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이야기

외국에서 장사라는 것을 해보니……


   
  얼마전 서부에 사는 옛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3년 만에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그 사이 그 선배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선배는 이민을 온 후 비지니스(이민 사회에서는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비지니스를 한다'고 표현한다)를 찾는 대신, 전문직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했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취업을 하여 몇년 동안 직장에 다니다가,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비지니스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이제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니, 비지니스가 제법 눈에 보인다고 했다. 그 선배가 장사를 한다는 것이 왠지 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비지니스를 하여 한 가정이 먹고 살 정도만 된다면, 벌이 하나만 따질 경우 웬만한 전문직 월급쟁이보다는 낫다. 원래 꼼꼼한 성격의 그 선배도 그것을 잘 따져본 다음 직장에서 나와 비지니스 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긴 나도 내가 장사를 할 팔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수많은 종족과 인종과 민족과 세대가 드나드는 곳이니 사람 구경은 원없이 하게 된다. 사람 구경뿐인가. 그 종족과 인종과 민족과 세대 속에서 유형별 공통 분모를 찾게 되고, 대응하는 방법도 나름대로 강구하게 된다.

  별의 별 일이 다 생겼다. 

  도둑도 맞아보고, 도둑을 잡아보고, 싸움도 해보고, 좋은 손님 때문에 감동도 맛보았다.

  장사를 하고 보니 "남의 가게에 가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 하나만 꼽자면, 옷가게에서 옷을 입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아무렇게나 잔뜩 어질러 놓고 아무 말도 없이 휭 하고 나가버리는 것. 뒷통수에다 대고 욕을 퍼붓는다. 물론 한국 말로 혼자 조용히 중얼대지만….

  장사를 하고 보니 과거 기자 시절의 푸념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철딱서니 없었던 것인가를 알게 된다. 가령 이런 것. "머리 안쓰는 일 좀 하고 싶다" "취재만 하면 기사는 누가 좀 안써주나?" "기사만 안쓰면 기자는 정말 끝내주는 직업인데…." "취재한 것 입력만 하면 저절로 기사 써지는 프로그램 좀 누가 개발 안하나?"

   장사를 하고 보니, 장사를 하면서도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되고, 기사 쓰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된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이 언제나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감안해서도 말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장사를 하니 어려운 점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사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서울 우리 동네의 작은 슈퍼마켓 아저씨였다. 새벽 2시에 잠이 안와서 맥주를 사러가도 아저씨는 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알바 학생을 쓰는 것도 아니고, 가족 비지니스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1년에 단 하루도 문을 닫는 날이 없었다. 설날에도 열었고 추석에도 열었다. 내가 갈 적에는 언제나 열려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몰랐으나 내가 장사를 하고 보니 그 분이 생각나고, 정말 존경스러워졌다.

  장사를 하고 보니, 장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달라진다. 그 전에는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요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푸대접하는 것을 보면 예전과 달리 막 화딱지가 난다. 그 중의 하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재작년에 뒤늦게 보면서 그랬다.



   죽어서도 이어지는 아름다운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화딱지가 난 까닭은 영화 중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이병헌이 교사로 재직중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학교 앞 가게에서 담배를 훔친다. 아이들을 쫓아 수업중인 교실까지 들어온 가게 주인은 한 학생을 지목한다. 그 학생에게 교사인 이병헌이 "너, 정말 훔쳤니?"라고 묻는다. 교장까지 와 있는 상황이다. 학생은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이병헌은 가게 아저씨에게 "아니라고 하잖아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가게 아저씨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머리를 갸웃거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 밖으로 나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감독은 분명히 학생들이 담배를 훔쳐 학교 안으로 달아나는 장면을 찍었다. 그렇다면 도둑 맞은 것이 확실하다. 가게 주인은 그 아이들을 당연히 쫓아간다. 도둑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도둑을 쫓아온 가게 주인에게, 어찌하여 아이의 진술만 듣고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는가. 교실까지 도둑을 쫓아간 가게 주인은 어찌하여 교사의 고함 한 마디에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는 걸까. 거기에는 교장까지 있었는데…. 도둑질이라는 범죄가 발생했으니, 이건 경찰을 불러 도둑을 잡아야 할 일이다. 또한 그 학교 학생들이 담배를 분명 훔쳐갔으니, 도둑을 잡지는 못해도 교사와 교장은 가게 주인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학생 지도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이 장면에서, <번지점프를 하다>의 감독 김대승이, 장사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여기나 하는 것을 보았다. 김대승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장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는 대다수의 '먹물'들이 그러할 것이고, 과거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장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위의 저 장면이 내 눈에 저렇게 예민하게 포착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장사를 하고 보니, 조선시대의 거상이었다는 임상옥 생각이 났다. 임상옥은 최인호의 장편 <상도>와 2001년 MBC 드라마 <상도>에서 알게 된 인물이다. 드라마 <상도>를 일반 시청자보다 더 자세하고 깊이 들여다 볼 일이 있어서, 소설과 드라마 모두 남들보다는 섬세하게 읽은 편이다.

