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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네티즌의 벌떼 공격을 당하다

 

   이 글 바로 직전에 쓴 '<무한도전> 가요제를 나름 심사해보니…'라는 글을 올렸다가 이름 모를 사람들로부터 벌떼 공격을 당했다. 듀엣에다 신곡을 들고나온 프로그램의 형식이 재미있고, 내용 또한 기대 이상이어서, 나름대로 재미삼아 심사한 내용을 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쓴 내 글을 바꾸지 않거나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무한 공격을 받을 뻔했다.

  문제는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이라는 수식어가 가수 윤미래의 이름 앞에 붙었다는 사실. 바로 다음의 글이다.

  윤도현을 무색하게 만든 주인공들은 내가 보기에, 단연 윤미래(위 사진)와 이정현, 그리고 제시카였다. 이민을 오기 전에 한류 스타로 부상한 이정현은 인터뷰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 윤미래와 '소녀' 제시카는 '개인'으로는 처음 보는 무대였다.

   비판과 비난의 요지는, "그때 윤미래가 왜 무명이었냐" "이정현이 뜨기 전부터 윤미래는 유명했다' "그것도 모르면서 당신이 기자냐" "이렇게 쓰는 걸 보니 기자 하면서 욕 많이 먹었겠다" 등등의 댓글이 잇달아 올랐다. 원색적인 욕도 더러 섞여 있었다.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냐" "당시 이정현은 알았어도 윤미래라는 이름은 무명급이었다" 어쩌고 하는 나의 답글은,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10여년 전의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당시 업타운이라는 힙합 그룹이 어렴풋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그 멤버 이름이 누구였는지는 이번에 처음 들었던 까닭에 "항복. 더이상 문제제기 하지 말라. 10글자를 삭제했다"며 백기를 들어 상황은 끝이 났다.

   내가 백기를 쉽게 들 수 있는 이유는, 저 10글자가 글의 전체 맥락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고, 백기를 들었다고 나로서는, 뭐, 손해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은 그 뒤를 잇는 바로 이것이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한다.

  가요제에서 유재석팀인 '퓨처라이거'가 대상을 거머쥐게 한 공로자는, 내가 보기에 윤미래였다. 윤미래의 가창력은 놀랍도록 탁월했다. 유뷰브에서 찾았더니, R&B 전문이자 뛰어난 랩퍼였다. 이미 그렇게 평가 받았겠으나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여성 힙합 가수가 아닌가 싶다.

  윤미래는, 다소 경박한 가사로 가볍게 흘러버릴 수 있었던 댄스음악 노래를 빼어난 오로지 노래 실력 하나만으로 고급스럽게 끌고 나갔다. 가수가 아닌 유재석의 노래를 제대로 커버하며 이끌어가는 실력.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미는 실력.

   "쟤 누구야?" 하며 유튜브와 기사를 뒤져보았더니, 내가 떠난 사이에 한국에서 정상에 오른 실력자였다. 미리 녹음한 음악과는 아랑곳없이 분위기에 맞춰 다른 목소리로 끌고가는 그 음악성에 놀랐다. 작곡가 타이거JK는 자기 색깔을 많이 희석시켜 곡을 쓴 듯했다. 타블로가 그랬던 것처럼.
   
  이로써 나는 윤미래와 그의 남편이라는 타이거JK의 열혈팬이 되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100% 인터뷰 감이다.

    과거 어느 시절, 그녀가 무명이었나 유명인이었나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이라는 수식어가 있든 없든, 글의 핵심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기사를 이렇게 썼다면 "무슨 칭찬이 이렇게 과해?"라며 데스크가 짜증을 내며 북북 지웠을 것이다. 개인 블로그이니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칭찬하는 내용까지 글을 다 읽고 공격을 해도 하라'는 필자의 부탁에는 아랑곳없이 벌떼들은 무한 공격했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서라기보다는, 빼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삭제했다. "이제 됐나?" 하면서... 하하.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문제에 대해, 10여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공격자들은 문제를 삼고 심지어 직업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했다. 의심 받았다 하여, 없던 자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건 또 논외의 문제이다.

  정작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이같은 벌떼 공격의 양상. 한국에서는 인터넷 벌떼 공격에 대해 유명인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보인다.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에서 MC 이소라와 현영은 "(꽃남) 팬들의 공격이 무서워" 좋은 것도 좋다고 표현하지 못했다고 했다. 방송의 어떤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호감을 드러내거나 행동으로 표현하면, 이 또한 벌떼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게 무섭다는 것이다.

