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캐나다에서 빅이슈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다보니, 캐나다 사람들이 왜 미국인들에 비해 '애국'하는 감정이 옅은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 억류된 자국민을 대하는 두 나라 당국의 태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소말리아 출신의 캐나다 시민권자 수아드 하기 모하무드(31)라는 여성이 어머니와 친정 식구들을 만나러 케냐에 갔다가 '여권 위조 혐의'로 출금 금지를 당했습니다. 여권에 부착된 4년 전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 특히 입술이 달라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그녀는 온타리오 자동차운전면허증, 의료보험카드(OHIP), 캐나다 시민권까지 보여주었는데도 나이로비 공항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캐나다 연방정부와 나이로비 주재 캐나다영사관이었습니다. 케냐 당국이 신분 확인을 요청하자 성급하고도 섣부르게 "캐나다 국민이 아니다"라고 못박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정부가 "아니다"라고 하니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지요. 

  이로 인해 그녀는 나이로비의 감옥에 12주 동안이나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토론토 최고의 일간지인 <토론토스타>가 특파원들을 파견해 사안을 집중 보도하고, 토론토에 있던 수아드의 아들(12)에 대한 DNA 검사서까지 보내어 친자임을 확인하는 소동을 거친 다음에야 그녀는 어제 토론토에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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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6일자 1면 톱기사로 실린 소말리아 캐네이디언 여성의 귀국 기사. 역시 <토론토스타>답다.

  그녀는 1999년에 이민을 온 엄연한 캐나다 시민권자입니다.  캐나다 정부당국이  시민권자를 부인하는 바람에 3개월 동안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본인과 가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자국 정부가 "우리 국민 아니다"라고 했으니 감옥에 들어앉은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귀국 인터뷰에서 "앞으로 외국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아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이 사건은, 얼마전 북한에 억류된 자국 여기자 2명을 구출해온 미국의 경우와 대비가 참 많이 됩니다. 미국은 적성국가인 북한에 불법 월경을 했다가 붙들린 여기자(역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이민자들입니다)들을 빼오기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들여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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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전직 대통령과 선물까지 보내어 적극적으로 구출해온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기사. 자국민 보호에 대한 캐나다와 미국 정부의 태도를 간접으로나마 비교해볼 수 있는 사건이다.    

    반면 캐나다는 정부당국이 발행한 여권과 시민권, 온타리오주정부가 만들어준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까지 지닌 자국 시민을 본체만체 하여 아무 죄 없는 시민을 3개월이나 감옥에 처넣도록 했습니다.

   토론토 피어슨공항에 그녀를 마중나온 소말리아 출신의 어느 캐나다 사람은 "캐나다 정부가 정말 쪽팔린다"고 했습니다. 미국 시민을 적극적으로 구출해오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들이 자국 정부에 대해 뿌듯한 감정을 갖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을 가끔 접하면서 "참 촌스럽게 애국적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이민자들에게서는 "애국 감정"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 시민권자인 이민자들은 대놓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쌍팔년스럽게 무슨 애국? 바보들 아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 외국에서 자국민을 홀대하는 캐나다 정부가 바보입니다. 

  같은 이민자의 나라인 캐나다와 미국이 자국민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북한과 케냐라는 나라의 성격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자국민이 억류된 것은 똑같은 일입니다. 한때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이 벌어졌을 때, 레바논에 사는 캐나다인을 구출하기 위해 함대까지 보낸 적이 있지만, 캐나다는 이번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 해온 자국민 보호와 관련한 모든 노력들을 한방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신문들이 연일 하퍼 연방총리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으니 정치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다음 선거에서 저는 하퍼의 보수당을 절대 찍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보수당에 대해 호의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입니다.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사안별로 비판과 감시를 하는 언론이 살아 있습니다. 소수자, 이민자, 장애인 등 힘없고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운을 걸고 취재 보도하는 진정한 진보언론이 캐나다에 살아 있습니다. 캐나다의 최고 일간지 <토론토스타>입니다. 이 신문이 한국의 <조선일보> 이상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캐나다 사람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일종의 축복입니다.
   
Posted by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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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터킨더 2009.08.17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과연 독일은 그런 경우 어떨까 싶네요.^^

    • 성우제 2009.08.17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캐나다의 경우도, 억류된 시민이 '블랙 이민자'가 아니었어도
      저런 일이 발생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독일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니 이런 일은 별로 없겠지요.

  2. 뱅커두부 2009.08.22 0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미국사람들의 애국심은 대단한편인것같습니다. 아닌사람들도 있지만, 조용한 평범한 시골사람들의 애국심은 무서울정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