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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이

캐나다 땅에서도 추방되는 한국 빈민들

*한국으로 돌아가는 E양이, 캐나다에서 발생한 이같은 사연 때문에 혹시 '왕따'와 같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어느 독자분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여 한글 이름 대신 이니셜을 사용해 원고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오늘 아침 캐나다 최대의 신문 <토론토스타>의 한 섹션 톱기사로 눈에 익은 어린이 사진이 한 장 실렸다. 처음에는 우리 딸인 줄 착각할 정도로 낯익은 사진이었다. 그 아래에는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읽기에 참담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4월23일자 <토론토스타>에 소개된 'South Korea로의 추방'이라는 딱한 사정에 놓인 E 양의 사연.

  
  E양. 올해 초등학교 2학년생. 어떤 사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불법 체류자이다. 오는 일요일 한국으로 추방될 예정. E양은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추방되는 어머니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여 E양의 급우들과 선생님들은 똘똘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난 E양과 'say goodbye'를 하면서도, E양 모녀가 추방되지 않도록 서명 운동 등을 전개한다는 내용이다. E양의 어머니는 캐나다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보름 전에는 딸 셋을 둔 비슷한 처지의 어머니가 토론토 한인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집 사정도 딱해서, 지금 끼니를 잇기도 힘들다고 알려져 한인들 사이에 모금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7년 전 이민을 왔을 당시만 해도, 토론토에도 이렇게 불우한 처지에 놓인 '한인 도시빈민'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모를 수밖에...... 캐나다 정부가 이민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교육과 재산 정도에 점수를 부여하며 선별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판국인데, 게다가 새로 오는 이민자들은 대부분은 화이트컬러여서 직장 퇴직금과 아파트 판 돈이라도 가지고 오는 줄로만 알았다. 

  이 때문에 '한인사회봉사회'라는 한인 단체가 연말마다 기부금을 모아 '불우한 한인 이웃'에게 쌀과 라면 등속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땅에서 어느 한국 사람이 라면 한 상자, 쌀 한 부대를 절실히 필요로 할까, 주는 사람들이 자기 만족과 과시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겨났다.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뿐, 한인 빈민의 수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지하철에서 아기를 낳은 한인 여성이 뉴스의 인물이 되면서부터였다.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갈 것이면 승용차를 이용하지 왜 지하철을 탔을까?' 하는 의구심은 간단하게 풀렸다.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다른 아이 넷은 왜 진통중인 엄마를 따라나섰을까?' 집에서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출산한 지 몇 개월 후, 그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토론토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의 작은 아파트에서, 젊은 엄마는 아이 다섯을 데리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 

   통계로는 나오지 않았으나, 토론토에 도시 빈민 계층에 속하는 한인 가정이 많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외국살이라는 환경 하나만으로도 살아가기가 여간 고단하지가 않은데, 가장을 잃고 끼니를 걱정하는 지경이라면, 게다가 E양의 어머니처럼 불법으로 체류하는 입장이라면 삼중고, 사중고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E양의 학교 친구와 선생님들이 오타와 연방정부에 청원을 넣어, 해당 부서 장관이 곧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한다. E양 가족들이 절실히 원하는 쪽으로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곳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와중에도,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관할 지역의 한인을 보호하라는 특급 임무를 띠고 나온 토론토 한국총영사관의 그 많은 잘난 인력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봄날씨 좋다고 정원에서 바비큐를 굽고 계실까, 맛좋은 맥주를 즐기고 계실까?
   
   E양 가족을 만나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관례' 혹은 그들의 '습성'으로 보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이다. 

  토론토 영사들의 팔자는, 내가 보기에, '개팔자'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