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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아버지로서 더 위대한 농구스타 피셔



  이곳 날짜로 6월14일 밤에 NBA 최종전이 끝났습니다. 아시는 대로 LA  레이커스가 우승했고, 필 잭슨 감독은 10번 우승한 최초의 명장 반열에 올랐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파이널에서 처음으로 MVP가 되어 MVP 그랜드슬램(정규리그, 올스타전까지)을 거머쥐었다고 하는군요.

  올랜도 매직과 벌인 최종 시리즈에서 역시 분수령은 올랜도에서 벌어진 네번째 게임이었습니다. 드와잇 하워드를 앞세운 올랜도는 힘이 넘치고, 슛은 정교했습니다. 2차전에서도 99% 이긴 게임을 놓치고야 말았지요. 
  
   올랜도는 홈경기인 3차전에서 이기고 역시 홈경기인 4차전에서도 여세를 몰아 승리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LA는 11초를 남기고 골밑에서 고의 파울을 하여 하워드에게 쉬운 골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3점차로 리드하던 올랜도는 하워드가 자유투 2개 가운데 하나만 넣어도 이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 왠  운명의 장난? 체력의 상징 수퍼맨 하워드는, 경기 막판에 힘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2개를 모두 놓치고 맙니다. 그래도 3점이 앞서 있으니, 여유는 있습니다.

  11초를 남기고 작전 타임. 필 잭슨은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수비가 몰릴 것을 간파, 데릭 피셔에게 슛을 쏘게 합니다. 4초 남기고 쏙 들어갑니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면 도저히 넣을 수 없는 슛입니다. 게다가 3점슛입니다.


  사실 경기를 결정짓는 마무리 슛은 팀의 에이스가 쏘게 됩니다.  그 슛을 성공시키니 에이스입니다. 마이클 조던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는 부저 비터로 게임을 뒤집는 매직을 여러번 연출했다는 것. LA는 당연히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쏘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클 조던과 더불어 6번 우승을 차지한 승부사 필 잭슨은 코비 대신 데릭 피셔를 택합니다. 그리고 성공. 피셔는 펄펄 뛰기는커녕 크게 웃지도 않습니다. 피식. 이게 전부입니다. 잭슨 감독은 코비가 마이클 조던에 비해 2% 부족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마지막 승부수를 피셔에게 던졌던 거죠. 그 승부수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것이고… .

  피셔는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가는 3점슛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장 막판 종료 30초를 남기고 또 3점슛을 꽂아넣습니다. 이 한 방은 다 졌던 게임을 LA로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우승까지 일궈낸 황금의 샷입니다. 5차전에서 올랜도는 홈게임인데도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무너졌으니까. 만일 게임 스코어가 2대 2가 되었더라면 체력이 뛰어난 올랜도에게 더 유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5차전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뒤 코비 브라이언트가 데릭 피셔의 머리에 자기 머리를 대고 뭐라고 오랫동안 중얼거리던 게 화면에 잡혔습니다. 

  과거 LA가 3연패를 할 때 멤버로는 두 사람이 남아 있었죠. 더군다나 4차전을 잡아주는 바람에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코비 입장에서는 가장 감사해야 할 동료가 피셔였겠지요. 물론 폴 가솔이 없었더라면 파이널까지 오지도 못했겠지만요.

  그런데 왜 독사 표정을 가진 승부사 필 잭슨은 4차전의 결정타를 피셔에게 날리게 했을까? 코비가 마이클 조던에 비해 2% 부족하다고 하나, 지구상에서 활동하는 슛터 중 최고인데, 왜 그랬을까?

  필 잭슨은 98% 대신 100%를 택했습니다. 왜 피셔가 100%? 공격형 포인트 가드인 피셔는, 결정적인 순간에 얼거나 긴장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힘? '무심의 힘'입니다. 농구선수보다는 아버지로서 농구경기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 피셔가 <토론토스타> 스포츠 면에 주인공으로 나왔더군요. 무심의 슛을 날릴 수 있는 까닭은 피셔가 "우승에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입니다. 왜 관심이 없을까요? 프로 선수가?

  피셔는 농구스타로서보다는 순전히 아버지로서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 팀을 다니다가 LA로 복귀한 이유도 순전히 딸의 치료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린 딸이 큰 병을 앓고 있었는데, 유타 재즈에 가서는 뉴욕에서 딸이 수술 받는 것을 밤새 지켜본 후 비행기 타고 날아가 경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LA에 우승을 위해 온 게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순전히 딸의 치료를 위해, 치료 여건이 훨씬 좋은 대도시 LA를 찾아온 것이지요. 팀 동료들도 모두 그것을 인정하고, '사람 좋은 피셔'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니 피셔에게는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야망이 있을 리 없지요. 그저 열심히 뛰는 것밖에 없는데(그게 아버지 노릇 잘 하는 거니까), 욕심이 없으니 별로 긴장할 리 없고, 욕심이 없으니 결정적인 슛을 성공시키고도 무덤덤한 거죠. 독사의 표정을 지닌 백여시 필 잭슨은 바로 그것을 읽어낸 거죠. 결정적인 순간에 쏘는 무심의 슛은 마이클 조던의 슛보다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간파해낸 것이죠. 필 잭슨은 역시 최고의 농구 감독입니다.

  사실 LA가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내세워 엄청 잘 나갈 때부터 LA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함께 농구를 자주 보던 후배 K는 저보다 더 싫어했습니다. 건방을 떤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싫어하는 와중에서도 피셔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인상이 가장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고 보면 인상이 정말 더럽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피셔는 천사처럼 보입니다. MBA 파이널의 숨은 MVP는 데릭 피셔입니다. 천사의 슛을 두 개씩이나 날렸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유타 시절의 피셔. 깊은 병을 앓고 있는 딸의 치료를 위해 치료의 여건이 훨씬 좋은 대도시 LA로 옮겨왔다. 딸은 거의 완치가 되고 피셔는 NBA의 챔피언에 올랐다. 무심의 슈터.




그나저나 농구가 끝났으니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