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이야기

노정연씨의 '호화 아파트' 논의에 대하여...

  1.  4백개에 가까운 의견들이 올랐습니다.


     의견들 많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격렬하게라도 의견을 나누는 중에, 어떤 의견이 사실에 더 가까울까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서프라이즈에 글 쓰신 분의 이야기는, 뉴저지에 10년 넘게 살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제의 아파트를 보고 출퇴근하는 제 친구의 이야기와 똑같군요. 쓰레기 매립지 위에 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냄새까지 나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뉴저지 '터줏대감'이 찍어준 고급 아파트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정연씨가 계약했다는 허드슨클럽에서 언덕 위를 쳐다보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맨해튼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대서양까지 보일 것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급'축에 속합니다. 주거 공간으로 '호화' '럭셔리' 소리를 들으려면 아파트 정도로는 곤란하겠지요. 허드슨클럽은 강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위의 아파트와는 달리 맨해튼과는 직각으로 서 있어서 맨해튼 풍경을 즐기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주거 형태가 어떠한지 사실 잘 모르실 겁니다. 저도 마음만 먹는다면 정연씨가 계약했다는 저 아파트에 지금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금융위기 이전에 미국 은행에서 모기지를 100% 넘게 빌려준 것은 아시지요? 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들어갈 수 있거든요.

    캐나다에서도 브로커 잘 만나면 10%만 다운페이 하고 집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매달 내야 하는 모기지인데, 실제로 문제를 삼으려면 바로 이것을 물고 늘어져야겠지요. 그래야 이치에 맞지 않겠어요?


    그런데, 잔금도 치르지 않고, 모기지를 얻었는지 여부도 가려지지 않고, 지금 고액의 모기지를 내며 사는 것도 아닌데, 호화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는 것이 아니지요.

    160만불이 되었든, 60만불이 되었든, 제가 보기에, 그 동네는 한눈에 허접해 보였습니다(그 동네에 사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공사중이어서 파헤친 곳이 많았고, 길 건너편은 살풍경이었습니다. 맨해튼의 풍경이 보인다고는 하나, 언덕 위의 집도 아니고 바로 강가에 붙어 있는 4층짜리 건물들이 럭셔리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은 지 5년 이상 되었는데도 분양이 되지 않은 건물이 보였습니다. 웬만한 아파트에는 다 있는 시큐러티도 없고, 주차장에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곳을 두고 '호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산다는 어떤 분은, 1층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를 보고 쇼핑오러 온 차라고 하셨지요? 쇼핑몰이 없는데, 그곳에 왜 쇼핑하러 오나요? 그냥 평범한 그로서리 슈퍼마켓 하나밖에 없던데요? 그 근처에 H마트(한국식품)있는 거 아세요? 쇼핑을 하러 가려면 그쪽으로 몰릴 것에요. 크고 좋으니까.

    뉴저지 근처에 사신다는 분, 의혹이 생기시걸랑 직접 한번 가보세요. 링컨터널 가기 직전, 왼쪽으로 쓰레기 더미 위에 잡초 무성한 곳을 지나, 새로 아파트 지으려고 깊게 땅을 파고 콘크리트로 공구리 한 곳을 지나, 분양이 되지 않아 덜렁 서 있는 건물을 지나면, 문제의 아파트가 나옵니다. 그곳에 서 있는 차들이, 부자들이 타는 작은 승용차인지, 중산층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들인지, 눈으로 보면 금방 압니다. 외국 생활 8년차에 접어든 제가 보기에 부자들은 미니밴 몰고 다니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가는 골프장 주차장에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부자들은 소형차로 스포츠카를 많이 몰지요? 그런데 문제의 아파트 주차장에는 미니밴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미니밴은 스몰 비지니스를 하거나, 어린 아이들을 엄마가 태우고 다니면서 하키 훈련 같은 것 시킬 때 주로 쓰는 차가 아니던가요?

    만일 한국의 신문들이 정연씨가 계약한 아파트를 거론할 때 그냥 '160만불짜리 아파트'라고 중립적으로만 썼어도, 저는 시비 걸지 않습니다. 어째서 앞뒤 가리지 않고 '호화'라는 수식어를 자기들 맘대로 갖다 붙이는지, 그 수식어 하나가 신문사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듯 싶더군요. 

    미국에 사시는 분들, 우리 터놓고 이야기해 볼까요?
    진짜 부자들이 아파트에 사는 거 봤어요? 이런 경우는 있지요. 새로 지어지는 수십층 고층 아파트(캐나다에서는 콘도)의 맨꼭대기층 팬트하우스. 2층을 통째로 사용하면서 도시를 내려다 보며 수영까지 할 수 있는 곳. 전용 엘리베이터가 딸린 곳. 이쯤은 돼야 '호화 아파트'라 할 수 있겠지요. 가격은? 정연씨가 계약했다는 곳의 10배 이상, 10밀리언은 되지요.

    그 앞쪽을 1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제 친구는 일요일에도 일합니다) 오가며, 그 아파트의 기초 공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뉴저지 '터줏대감'의 말은 일단 신뢰할 만합니다. 저도 제 눈으로 보아하니, '호화'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비난할 곳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호화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을 받은 게 문제가 아니냐고 문제제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돈이 뇌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수사중이었습니다. 수사가 그냥 종결된 이상 그 돈의 성격에 대해 아무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종결되었을 뿐입니다. 뇌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이걸 두고 이야기해보았자 입만 아픕니다.

    저 또한 공직자가 그 직분을 이용하여 뇌물을 받았다면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는 그게 아니라, 바로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이른바 미디어들의 야비한 수법입니다. 돈의 성격, 사용처 등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벌써 노 전대통령 가족은 여론재판을 통해 '외국으로 돈 빼돌려 호화 아파트를 샀다'는 판결을 받게 되는 거죠. 주변 상황이나 맥락, 모기지와 같은 자금 조달 환경 등은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여론 호도하기 딱 알맞는 숫자만 보여주고, 한국에서 오해할 만한 팩트들(수영장, 피트니스센터, 산책로 따위)들을 따로 열거하여 독자들의 눈을 가린 채 무작정 흥분 시키는 거죠.

    뉴욕 특파원들은 해당 아파트에 직접 가서 보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기사를 썼는지, 진짜 호화 아파트가 어떤 것인지, 뉴저지에 사는 한국 부자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다른 전직 대통령의 아들은 무엇해서 돈을 벌었길래 그 큰집에서 사는지, 이런 것은 왜 취재하지 않는지 저로서는 의아합니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 기사를 쓴 기자들, 미국이나 캐나다에 오면 최소한 80만불짜리 집 살 수 있습니다. 서울의 강남 웬만한 아파트 팔고 오면 100만불짜리도 너끈하게 살 수 있습니다. 160만불짜리도, 가능하죠. 특파원들은 서울의 아파트 팔면 지금도 바로 살 수 있지 않아요? 제 말이 틀리지는 않지요?

    후속 취재 같은 것이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사잡지에서 달라붙을 내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