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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돋보기를 처음 쓴 기분


  안경은 쓴 지 어언 30여년 만에 전혀 다른 종류의 안경 하나가 서울에서 도착했습니다. 캐나다에 살면서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하여, 안경은 한국에서 맞춰 씁니다. 요즘은 한국을 오가는 이들이 많으니 그 편에 부탁해도 되고, 인편이 없으면 우편으로 받아도 별 불편함이 없습니다.


  토론토의 검안의에게 시력을 검사 받고 그 내용을 이메일로 보냈더니 이번에는 안경을 평소보다 하나 더 보내왔습니다. 놀랍게도 돋보기입니다. 돋보기라 하면 예전 할아버지 생각이 퍼뜩 떠오르는데, 제가 할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년에 들기는 든 모양입니다.



  몇년 전 검안의에게 갔을 때 "원시가 생겼네요" 하더군요. 그때 화가 좀 났습니다. 젊은 여선생이 아니었다면 짜증을 냈을텐데, 검안의 하는 말이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하고 위로를 하길래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화가 좀 누그러졌습니다.
  
  이후 책의 거리가 눈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급기야 안경을 벗고 코앞에 바짝 붙여야 가장 읽기 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보통 안경은 2개씩 오는데 이번에는 3개가 왔습니다. 하나는 근시 전용. 또 하나는 근시와 원시를 결합한, 전문용어로 다초점랜즈, 마지막이 문제의 돋보기였습니다.

  돋보기를 쓰는데 마음의 저항이 좀 있었습니다. 돋보기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이 '늙었다'는 것이어서요. 오! 놀라워라.  쓰고 보니 뜻밖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노트북 자판과 화면의 글씨들이 갑자기 커지더니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어느새 노트북 옆에는 으레 돋보기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어릴 적부터 보아온 유명 인물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뜨는 것을 목도하면서 나도 나이가 먹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에만 김수환 추기경이 가셨고, 노무현 전대통령, 마이클 잭슨에 이어 DJ까지. 그 이전에도 누가 있지 싶은데, 이제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싶어 누가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동시대의 대표 인물이자 아이콘이었던 분들이, 나의 앞에서 사라지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내 청춘도 이렇게 끝이 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하고... 

  이제 돋보기와 친하게 되었으니 나이값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