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캐나다 살이

미수다 '베라 한국 폄하 발언' 한 가지 빼고는 맞는 말



  인터넷 뉴스를 보니 미수다에 출연한 독일 아가씨 베라의 발언이 비난을 받고 있더군요. 그녀가 독일에서 쓴 책에 실린 내용 때문이라는데….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겨납니다. 이같은 객관적인 눈은 때로는 정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서 보아야 숲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베라의 대한국 발언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는 대목은 '지하철을 보면 쥐 생각이 난다"는 대목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서울의 4호선 '지옥철'을 타는 한국 사람들의 아침 저녁 고생을 체험하지 못한 데서 나온 오해와 편견인 듯 싶고….

  나머지는 한국에 계신 분들이 깎아내리기 발언이라고 여기지 말고 한번쯤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지 싶습니다.

                                    미수다 베라. 웃음이 예쁜 여성이군요. 구굴에서 빌려온 사진입니다.                            

  먼저, 이 부분. 

   "한국 젊은 여자들은 유행을 광적으로 좇아 미니스커트를 입는데 계단을 올라갈 때 가리면서 그걸 왜 입는지 모르겠다.”

  제가 보기에, 유행을 '광적으로 좇'는 한국인은 젊은 여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유행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유행에 민감하고 싶어 그러기보다는, 유행에 뒤처기라도 하면 남들로부터 '한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너, 옷이 그게 뭐냐?" 하는….

  1989년에 산 겨울철 오리털 파카가 있습니다. 8년 전 이민을 올 당시, 버릴까 말까 하다가 '캐나다는 추운 곳이라고 하니' 하며 짐에 넣었습니다. 브랜드 네임. 한국산 런던포그. 한국만큼 옷을 잘 만드는 나라를 요즘은 찾기가 힘듭니다. 체감온도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만주 벌판 같은 토론토에서 1989년산 한국산 런던포그는 무척  따뜻합니다. 눈폭풍을 동반한 강추위가 와도 끄떡없습니다.

  어느 잡지에 기고를 했더니 사진을 한 장 보내라고 했습니다. 겨울철 카티지에 런던포그 파카를 입고 놀러갔던 사진을 보냈습니다. 잡지사 편집 기자가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어머, 아직도 그런 옷 입으세요? 지금은 한국에는 그런 파카 입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놀랍네요."

   그런 파카를 입으면 어떻습니까? 따뜻하고 깨끗하면 그만이지요. 게다가 캐나다에서는 과거의 것이라도 본인이 좋아하면 그것은 본인의 멋이라고들 여기는데요.

  한국에 살 때에는 대세를 따르지 않는 남의 스타일에 대해 꼭 한 마디씩 합니다.

  "야, 머리 스타일이 그게 뭐냐?" "안경 참 촌스럽데, 야, 그런 걸 요새 누가 끼고 다니냐?"

  남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신경이 쓰이는데, 새로운 스타일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최신 유행인 미니스커트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가 입고 싶은 것도 있을테지만 유행에 뒤처지면 한 소리 듣게 되고, 그 한 소리를 자꾸 들으면 싫고, 마치 시대를 따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남의 외양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유행이라는 '대세'를 따르면 '뒤처진다'는 느낌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유행에 민감하고, 저절로 따라가는 것이겠지요.

  계단에 올라갈 때의 불편함은, 유행에 뒤처졌다고 한 소리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불편함입니다. 베라는 현상은 보았으나 본질을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싶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 가리면서도 그것을 입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문화는 읽어내지 못한 듯….

  한국이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외국에 살아보면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 금세 알게 됩니다), 소수에 대한 배려 문화에 이제는 눈을 돌리고 실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을 재는 척도는 남에 대한 배려, 특히 소수에 대한 배려이거든요.

  캐나다에는 어느 식당을 가든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음식의 소수에 대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사실 식당 메뉴를 준비할 때 소수인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잠시 잠깐 식당업에 종사해봐서 잘 압니다. 몇명 먹지도 않아서 들이는 수고에 비해 돈도 되지 않는 것인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은 꼭 만들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화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를 피는 이들은 '흡연권'을 주장하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면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흡연권은 권리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즐기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말이 되는지요? 담배는 무조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싫다는데 자기 좋자고 피해를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방송에서 하는 말은 반이 작가가 써준 말이다. 그걸 외워 방송에서 그대로 얘기한다."

  이것은 한국의 방송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폄하하는 발언이 안되겠지요. 한 나라의 방송 문화가 작가가 100%를 써준들 어떠하겠습니까? 방송이야 어차피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 목적이니, 해당 시청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는 쪽으로 가야 겠지요. 리얼 프로그램이라는 '페떳'의 경우도 작가가 써줬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베다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이러고도 한국에 빠졌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한다는데…. 제가 보기에는, 한국을 악의적으로 비판한다고 여기지 말고 객관적으로 본 것이라고 으젓하게 한번쯤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남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 남이 고마운 것이지요.
  
  베라가 저 정도의 글을 썼다면 그녀는 '한국에 빠진 것'이 확실합니다. 한국에 빠지지 않으면 외국 사람으로서 저런 내용의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칭찬이든 비난이든 아예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겠지요. 이제 한국에서도 외국인의 '한국 문화 들여다 보기'를 좀더 긍정적으로 당당하게 듣는 귀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지금 세계적으로 그런 자세를 가질 만한 위상을 가지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제 말, 믿어도 좋습니다.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 한국 문화를 국내에 살 때보다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베라의 책이 '제대로' 번역되었으면 좋겠군요. 본인은 번역을 잘못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캐나다에서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만큼 유행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