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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캐나다에서 보아도 조선일보는 참 거시기 하다

   외국에서 만 7년째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한국 뉴스를 들여다 보아도 이상하게도 시각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려면 한 사회를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일단 환경은 되지 않고 능력 또한 새로 생길 리 없습니다.
  
   하여,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외국에 사는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저 또한 한국에 살았더라면 작년의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에서 제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저는, 제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더불어 그 촛불시위에 대해 냉소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단히 냉소적이었습니다.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았습니다.

  '캐나다에서 멀쩡하게 먹고 있는 이 좋은 고기를 왜 광우병 고기래?' '겁나면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왜 데모들은 하고 *랄이야?' '데모하면서 국정 마비시키고 새 정부가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 
  뭐, 이런 식의 냉소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선일보>를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 입맛에 딱딱 맞을 뿐만 아니라, 일반 정보 또한 가장 빠르고 정확해 보였습니다.

   한국에 있을 적에는 그 신문의 오만과 편견과 독선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는데, 외국에 살면서부터는 <조선일보>가 가장 탁월한 신문으로 읽혔습니다. 역시 <조선일보>였습니다. 욕먹으면서도 1등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조선일보>로의 전향 혹은 투항을 넘어 팬이 되었던 제 눈에, 요즘 <조선일보>는 갑자기 거시기해보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요즘 새삼스레 거시기했다기보다는 원래 거시기했는데, 제 시각이 보수화하다보니, 그 거시기한 게 거시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거시기가 정말 이상하게 거시기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거시기한가?

  장자연 리스트를 누르기 위해 박연차 리스트에 죽자사자 매달려온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박연차 리스트가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노통에게 화살이 집중되는 틈을 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는 그대로 '굳히기'에 들어간 느낌을 줍니다.

  우선, 김대중 칼럼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니, 그 신문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글이라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그 분의 논리가 참 탁월하다고, 가끔 탄복을 하며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글을 보면서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만드는 탁월한 논리를 보았습니다. 조금 안쓰럽게 읽혔습니다.

   특히 이런 대목에서 그랬습니다. "(조선일보 고위 인사가 장자연 리스트에 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렇게 한 달이 넘으니 조선일보 사람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온 것 같다. 문제의 인사뿐 아니라 조선일보 기자 전체 사이에 그 모함의 상대가 누구든 가차없이 대결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나고 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제가 보기에 한국에서 최고의 정보력과 취재력을 갖추고 또 자랑하는 매체입니다. 이 매체의 대표선수가 '모함'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모함을 했을까? 다시 말해, 왜 조선일보의 고위 인사의 이름이 그 명단에 올랐을까?를 기자라면 당연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취재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그게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왜 경찰에게만 빨리 수사하라고 닥달을 하는지??? 왜 이 큰 사건에 대해, 또 조선일보가 '모함'을 받는 사건에 대해, 당사자인 조선일보는 취재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그게 참 거시기 해보입니다.

    저는 조선일보 구성원들의 인내심이 폭발하여, 탁월한 정보력과 취재력으로 장자연 리스트에 자기네 고위 인사의 이름이 오르게 된 이유와 배경을 낱낱이 파헤쳐주면 아주 고맙고 속이 시원하겠습니다. 그 결과가 조선일보를 음해하는 세력의 음모이자 모략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믿고 외국에 사는 팬으로서 큰 박수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닙니다. 경찰에 대놓고 거의 공개 협박하는 사설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사에 응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인사들이 있는데도, 그들은 비판하지 않고,  빨리 결론내리지 않는다고, 대충 조사한다고 경찰만 몰아붙이는 형국입니다. 왜 조사에 응하지 않느냐고 절대 질타하지 않습니다. 자기 식구니까. 그리고는 '대충 수사를 끝내려 한다면 경찰은 설 땅을 잃을 것'이라고 다그칩니다. 

  뭔가 앞뒤가 안맞잖아요. 리스트에 오른 특정인은 조사에 응하지 않는데, 그 특정인을 감싸고 보호하는 매체는 '대충 수사'를 질타한다? 헛갈려서 머리가 돌 지경입니다.

  요즘  조선일보가 그렇게도 잘한다, 잘한다 하며 응원하는 검찰이 있는데, 그 리스트와 관련이 없다면 관련이 없다고 당당하게 나가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가장 강력한 매체가 있는데 뭐가 답답해 자기 이름이 어린 여배우 성상납 리스트에 오르는 그 수모를, 국회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이름을 공개하는 그 쪽팔린 수모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머리만 돌 지경이니 참을 만합니다.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사설에서 발견하고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더러 "정상적 의원으로서, 정상적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정신 이상자라는 것이지요. 아무리 분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지만 사설에 이런 문구가 오르다니 거시기한 것을 넘어 제 눈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외국에 살면서 보수를 좋아했는데, 이쯤에 이르고 보니 조선일보는 보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표현은 찾지 못하겠습니다.

  다음 대목에 이르러서는 경악했습니다. '친노 건달들'.
그 건달의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청와대에서 국가를 경영한 이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한때나마 국가를 이끌었던 그들을 조선일보는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집권 세력이라는 그들의 도덕성이나 의식 세계가 딱 길거리 건달 수준"이라고 욕합니다.

  아무리 나와 뜻이 다르다 해도, 뇌물을 아무리 처먹었다 해도, 우리나라가 저 이들 때문에 아무리 개판 일보 직전이 되었다 해도 그들을 '길거리 건달 수준'이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신문이라고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어떻게 딱 길거리 건달들이나 쓸 수 있는 저런 저급한 표현을 사설에 싣는지, 저는 다시 한번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인이 고소를 하지 않아 죄도 되지 않은 변양균 신정아의 연애 사건을 두고 나라가 뒤집어진 듯 기사를 썼던 곳이 다름아닌 조선일보입니다. 아시다시피 학력 위조 문제는, 신정아의 뒤를 봐준 노무현 정부의 고위 인사를 색출하는 데로 나아갔고, 변양균씨가 걸려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냥 '사랑하는 사이'였을 뿐, 그 불륜의 사랑이라는 것이 위조 학력으로 교수직과 비엔날레 총감독직에 오르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변양균씨는 무죄 선고를 받았고, 신정아씨는 학력위조와 공금 횡령 혐의로 형을 살았습니다.

  결과가 이러한데, 몇달 동안 나라가 뒤집어졌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대표 신문이라는 곳에서 잠시 이성을 잃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설을 보니 독설을 넘어, 저자거리에서 건달들이 멱살잡이를 하듯 앞뒤 가리지 않고 막말을 퍼부어대고 있습니다. 대표신문이 그러하니,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갑자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무서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