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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盧 죽음 평가했던 외국인 "이명박은 정치인이 아니다"  지난번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 국민'을 지목했던 Chinese-Canadian을 오늘 또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불쑥 이명박씨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이명박씨는 기업가이지 정치인은 아닌 것 같다." 편의상 그의 이름을 J라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듯이, 그는 중국 출신의 엘리트입니다. 학력 학벌이 좋다하여 엘리트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사, 특히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객관적인 눈과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J는 재작년 대통령 선거 당시 누구보다 이명박씨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더랬습니다. 샐러리맨들의 신화라는 사실에서부터 청계천 복구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습니다. 기업가로서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해 당연히 기.. 더보기
유인촌 장관, 일용이 반만 닮으세요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325071 아주 오랜만에 유인촌씨를 화면에서 보았습니다. 외국에 와서 산다 해도 인터넷 덕분에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지겹도록 볼 수 있는데, 그를 드라마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포털 사이트에 오른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 이가 내가 알던 바로 그 유인촌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생에게 말하는 품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얼른 가서 공부해라, 뭐하러 고생하고 있니, 다 해준다는데…"라는 말의 내용보다는 말하는 태도에서, 브라운관에서 보이던 인상좋은 용식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 오만한 표정이 놀랍습.. 더보기
노정연씨의 '호화 아파트' 논의에 대하여... 4백개에 가까운 의견들이 올랐습니다. 의견들 많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격렬하게라도 의견을 나누는 중에, 어떤 의견이 사실에 더 가까울까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서프라이즈에 글 쓰신 분의 이야기는, 뉴저지에 10년 넘게 살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제의 아파트를 보고 출퇴근하는 제 친구의 이야기와 똑같군요. 쓰레기 매립지 위에 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냄새까지 나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뉴저지 '터줏대감'이 찍어준 고급 아파트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정연씨가 계약했다는 허드슨클럽에서 언덕 위를 쳐다보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맨해튼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대서양까지 보일 것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급'축에 속합니다. 주거 공간으로 '호화' '.. 더보기
노정연씨가 계약한 아파트는 '호화'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뉴욕에 갔다가 노정연씨가 구입했다고 하여 그 자금 출처에 대해 의혹이 불거졌던 문제의 아파트를 찾아보았다.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뉴저지에 사는 친구가 "한국 언론이 이번에도 진짜 웃겼다. 재미나는 소설 한 편을 신문들이 썼다"고 하는 바람에 나 또한 '웃기는 소설'을 보고 싶어 들렀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한국 언론은 노정연씨가 2년 전에 계약했다는 뉴저지의 아파트로 도배를 했었다. 그 핵심 내용은 △노정연씨가 뉴저지의 부자 동네에 있는 '호화' 아파트를 구입했고 △자금 출처가 의심스러우며 △잔금을 치르지 않고 계약 상태로 어떻게 지금까지 '홀드'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자금 출처 못지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호화'라는 수식어였다. '호화'는 서민 대통령을 표.. 더보기
노대통령의 죽음, 외국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이곳 토론토에서 평소 일 관계로 자주 만나는 중국인 남매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엘리트입니다. 30대 후반의 누이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30대 초반의 남동생은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워털루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들을 엘리트라 부르는 까닭은, 그들이 가진 학벌이나 학위 때문이 아닙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식견이 남다른 데다, 분석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좀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도 충격이 매우 컸다고 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죽었다고 보는가?" "그는 정직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정직하지 않다면 벼랑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 더보기
토론토 조문소에서도 사람들은 자꾸 웁니다 토론토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회관에 노무현 전대통령 조문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일요일에 준비를 하고 월요일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토론토 한국 총영사관은 아직 조기를 걸지 않았습니다. 조문소를 지키며 문상객을 받는 홍지인 총영사에게 물었더니 "장례식 날에 건다"고 했습니다. 빈소는 검소했습니다. 문상객이 가져온 꽃이 많이 놓여 있었습니다. 총영사관에서는 조문객들로 하여금 국화 한 송이를 놓거나 향을 피우도록 했습니다. 조문객들은 이렇게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왔습니다.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적는 위의 두 분은 빈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또한 고인께 절을 올리면서, 울컥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왜 문상을 갔으며, 왜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내려가는 중에도 .. 더보기
