 문을 닫아야 합니다. 팀호튼스는 그 정도로 위력적입니다.

  브랜드 파워가 상상을 초월하니, 손님이 많이 몰리고,  커피가 많이 팔리니, 커피의 생명인 신선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 그대로 부익부가 되는 셈이지요.

  '팀호튼스 프랜차이즈를 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시겠지만, 이민 온 지 몇년 안된 사람에게 팀호튼스는 절대로 운영권을 주지 않습니다. 온타리오에 2000여개의 팀호튼스가 있으나, 한국인 운영자는 두 사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캐나다의 유명 하키 선수였던 팀 호튼이 친구 및 부인과 함께 설립한 프랜차이즈 커피 회사가 팀호튼스였습니다.

  팀호튼스는 10여년 전쯤에 미국 회사인 웬디스로 소유권이 넘어간 이후에 캐나다에서 압도적인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팀호튼스의 위력은 비유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스포츠 의류업계의 나이키보다 더 막강합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을 휩쓸고 한때 세계를 호령하겠다고 나선 스타벅스도 캐나다에서는 팀호튼스에 밀렸습니다. 스타벅스는 고급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약간 신맛의 팀호튼스에 쓴맛으로 맞섰으나 캐나다 동부에서는 진짜 쓴맛을 보았습니다. 커피로 죽을 쑨 셈이지요.


  물론 한국에 비하자면 엄청 싼 가격이지만 2달러(M 사이즈 기준)에 육박하는 커피 가격에서부터 팀호튼스(1.2달러 정도)에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세계 커피시장을 한때 장악했던 스타벅스는,  그러나 여전히 죽지 않고 명맥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팀호튼스가 압도적으로 리드하던 커피 시장에서 커피 대자본(공룡)들이 혈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커피 시장에 눈을 뜬 맥도날드 때문입니다.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을 거느린 맥도날드는, 미국에서 스타벅스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맥도날드는 스타벅스의 약점, 곧 너무 쓰고, 너무 진하고, 너무 비싸다는 약점을 정확하게 가격했습니다. 적당히 쓰고, 적당히 진하고, 가격은 저렴했습니다. 가맹점이 많으니 커피 애호가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스타벅스를 그로기 상태에 몰아넣은 후 맥도날드는 바야흐로 캐나다 시장 정복에 나섰습니다. 커피의 북부 정벌인 셈입니다. 

   바야흐로 캐나다 동부 시장은 커피 공룡들의 '너 죽고 나 살자'는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팀호튼스는 봄에 '사은대잔치'를 실시합니다. 종이컵에 보물을 숨겨놓고 소비자들이 그것을 까보게 합니다. 자동차, 노트북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으로는 커피 1잔에 이르기까지 수십만개의 상품을 증정합니다.
  가장 잘 나가는 곳에서 사은대잔치까지 벌이니, 다른 회사들은 한 마디로 죽을 맛입니다.

  이에 질세라, 스타벅스는 종이컵을 가져오면 재활용 차원에서 1달러를 싸게 주었습니다. 그 콧대높은 스타벅스로서는, 값싼 커피 개발에 이어 굴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맥도날드는 한 술 더 뜹니다.  맥도날드가 야심차게 내놓은 사은품은 '공짜 커피'. 5월초까지 2주를 잡아, 아침 10시 이전에 오는 손님에게는 무조건 스몰사이즈 커피를 공짜로 제공했습니다. 커피가 먹고 싶으면 맥도날드 매장에 들어가 "프리 커피 주세요" 하면 자동판매기처럼 공짜 커피가 나왔습니다.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내놓은 셈입니다.

  커피 공룡들이 이렇게들 싸우니, 소비자들은 더없이 좋지만 저처럼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 씁쓸한 모습입니다. 고래들이 저렇게 싸우는 와중에 새우들은 등터지는 것은 고사하고 살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형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작은 비지니스를, 대형 자본이 독차지하기 때문입니다. 프랜차이즈로 들어가면 반쯤 노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자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커피는 제3세계의 노동력을 착취하다시피 하여 선진국에서 즐기는 전형적인 '착취 음료'입니다. 노동력을 착취하다 못해,  이민자들의 스몰 비지니스를 아작내더니, 이제는 공룡들끼리 땅따먹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커피향에는 이렇듯 커피 농민들에 대한 착취와  공룡들의 싸움으로 인한 피비린내가 뒤섞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