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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소니 리더 v. 아마존 킨들: 디지털 시대의 책 읽기


(에드먼튼 = 김상현) 제가 구독하는 일간지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 토요일치(12월5일치) 경제면에 소니의 통광고가 실렸습니다 (아래 사진). '표지만 보고 e북을 판단하지 말라'(Don't judge an ebook by its cover)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표지만 보고 그 책을 평가하지 말라는 고래의 진리에다 'e'자 하나 더했습니다. 소니는 그 말이 얼마나 멋있고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자인 제가 볼 때는 '표지만 봐서는 소니 리더가 아마존 킨들보다 못하다'라고 자인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광고 본문에 '소니 리더의 디자인이 더 낫다'라는 언론의 리뷰까지 실어놓은 것을 보면 그런 의도는 결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만...

Sony Reader vs. Amazon Kindle
저는 요즘 소니 리더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광고에 나온 모델의 전신인 Sony PRS-505)와 아마존 킨들 2를 번갈아 쓰고 있습니다. 소니 것은 쓴 지 1년이 조금 넘었고, 킨들은 한 달쯤 됩니다. 이 참에 개인적인 비교 사용기와,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내려보고자 합니다.  

가독성 (Readability, Text & Image Sharpness) - 아마존 킨들 승

킨들의 비교 대상을 제가 지금 쓰고 있는 505 모델로 삼는다면 답은 '(거의) 무승부'가 될 겁니다. 결국 둘다 e-잉크(E-Ink 기술을 쓰고 있으니 그 작동 방식이나 디스플레이 수준이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다 충분히 선명하고, 직사광선 아래에서도 반사나 번들거림이 거의 없어서 - 물론 리더의 각도를 조절해야 하지만 - 독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 광고에 나온 '터치 에디션'의 가독성은 킨들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e-잉크 기술에는 없는 '터치 스크린' 기능을 넣기 위해 표면에 두 겹의 스크린을 덧칠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소니가 505를 업그레이드한 700을 잠깐 내놓았다가 단종한 적이 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700을 이 터치 에디션으로 개량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저는 그 터치 스크린과 더 다양한 글자꼴 같은 데 현혹이 되어서 서둘러 구입했었습니다. 일주일쯤 쓰다가 도저히 못참고 반품한 뒤, 505로 다시 돌아섰습니다. 터치 스크린을 위한 가외의 층(레이어)이 디스플레이의 선명도를 너무나 심하게 떨어뜨린 데다 불빛 아래서의 번들거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독서를 거의 불가능하게 할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리뷰에 따르면 이 터치 에디션은 700 모델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래의 e-잉크 기술이 가진 선명도를 100% 복원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왜 소니가 e북 리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스크린의 가독성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터치 스크린에 매달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소니측에 이 질문을 던져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e북 리더를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터치 스크린 기능 때문에'가 그 주요 대답중 하나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가독성의 또 한 요소라 할 만한 글자꼴에서도 킨들이 더 낫습니다. 모양도 더 보기 좋고, 읽기도 더 편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 화면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가 새로운 페이지를 보여주기까지의 간격은 터치 에디션과 킨들 둘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505와 견주면 킨들이 훨씬 더 빠릅니다). 

Sony Reader v. Amazon Kindle


레이아웃 (버튼의 배치, 메뉴 구성) - 소니 터치 에디션 승

이 부문의 우위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소니가 디스플레이의 선명도를 일정 부분 희생해가면서 쟁취한 것입니다. 초기 화면의 배치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스타일러스로 찍을 때 느껴지는 감촉과 그 반응 속도도 만족할 만합니다. 