  임상옥이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 때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몰랐다.

  '이문을 남기려 장사를 하는 것이지, 장사를 해서 사람을 어떻게 남겨?'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임상옥이 남겼다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장사를 하고 보니,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임상옥의 말, 사람을 남긴다는 것은 바로 '신용(Credit)'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장 바닥 같은 곳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한다 해도 장사를 하게 하는, 곧 이문을 남기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바로 그 사람을 붙들어야 하는데, 손님이든 도매상이든 신용이 밑천이 되지 않으면 사람을 잡을 수가 없다. 사람을 통해 퍼지는 좋은 입소문만큼 강력한 광고도 없고, 악소문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다. 눈앞의 한 두푼 이익 보자고 손님이나 도매상을 속이면, 한번은 성공할 수 있어도 돈은 절대로 벌 수가 없다. 속이는 것은, 결국 눈에 훤히 보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장사를 직접 하고 보니, 맨주먹으로 외국에 와서 성공한 이민 선배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보니 일제강점기에 상해와 중경의 임시정부를 먹여살린 자금은 미국과 하와이, 멕시코, 쿠바에서 우리 동포들이 뼈빠지게 장사해서 보낸 돈이었다. 그 자금으로 윤봉길과 이봉창은 폭탄을 제작해 던졌고, 광복군이 결성되어 훈련까지 받게 된다.  

  팔자에 없다 여겼던 장사를 내가 직접 하고 보니, 이렇게 배우는 것도 많다.

   얼마전 MB가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만났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나 또한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뉴스에 관심이 많이 갔었다. 대형마트가 시장 옆에 들어와 상인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대통령이 저곳을 방문했다면 그 속수무책이라는 하소연을 들어주고, 무슨 대책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래도 대통령이 움직였는데….

  대형마트 때문에 속수무책인 스몰 비지니스를 위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이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빅이슈가 된다. 캐나다에서도 똑같은 일들을 겪고 있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해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웬걸? 아무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상인들의 타는 속마음과는 상관없는 '헛소리'들만 잔뜩 늘어놓았다.  "내가 과거에 시장에서 일을 할 적에는 이런 일에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는 둥, "인터넷으로 직거래를 하면 어떠냐"는 둥…. 누가 몰라서 못하나? 아무리 해도 대량 구매로 인한 가격 경쟁, 신선도, 배달 서비스 같은 것을 소형 자본으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서 그렇지.   저런 '헛소리'나 할 것이면 왜 시장바닥에까지 나갔나 싶었다. 논에 가서 모내기 하고 논두렁에서 막걸리 마시는 것과 똑같은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니, "저 **가 누구 놀리나?" 하는 쌍욕이 내 입에서 터져나오려 하는 걸, 그래도 우리나라 대통령이라서 눌러 참았다. 만약 토론토에서 하퍼 연방 총리나 맥귄티 온타리오주 총리가 주변 대형 마트 때문에 비지니스가 갑자기 어려워진 지역을 찾아가 저런 헛소리를 했다면 쌍욕은을 진짜로 입에 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