기자로서 돈 받고? 노무현처럼 죽고 싶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신문 방송 블로그 들을 통해 보고 들으면서 여러가지 감회가 생겨납니다.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크게든 작게든 변혁에 대한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노무현의 자결'은 바로 그 꿈의 좌절을 드러내는 뼈아픈 상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튜브의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삐찔삐질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Dfg8-y72_RA&feature=related 편지로든, 블로그의 답글로든, 특히 외국에 사는 블로그 친구들이 몹시 우울하다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심경을 전해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성'이라는 말을 퍽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진정성이 통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것이 왜곡되어 화살로 돌아오자 그는 죽음보다 더.. 더보기
'마녀' 노무현 '사냥' 당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것은 캐나다 동부 시간으로 22일 오후 8시께였다.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어, 텔레비전 자막에 노무현 사망 자막이 나오네?"라고 친구가 전했다. 충격. "대한민국이 불쌍하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폭동이 아니면 하늘(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신문사를 제어할 수가 없다" 같은 생각이 줄을 이었다. 지난 4월8일 위의 이미지를 붙인 노무현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bomnamoo0420.tistory.com/entry/노무현을-다시-좋아하게-되다 '노무현을 다시 좋아하게 되다'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었다. 다만 '부탁드립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두 마디 말의 진정성이 이역만리 토론토에까지 전해졌던 것 같다. 노무현은 .. 더보기
4 · 19 老혁명가, 토론토에서 영면하다 1957년 5월 5일 경무대(현 청와대) 앞 소요 사건을 아십니까? 건국 이래 학생이 주동이 되어 벌인 최초의 데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이승만 후보를 제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해공 신익희 후보가 급서한 후, 자유당에 염증을 느낀 야당 지지자들은 운구를 모시고 효자동 해공의 집으로 행진을 합니다. 경무대 앞에 다다랐을 때, 운구를 따르던 지지자들이 흥분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소요의 주동자들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합니다. 경찰은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960년 4월 혁명의 전조가 된 이 데모의 주동자는 당시 고려대 사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정국로였습니다. 정국로는.. 더보기
캐나다에 왜 한국 '난민' 신청자가 많을까? 얼마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강제 추방된 E양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토론토의 '최강지' (는 한겨레의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선일보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강 일간지라 할 만합니다)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대서특필되었고, 그것을 보고 제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는 난민을 받아들여 이런 저런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이곳에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지원금과 교육 의료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남미 반정부군의 아내가 캐나다에 난민으로 넘어와서, 난민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자기 나라 '반정부 활동' 자금으로 써서 문제가 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난민을 모두 3명 만났습니다. 영어학교에서 만난 .. 더보기
평양냉면에 담긴 슬픈 분단 가족사 어제 평소 가깝게 지내는 대학 대선배님과 저녁을 함께 하며, 평양 출신인 그 분의 비극적인 가족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가족사를 듣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으나 냉면 이야기를 시작으로 60년 전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흘러나왔다기보다는, 역사와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제가 계속 질문을 드렸던 것이지요. 그 분의 가족은 1948년께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왔습니다. 당시 그 분의 나이는 5~6세였을 겁니다. 그 분은 지금도 서울에 들어갈 때면, 하루 한 끼는 꼭 냉면으로 해결한다고 했습니다(냉면 하면 통상 평양 물냉면, 함흥 비빔냉면을 말하지만, 냉면을 아는 사람이나 평양 사람들은 함흥 냉면을 냉면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고저, 우리네끼린, 냉면 하면 평양 물냉면을 말합니다). 토론토에서는 냉면다.. 더보기
백인은 먼저 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 토론토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논란으로 며칠새 신문들이 시끌벅적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인구 2만명 작은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한인 학생과 백인 학생 사이의 주먹다짐입니다. 4월21일 체육시간에 "Furking Chin"이라는 욕설과 함께 백인 학생이 한국 학생을 가격했습니다. 한국 학생의 입술이 터졌습니다. "Chin(친)"이라는 말은, 이곳의 백인들이 동양인을 비하하여 쓰는 인종차별적인 속어입니다. '친'도 아니고, '퍼킹친'에다 주먹에 맞아 입술까지 터졌다 하니, 골욕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한인 학생은 평소 아버지에게 배운 태권도 실력으로 맞대응을 했다고 합니다. 타격의 강도를 줄이기 위해 왼손으로 쳤는데도, 백인 학생의 코뼈가 부러졌습니다. 학교가 난리가 나고 경.. 더보기
김연아에 관해 이렇게 잘 쓴 글은 없다 거의 매시간 다른 아이템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에 오르내리는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엄청나게도 끌려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 이리 저리 불러낸 뒤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추한 모습들이 매일 인터넷 뉴스란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김연아는 지금 대학 1학년생입니다. 학기 중에 학교에 가야 할 학생이, 강의실에는 들어가지 않고 엄한 일에 끌려다니는 데 대해, 국내에 있으면서도 장기 결석을 하는 학생에게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는 고려대학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김연아를 활용한 고대 광고에 대해서는, 인터넷 세상이 뒤집어지도록 비난과 욕설을 퍼부은 네티즌 가운데 그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김연아는 학기 중에 강의실에 들어가는 대신, 청와대로, 체육.. 더보기