킨들 2의 경우, 왼쪽과 오른쪽 중간 부분에 각각 두 개씩의 버튼이 있는데, 왼쪽의 두 개는 뒤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것(Prev Page)과, 앞으로 계속 진행하기 위한 버튼(Next Page)이고, 오른쪽의 두 개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기 위한 'Home' 버튼과, 계속 책을 읽어나가기 위한 'Next Page' 버튼입니다. 왜 양쪽을 일치시키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읽다가 자꾸 실수로 Home을 눌러서 책 읽는 흐름이 끊기곤 합니다. 화면 아래에, 검색을 하거나 짧은 노트를 적기 위한 QWERTY 자판이 있는데, 그야말로 'barely usable'입니다. 자판의 감촉도 너무 뻑뻑하고 별로 실용적이지 못합니다. 

네트웍 기능 - 아마존 킨들 승

소니도 곧 와이얼리스를 도입한다고 합니다만 적어도 그 때까지는 아마존 킨들이 단연 우위입니다. 아마존측의 자랑대로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기만 하면 60초 안에 기기 안에 담깁니다. 따로 USB 포트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더욱 마음에 드는 대목은 책을 굳이 사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맛보기 할 수 있는 '샘플'이 모든 킨들용 타이틀에서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문제는 저처럼 킨들을 미국 본토가 아닌 그 밖에서 쓰는 경우(글로벌 에디션)인데요, 이 때는 사실상 와이얼리스가 무용지물입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을 내려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밖의 나라들은 그 무선 신호를 이용하는 데 따른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 책 한 권, 혹은 신문 한 부 무선으로 받아볼 때마다 2달러를 내야 합니다. 얼마 안되는 액수 같지만 킨들 타이틀의 일반적인 가격이 9.9달러임을 고려하면 책값의 20%에 이르니 그야말로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는 셈이 됩니다. 

Kindle for PC


제가 소니에서처럼 USB 포트로 돌아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일단 '
킨들 훠 PC' (Kindle for PC)로 내려받은 다음에, USB 포트를 통해 킨들 기기에 담으면 그런 말도 안되는 해외 전송료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USB 통신이 좋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마존닷컴에 내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물론 미국의 주소지가 있어야 하지만 신용카드는 어느 나라것을 쓰든 문제가 안됩니다. 다만 킨들 기기의 무선 기능을 켜서 책이나 신문을 받으면 아마존닷컴의 설정이 다시 그 킨들을 쓰는 나라로 돌아가니까 주의하셔야 합니다. 결국 와이얼리스를 꺼둬야 한다는 뜻이지요. 제가 사는 캐나다의 경우 킨들의 와이얼리스를 켜도 책과 신문 받는 일말고는 사실상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인터넷 기능은 위키피디아 접속밖에 안되고, 블로그는 아예 하나도 볼 수가 없으며, 미국에서만 팔고 캐나다에는 팔지 않는 책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다 그 저작권 문제 때문이지요. 해당 책의 배급권을 둘러싼 복잡한 규정과 제한 말입니다). 아마존닷컴의 나라 설정을 미국으로 잡고, 킨들의 무선 기능을 꺼버리면 미국에서만 유통되는 책을 다 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면 나중에 환율이 고려되어 미국쪽보다 다소 비싸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캐나다 환율이 세서 별로 손해보는 느낌은 없습니다). 

소니의 e북 스토어에서는 그런 '트릭'이 안통합니다. 미국에서 발행한 신용카드를 갖고 있지 않은 한, 나라 설정을 미국으로 해놓아도 신용카드 결제가 일어나는 순간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맙니다. 캐나다에서 보는 e북 스토어에는 'US Only' 표시가 너무나 많습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가 많습니다. 가장 기막힌 순간은 캐나다 작가의 책이 미국에서만 구입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온라인 서점 - 아마존 킨들 승

