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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가 한국보다 선진국인 이유


  개인적인 일이 있어 한국에 급히 다녀왔습니다. 급한 방문이라 사람들은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미처 찾아보지 못한 분들께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다음 번에는 꼭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 들어 두번째 한국 방문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물질적으로 한국, 특히 서울은 너무도 풍요로웠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이 지하철의 변화와 싼 물가였습니다. 하루 종일 쏘다니면서도 교통비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10달러보다 적은 만원 어치만 카드에 충전하면 아무런 걱정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로 돌아오니 마음이 많이 놓입니다. 집이 있고 내가 사는 곳이라 마음이 편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더해, 마음을 놓게 하는 요인이 있으니 바로 차분함, 덜 복잡함 같은 것입니다.

  한국은 물질적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뉴욕에 사는 사람도, 토론토에 사는 나도 공히 인정하는 것이 '서울이 뉴욕 토론토보다 훨씬 잘 산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미제라면 사죽을 못 썼으나, 지금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제라면 너도 나도 좋아합니다. '이거 한국에서 사온 거야' 하는 것은 '이거 좋은 거야'라는 뜻입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이번에 실감했습니다. 한국은 어디를 가도 돈을 기반으로 하는 풍요로움으로 흘러넘쳤습니다. 풍요의 그늘은 다른 문제라 치더라도, 그 풍요로움 자체가 과연 '잘 산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과 연결되는가 하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사항입니다. 
  
  나는 대학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내 눈에, 한국의 대학은 대학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에서 이윤을 창출하면서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보였습니다. 교수들은 연구와 강의보다는 프로젝트에 몰두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의 좁은 땅은 건물로 들어차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장대함이 마치 대학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인 양 그 물량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고려대의 좁은 땅을 촘촘하게 채우는 건물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하는 연세대 병원, 미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홍대의 그 험악한 교문 위 건물 등은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님을 웅변하는 듯했습니다.

  대학은 하나의 사례이자 한국 사회를 드러내는 상징이랄 수 있겠습니다. 바꿀 것은 빨리 바꾸되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꾸지 않기. 절대 변해서는 안되는 것은 절대 바꾸지 않기. 모든 물질적 풍요는 물질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풍요로움에 초점 맞추기. 성장보다는 분배에 더 관심갖기. 영세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 정비하기. 정비한 제도를 굳건하게 지키기.

  물질적으로 보자면 캐나다는 한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입니다. 캐나다는 선진국 소리 듣지만 한국은 아직 선뜻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벼락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 사는가를 모릅니다. 물질적 풍요에 따르는 다른 가치에 아직 눈을 돌리지 못합니다. 돈 많다고 뻐길 줄은 알아도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써야 할지 아직 모릅니다.

  이제 변화 혹은 발전은 그만해도 좋겠습니다. 발전과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라면, 변화 발전하면서도 돌아볼 것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덜 피곤합니다.

  캐나다에 돌아오니, 마음이 참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