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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되찾은 보물' 대학친구 김훤주

  1985년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느라 영어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그 뜨거운 한 여름날, 삼민투 사건이라는 것이 터졌습니다. 김훤주라는 이름도 신문 지상에 올랐습니다. <일보전진>이라는 삼민투의 기관지, 곧 이적표현물을 편집한 혐의라고 했습니다. 

   훤주는 감옥에 갔고, 저는 그해 초겨울 대학원에 갔습니다. 길이 다르고, 그 다름이 구체적이다 보니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훤주가 어떻게 지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나왔고, 그 사이에 나는 창녕 훤주 집에 한번 갔었고, 모친상을 당했고, 그래서 다시 한번 창녕에 갔었고, 훤주는 감옥에서 나와 복학해 여름 학기에 졸업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에게 와서 '군대 면제'를 받은 나의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산 창원 지역에 '위장 취업'을 하려 내려가는데, 군필자의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갑에서 꺼내어 그 자리에서 주었습니다. 다름 아닌 훤주가 필요하다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지요. 

"너도 늙었구나" : 이 모습을 구글에서 찾았습니다. 입을 꼭 다문 저 결기. 예전보다 더합니다. 착한 훤주를 비로소 훤주답데 만든 저 결기. 사진을 보며 나는 눈시울 적십니다.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그 즈음, 훤주는 내게 화를 좀 많이 내는 편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밀려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눈에 밟혔던 모양입니다. 훤주가 내는 짜증을 나는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는 사람이, 막연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을 보면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날은 나에게 벼락같이 화를 내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내가 된 애민씨의 친구를 내게 소개해주겠다고 데리고 나왔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애민씨의 친구는 인상도, 사람도 좋아보였고, '무엇보다' 예뻤으나 내가 왜 도망을 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갈께" 하고 나온 기억밖에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창원으로 가서도 가끔씩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저대로 대학원에서 편안하게 공부하며 지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