  하긴 악플들이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형국이니, 무섭기는 무서울 것이다.

  나는 전율이 일었다. 내가 정작 무서워 하는 것은, 벌떼 공격이 아니다.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공개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이 무서워서"라는 표현을 쓰는 상황이다. 이건, 무엇이 무서워 표현을 '자체 검열'하는 공안 정국이나 다름없다. 네티즌 공안정국 혹은 네티즌 독재라고 해도 좋겠다. 과거 유신 때나 5공 시절을 연상시킨다.

  둘째 문제는, 벌떼 공격의 '무차별성'이다. 벌떼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앞뒤에 무슨 내용이 있든 간에 먹이감이 있으면 떼로 달려든다. 개인이 이름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떼 속에 익명으로 숨어 공격한다. 우루루 몰려다니며, 떼 속에 숨어서만 힘을 쓰는 개떼 근성 비슷하다. 

   내 글의 경우, 핵심 내용은 위에 적은 대로 윤미래의 빼어난 실력을 칭찬하는 것이다. 윤미래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것은 공격에 나선 벌떼들의 그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벌떼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당시에는 무명급이었던" 10글자에 목숨을 걸듯이 덤벼들었다. 내가 저렇게 잘못 썼다고 하여, 당시 유명했던 그녀가 갑자기 무명급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고, 틀렸다면 그냥 틀린 것이고, 또한 내가 그렇게 오해했다고 하여 팩트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그렇게 믿을 일도 아닌데, '아이돌 스타의 바로 아래급'이라는 정보까지 제공하면서 백기를 요구했다.

  당시 최고의 아이돌스타가 HOT라고 한다면 10년이 더 지난 지금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멤버 이름은 강타와 문희준뿐이다. 나머지는 알았다가 지금은 다 까먹었다. 그 아래급이었다는 문제의 그룹은, 그룹이름조차 가물가물한데 멤버 이름을 모른다고, '그러고도 네가 기자였냐'라고 힐난했다.

  사람의 말을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싶은 대목만 뚝 떼어 비판하는 것은 철지난 매카시즘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중국 홍위병들도 그짓을 했다.

   가장 최근 희생자는 김부선이라고 했다. 발언의 전체 내용과는 관계없이 "대마초=한약"이라는 대목만 떼어내어,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급기야 한의사협회에서 성명서까지 내는 촌극이 빚어졌다고 했다.

  노인을 폭행했다고 치도곤을 맞은 최민수는 또 어떤 경우인가.

  앞뒤 맥락 따지지 않고 욕하고 싶은 대목만 거두절미 공격하는 행태는, 한국 사회의 한 문화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가장 큰 희생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 한 마디는 집권 내내 그를 괴롭혔다. 그 말이 나온 앞뒤 맥락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대목인데도, 반대파들은 집요하게 저 한 문장을 무기로 내세워 "말 함부로 한다" "경망스럽다" 등등의 언어로 그를 후벼팠다. 이쯤되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 '무조건 잘못했다'거나 적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10년 전쯤부터 언론매체에는 '네티즌 의견'이라는 코멘트가 올라오기 시작해, 지금은 아예 일반화했다. 나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고 본다. 의견이란, 그 말에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거기에 최소한 자기 이름을 걸어야 한다. 익명으로,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견이라도 되는 양 공공 매체에 올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공 매체가 익명성을 이렇게 키워주고 있으니, 그 익명성으로 인해 사회가 얼마나 시끄러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반대 의견 혹은 인기 스타에 대한 호의라도 표현할라치면 '개떼처럼' 몰려다니며 무차별 공격을 해대니, 연예인들은 물론 지식인들이 보복이 두려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MC 현영이 그랬듯이, 기쁨을 표시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게 대수다.  

김민기의 노래 <친구> 2절 가사가 생각난다.

 '눈 앞에 보이는 수 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우겨 말하는 '그 모두'로부터 박살이 날 판인데, 누가 굳이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그런데도  벌떼 공격을 당하는 내가 퍽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항복' 하고 백기를 든 다음 벌떼들이 물러나자, 갑자기 원군이 등장했다. 그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