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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이민자의 눈으로 본 뉴욕 국립 한식당


  이 말이 사실인지 믿을 수는 없으나 한국에 보도가 되었으니 사실이라 '가정'하고 글을 씁니다. 뉴욕에 한국 국립 한식당이 들어선다는 소식은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인 나에게 어안이 벙벙해지는 뉴스입니다. 뉴욕이든 어디든 근사하고 맛있는 우리 식당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반대할 한국 교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같은 이민자 처지에서 보자면, 우리 음식을 맛있게, 이왕이면 값싸게 좋은 서비스 받아가며 먹을 수만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대기업도 아니고 한국의 이름난 식당도 아닌, 정부가 나서서 나랏돈으로 한국 식당을 운영하겠다니, 이걸 도대체 믿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곤혹스럽습니다. 더군다나 북한처럼 달러가 모자라 중국에 랭면집이라도 내야 하는 처지는 아닌 듯 싶은데,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음식 문화원도 아니고 식당을 연다니, 일단 믿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음식을 세계화하는 데 드는 예산 2백42억5천만원 가운데 50억원을 뉴욕 식당 개업에 투입한다고 합니다. 50억원이면 1달러에 1000원 잡아도 무려 500만달러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저 돈으로 뉴욕의 어디에 자리를 잡아, 최고 주방장을 영입하고, 내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고, 종업원을 뽑아 훈련시키고, 광고하고, 식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음식 연구 개발비를 또 투입하게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이, 먹고 살거나 돈을 벌기 위해  비지니스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여타의 문화원처럼 무슨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식당을 어떻게 열어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상상이 안됩니다.

  그래도 굳이 상상하자면 억지로 몇 가지는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선, 비까번쩍한 식당을 만들어 5성 호텔급 주방장을 들여보내 음식을 만들게 하고, 유엔본부 등 뉴욕에 드나드는 세계 각국 고급 관리들을 초대하여, 한국 음식에 인이 박일 때까지 수십년 동안 공짜로 퍼멕이는 것입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의 운영 방식이기는 하지만 이게 음식의 세계화인가 하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렇다면, 맨해튼 32가 K타운 같은 목 좋은 곳에다가 감히 민간이 넘보지 못할 으리짱짱한 공간을 만들어 뉴욕에서 한국 음식 먹으려는 사람들을 다 끌어모으겠다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나랏돈 5백만달러가 확보되어 있으니 최고급 주방장을 쓰고 공짜는 좀 그러니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 한국 식당 <원조>. 주인은 바뀌었으나 십수년을 한 자리에서 장사해오고 있다. 국립 한국 식당이 어떤 개념으로 들어서서, 어떤 식으로 한국 음식을 세계화할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이민자로서는 악몽입니다. '국립' 한식당이 들어서서 저런 식으로 장사를 하게 되면 기존의 한국 식당들은 문을 다 닫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렌트비 오르고 경쟁이 심하여 10년 이상 한 곳에서 자리 지키는 식당 찾기가 어려운 판에, 뉴욕의 한국 음식 집결지에 국립 한식당이 들어서서 세계화를 명분으로 장사한다면 기존의 한국 식당은 다 죽습니다. 어머니 같은 나라가 나와서, 외국에서 한국 음식 열심히 만들어, 한국 음식 세계화라면 세계화에 기여하며 먹고 사는 자식 새끼들을 다 죽이는 꼴입니다.

  외국에서 식당은 아니지만 작은 장사를 하며 밥벌이하는 나로서는 한국 정부의 한국 음식 세계화를 위한 발상이 어디로 향할는지, 참 궁금합니다.

   한때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사는 토론토에서도 일본의 스시나 중국 음식들은 세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화라는 게, 많은 인종들이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이 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중국 음식의 경우 '만다린'이라는 뷔페식 프랜차이즈가 토론토에서 성업중입니다. 그곳에는 갈비 같은 한국 음식도 끼여 있습니다.

  두 나라 음식의 세계화를 보면서 한국의 큰 자본들이 식당 사업에 관심을 좀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이른바 세계인의 보편적인 입맛을 연구하고, 메뉴를 개발하여 세계 큰 도시 곳곳에 우리의 음식으로 뷔페든 무엇이든 장사 좀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본을 투입하여 이문을 내겠다는 기업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식당을 하는 개인도 아니고, 정부가 나서서 국민 세금으로 식당을 하겠다, 그것도 절박한 외화벌이 때문이 아니라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서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려지지가 않습니다. 실패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며, 한국 음식 이미지를 버려놓을 경우 또 누가 책임을 질 것이며, 성공할 경우 식당 비지니스 해서 먹고 사는 이곳의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며, 무슨 메뉴로 어떻게 세계화시키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살고 있으니 이곳 물정을 그래도 한국에 있는 사람보다는 잘 아는 편입니다. 하여 이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나랏돈 쓰지 말고 영부인이든 누구든 자기 돈으로 해보라고... 한국 음식 세계화가 꿈이라면 나라 이름 걸지 말고 자기 인생을 걸고 공직 퇴임 후 비지니스로 해보라고... 엄한 나랏돈 가져다가 자기 돈 아니라고 펑펑 써가며 불공정한 게임하지 말고, 자기 돈 들여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피터지게 고생하며 다른 식당과 경쟁해 보라고... 하여 한국 음식 세계화라는 비전을 가지고 비지니스를 성공시켜보라고... 이게 바로 세계화입니다.

  한국에 국립 음식 문화원을 만들고, 스시처럼 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고 오랜 기간 외국에 홍보하여 "이게 좋으니 한번 해보시오" 하고 돈을 줘가며 뉴욕의 한국 식당에 권해도 될까 말까 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도 안될 판에, 무슨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국립 한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내 눈에는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돈 아니라고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진지하게 장난 치려는 꼬라지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약삭빠른 사람들, 주머니나 채우지나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스럽습니다. 

  그나저나 그같은 기획을 하고, 그 예산을 통과시킨 분들께서는 세계화를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의 대표선수들을 무엇으로 꼽는지, 그것부터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