조선일보 기자들, 쪽팔리지 않나? 한국에 있을 때, 조선일보 기자들과 어울릴 기회가 적잖게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언제나 자신감이 흘러 넘쳤으며 자사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했습니다. 자신감과 애사심이야 저 또한 그들 못지 않았으나, 그들이 저를 두렵게 한 것은 다름아닌 취재력이었습니다. 물론 매체 파워가 한국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으니 취재하기가 어느 매체보다 수월했겠습니다. 그러나 그 수월성을 넘어, 조선일보 기자들은 여타 매체 기자들이 지니지 못한 불같은 투지와 열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다른 나라에서 언제나 부러워 하는 캐나다 하키팀을 연상케 하는 막강 화력입니다. 한국에서 기자들과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욕은 먹지만 1등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조선일보 기.. 더보기
내가 <조선> 기자라면 "열받아 디지겠다"(거시기하다 2편) 어제 올린 글을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부러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하루 종일 문득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만일 기자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불현듯 일었습니다. 언론사 가운데 만큼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아마 저라면 뒤집어졌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열받아 '디졌을 것입니다.' (비속어를 써서 죄송합니다. 이 표현만큼 적절한 것을 찾기가 어렵군요.) 외통수입니다. 이래도 열받아 죽고, 저래도 뚜껑열려 뒤지겠습니다. 먼저, 김대중 주필이 설파한 '모함'에 대해여. "어떤 넘이 감히 건드려"라는 분노가 터져나올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기자들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강한 자존심이 없다면 기자 자격이 없다고까지 할 정도입니다. 한국 사회.. 더보기
캐나다에서 보아도 조선일보는 참 거시기 하다 외국에서 만 7년째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한국 뉴스를 들여다 보아도 이상하게도 시각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진보적 성향을 유지하려면 한 사회를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환경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일단 환경은 되지 않고 능력 또한 새로 생길 리 없습니다. 하여,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외국에 사는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저 또한 한국에 살았더라면 작년의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국에서 제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저는, 제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더불어 그 촛불시위에 대해 냉소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대단히 냉소적이었습니다.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았.. 더보기
김연아와 신정아 뉴스는 닮은꼴이다 며칠전 1년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신정아씨가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구치소 앞으로 기자들이 잔뜩 몰려갔습니다. 그 가운데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를 되짚어본 기자가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들 대신 생각을 해봅니다. 신정아씨가, 학력 위조를 하여 교수 자리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자리까지 차지해서? 그 학력 위조 파문이 나라를 들썩이게 해서? 노무현 정부의 고위 관료인 변양균씨와 부적절한 관계여서? 미술관 공금을 유용해서? 생각을 아무리 이어나가려 해도 신씨와 직접 관련하여, 기자들이 출소하는 데까지 우루루 몰려나갈 이유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입니다. '신정아 본인 혹은 본인이 지은 죄와 상관없이 터무니 없이 부풀려진 사건이어서...' 본인이 지은 죄와 상관없다니?.. 더보기
캐나다에서 본 김연아 광고 논란 아시다시피 김연아 선수는 토론토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토론토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노스욕에 거주하며, 역시 노스욕에 있는 훈련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으나 한국 식당에 와서 밥먹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이제는 토론토에서도 유명세를 치를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김연아 양이 우승하는 날, 저는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친구 한 명이 말했습니다. "오늘 김연아 우승하는 날 아니야? 보고 싶은데..." 다른 한 명이 받았습니다. "우승하면 뉴스에 나오겠지, 뭐. 그냥 인터넷으로 봐. 그런데 김연아에 대해 왜 관심을 가지는데?" "빌리지 피플이잖아."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곳에서.. 더보기
노무현을 다시 좋아하게 되나, 마나? 어느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입니다. 저는 노사모도 아니고, 노무현씨에게 투표한 바도 없습니다. 멀리 캐나다에 살면서, 한때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다음 크게 실망했고, 그 후에는 아예 관심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몇년 만에 노무현이라는 이름, 인물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의 짤막한 사과문을 읽습니다. 그와 늘 긴장관계에 있던 어느 신문사의 인터넷판 톱 기사를 봅니다. 톱기사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순식간에 업데이트됩니다. 뉴스는 기자가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팩트라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 또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뉴스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합니다. 노무현씨와 대척점에 있는 저 신문사는 그런 점에서 뉴스를 아주 잘 만듭니다. 만드는 것.. 더보기
'되찾은 보물' 대학친구 김훤주 1985년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느라 영어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그 뜨거운 한 여름날, 삼민투 사건이라는 것이 터졌습니다. 김훤주라는 이름도 신문 지상에 올랐습니다. 이라는 삼민투의 기관지, 곧 이적표현물을 편집한 혐의라고 했습니다. 훤주는 감옥에 갔고, 저는 그해 초겨울 대학원에 갔습니다. 길이 다르고, 그 다름이 구체적이다 보니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훤주가 어떻게 지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나왔고, 그 사이에 나는 창녕 훤주 집에 한번 갔었고, 모친상을 당했고, 그래서 다시 한번 창녕에 갔었고, 훤주는 감옥에서 나와 복학해 여름 학기에 졸업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에게 와서 '군대 면제'를 받은 나의 주민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