95년 무렵 아마존닷컴의 모토가 '지구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아니면 파는 물품이 책을 넘어서서 하도 다양해진 탓인지 더이상 그런 캐치후레이즈를 내걸지 않습니다. 적어도 시중에서 돈 주고 사야 하는 책의 보유량에서 아마존닷컴을 넘어설 곳은 없습니다. 아마존닷컴의 킨들 스토어를 보다가 소니의 e북 스토어 - 따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야 접속 및 구매가 가능합니다 -를 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그 소프트웨어의 이용자 편의성이 정말 '쌍팔년도'를 떠올릴 만큼 구식이고 불편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책의 가짓수가 너무 적습니다. 위 신문 광고에는 1백만권 이상의 책을 고를 수 있다고 떠벌리지만 그 대부분이 구글 북스에서 온 것이고, 실제 독자들이 찾는 근간은 아닙니다. 1800년대, 1900년대 책을 열성으로 찾아볼 사람이 일반인중에 얼마나 될지 저는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전반적인 e북 구입 가격 - 아마존 킨들 승

아마존 킨들의 e북 값은 대부분 9.9달러(근간)입니다. 몇년 지난 책은 그보다 더 싸고, 특히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10달러를 넘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균 9.9달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소니의 e북은 대체로 아마존쪽보다 더 비쌉니다. 10달러를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캐나다의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구입할 수 없는 'US Only' 책이 너무 많습니다. 

화일(file)의 호환성 - 소니 리더 승

아마존 킨들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은 '닫혀 있다'라는 점입니다. 아마존에서만 사야 합니다. 물론 모비포켓의 포맷(mobi)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곳에서 구입한 뒤 킨들로 옮길 수도 있지만 와이얼리스를 통한 구매는 불가능합니다. PDF 포맷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주 전입니다 (아직도 글자 크기를 조절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에 견주어 소니 리더로는 일반 PDF 화일은 물론, 어도비 디지털 에디션을 통해 보게 되는 ePub과 디지털 저작권이 걸린 PDF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열려 있지요. 아마존 킨들이 하루빨리 이 호환성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판정: 아마존 킨들의 판정승

소니 PRS-505 (여기에서 PRS는 Portable Reader System의 약자랍니다. 참 재미없지요?)를 오랫동안 쓰다가 킨들을 받아든 순간의 느낌은, 마치 도요타 에코를 몰다가 캠리로 갈아타는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기기의 디자인, 디스플레이의 섬세함 (같은 e-잉크인데도), 기기를 조작하는 전반적인 느낌, 게다가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는 아마존닷컴의 그 방대한 책들이 주는 매력이 대단했습니다. 

아마존 킨들, 그리고 e북 리더의 미래는?

하지만 이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아마존 킨들이 계속해서 e북 리더의 대명사로 군림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용상의 제한과 불편함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킨들을 위협하는 다른 유형의 e북 리더들이 말 그대로 비 온뒤 죽순 자라듯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킨들보다 더 널리 쓰이는 아이폰의 스탠자(Stanza, 그림)를 비롯해, 반스앤노블의 누크(Nook)플라스틱 로직애플의 태블릿형 리더안드로이드 기반의 리더스킵 (Skiff)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당장은 반스앤노블의 누크가 킨들과 소니의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떠오른 듯이 보이지만 물류 문제 때문에 올 크리스마스 대목을 놓치고 말았다는 점, 킨들이나 소니와 달리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 대한 진출도가 아직 미진하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한동안 e북 리더들의 '군웅할거'가 계속되리라는 점, 그로부터 e북과 e북 리더에 대한 일반의 인지도와 이용도가 대폭 높아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경쟁 끝에 누가 승자로 부상하든 그게 곧 경쟁과 진화의 끝은 결코 아니면 또다른 차원, 또다른 성격의 경쟁과 진화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후기 1: '이북' '이-잉크' 대신 'e북' 'e-잉크'라는 말을 쓴 것은 혼동을 피하고, 전자책과 디지털의 느낌을 살리려는 의도에서입니다.

후기 2: 소니 리더 터치 에디션과 아마존 킨들 간의 비교에 대한 좋은 비디오 자료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들르는 iReaderReview.co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