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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유인촌의 문화계 인사, 촌티가 나도 너무 난다


  오늘 진중권이 어느 잡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얼마전에 있었다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자진 사퇴 등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이야기해놓았다. 그 내용을 보다 보니, 다른 곳도 아닌 문화예술계에서 어찌하여 이렇게 촌티를 못내서 안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인촌씨는 '촌티'도 일종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외국 나와 살다보니 정권 교체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한국에 살 적에는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 구도 때문에 정파에 대해 선과 악의 개념으로 생각했었다. 12 12와 5 17의 쿠데타 주역들이 전면에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쿠데타 세력을 2대에 걸쳐 따르며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와 살다보니, 그 호가호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생각에도 풍화작용이라는 게 생기는 모양이다. 그 풍화작용을 가능케 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캐나다의 정권교체였다. 캐나다는 Liberal(자유당)와 Conservative(보수당)이 번갈아가며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경영한다.

  정권교체의 의미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세력의 일자리 창출이나 다름없다. 일자리를 얻은 세력이 계약된 기간에 일을 잘 하면 유권자는 그 자리를 계속 유지시키고, 일을 못하면 남에게 그 일을 맡겨버린다. 가게를 임대해주는 건물주와 똑같다.

  이것은, 캐나다나 한국이나 어디서든 통하는 상식이다. 하여 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피터지게 싸워 정권을 잡는 것은, 말이 좋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이지, 따지고 보면 권력을 잡아 일자리를 얻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일자리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면, 이곳에서는 4년 만에, 한국에서는 5년 만에 떨려나게 되어 있다. 결국 나라를 경영하는 일도 큰 범주로 보면 비지니스와 똑같아 보인다. 

  낙하산 인사는 김대중 정권 때도, 노무현 정권 때도 있었다. 낙하산을 비판하는 시각으로 보자면, 무지막지하게 많은 인사들이 각계 요로에 내려갔다. "아니, 어떻게 저 인사가 저기에 가 있나?" 싶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처음에는 욕을 했지만 외국 나와 살다보니, 어차피 정권교체란 비지니스 경영의 세력 교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낙하산 인사 한다고 사방에서 비난이 퍼부어지는 것이 나는 도리어 이상했다. 자리 차지 하려고 정권 잡는 것인데, 일자리도 안 생기는데, 속된 말로 '미쳤다'고 그렇게 피터지게 싸우나? 그 자리 차지하려고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까지 다짐했는데,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크든 작든 일자리 챙겨주는 것은 '당근'이다. 그 당근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은 정치 도의는 물론 양아치 도의에서도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식이다. 지난 정권의 '잔재'를 쓸어내고, 내 사람을 낙하산으로 날릴 때 날리더라도 좀 근사하게, 아니 상식선에서 하면 누가 때리나?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문화예술쪽을 보니 그 인사가 촌티를 넘어 가관이다. 정권이 바뀌면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그런 '소망'을 혼자 가지는 것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겠으나, 어떻게 장관이 그런 '것'을 '말'이라고 입을 통해 내뱉을 수 있는지, 이런 게 너무 촌스러워 보인다는 얘기다. 임기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지키는 것은 권리이고, 저런 권리는 이명박 유인촌 유파도 다음 정권에서 행사할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저걸 말이라고 장관이 말을 하는지... 촌스러워도 너무 촌스럽다.

  두번째.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인사를 보니 그게 또 참 그렇다. 미술판에 미술경영을 제대로 펼칠 만한 자리가 몇 개나 된다고 그 자리에 미술인이 아닌 기업 경영자를 앉히는지, 미술계에서 그 자리조차 빼앗는 것은 보니 촌티, 가관을 넘어 좀 무도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무리 전임자가 마음에 안든다 해도 밀어낸 형국인데, 그 자리에 마음에 드는 보수 '미술인'을 앉혔더라면 촌스럽다는 비난은 하지 않을 것이다.

총장 사퇴 기자회견 하는 황지우 시인. 쫓아낼 때 쫓아내더라도 문화예술계의 인사답게 격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람답게 예의를 지켜가며…. 문화예술이란 결국 인간으로서 격을 갖추고 세련되자고 하는 짓인데…. 어떻게 있던 격까지 다 팽개치는지, 촌티도 이런 촌티는 없다.

  이번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황지우 총장을 쫓아내는 것을 보니, 진중권의 말대로 완장 찬 용식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게 작대기를 휘둘러대는 꼴이다. 쫓아내는 것까지는, 굳이 이해를 해주자면 할 수가 있겠다. 그 핑계가 너무 웃긴다. 예술종합학교에 코미디과를 신설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도의 지적 논리로 운영되어야 할 예술학교에서 "상부에 보고 않고 (주말을 이용해) 외유갔다"는 것을 징계 사유로 내세웠다는 뉴스를 보면서, 화가 나다가 웃음이 나다가, 나중에는 좀 허무하고 쓸쓸했다. 이건 허무 개그였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전두환 정권 때의 전유물인 '무조건 우기기'가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때이른바 숙정 작업이라는 것이 있었다. 부패한 공무원에다가 정권의 맘에 안드는 인사들을 도매금으로 넘겨 자리에서 쫓아내버렸다.  이유로 내세운 것들이 도대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었는데,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무조건 우기기'로 일관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이 더도 덜도 아닌 딱 바로 그 꼴이다. 5공 정권의 후예들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