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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시원한 타이거JK, 답답한 백지연



  TVn이라는, 외국에 사는 나에게는 생소한 채널의 <피플인사이드>라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보았다. 얼마전 <무한도전>에 나왔던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의 노래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휴일 저녁 적당한 볼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유재석에게 곡을 주어 한판 신나게 놀았던 타이거JK는, 거칠고 험할 것이라는 힙합에 대한 선입견을 단박에 깼다.  "힙합에 대해 모르는 이들도 타이거JK를 알게 되면 힙합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백지연의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도 이름으로만 듣던 드렁컨타이거의 음악을 처음으로 찾아듣게 되었으니까.

  <무한도전>에서 한 곡을 만들고 부르는 타이거JK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유연함'이었다. 그는 분위기에 맞게 밝고, 건강하고, 명랑하게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오늘 백지연과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 유연함이 어디서 연유했는가를 발견했다. 솔직함이었다. 그는 치장을 하지 않았다. 꿈이 '풍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정신적 풍요' 혹은 '마음의 풍요'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뷰 중에 풍요라는 용어를 그렇게 사용한다.

  타이거JK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바로 그 고정관념과 허위와 겉치레를 푹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물질적 풍요'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음악을 하여 가족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이 꿈이고, 음악인이 그런 꿈을 가졌다고 남들이 비난한다면 자기는 음악인이 아니라 '장삿꾼' 소리를 들어도 좋겠다고 했다.

  섬뜩하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솔직함이다. 그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나같은 범부들의 본능적인 잘난 척을 단번에 박살내는 힘이 있었다. 그게 바로 힙합이 아닌가. 얼마전 뉴욕에서 만난 어느 젊은 화가가 '비주얼 아트'가 보여주기에 충실해야지 개념에 몰두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하던 그 솔직함과 당당함을, 타이거JK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은 곧 힙합이었다. 15년 내공을 쌓고 나이를 먹고 가장이 된 음악가로서 갖게 된 유연함이 가장 돋보였다. Revolution 대신 Evolution을 택한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타이거JK의 성장 배경이나 음악 활동 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 그의 음악, 백지연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솔직함,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겸손함, 이런 것들이 힙합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처음으로 알고 느꼈다. 

  그는 한국에 힙합을 도입한 선구자라는 말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런 수식어보다는 한국에서 힙합을 대중화한 최초의 음악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물과 같은 부드러움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타이거JK의 힙합은 더욱 더 대중화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타이거JK를 다시 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백지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인터뷰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어떤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것이 아니라, 백지연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이거JK와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것이 나의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사프로그램 같은 분위기였다고는 하지만, 타이거JK와 같은 음악가가 나온다면 좀더 자유스럽고 유연하게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백지연은 그런 면에서 2%가 아니라 많이 부족했다. 커리어가 화려한 진행자인데, 왜 그토록 본인이 불편해 하는지, 그 불편함이 나같은 시청자를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나게 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당연한 질문을 당연하게 하는가 하면, 말을 주고 받는 식이 아니라 질문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배테랑의 모습이 아니었다. 준비 부족이라기보다는 인터뷰어로서의 한계일 것이다.

   같은 아나운서 출신인 손석희가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으로 해마다 톱에 오르는 이유는,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잘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대상자가 가장 편한 상태에서, 속에 있는 말들을 어렵지 않게 끄집어낼 수 있도록 질문을 물흐르듯 던지는 한국 최고의 인터뷰어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세계적으로도 손석희만한 인터뷰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타이거JK는 백지연의 그같은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그 숨막혀 보이는 자리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게 잘 했다. 때와 장소에 굴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하는 것도 힙합이다. 

  한국에서 타이거JK의 음반이 5만장이나 팔렸다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서울에서 오는 이에게 사오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니까... 그가 풍요로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